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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Nov 15. 2022

햇살가득 졸업생 모두 모두 모여라

졸업생 캠프

 아침부터 마음이 자꾸 설렌다. 오늘 만나게 될 아이들 때문이다. 몇 년 만에 만나는지 모르겠다. 녀석들이 1학년 때 졸업생 캠프를 하고 이후 코로나로 온 국민이 격리당하는 세월 동안 못 만났으니 근 3년 만이다. 아이들은 다들 얼마나 커 있을지 잔뜩 기대가 된다. 조용히 말수가 적었던 아이, 언제나 씩씩했던 아이, 장난기 많고 말도 안 듣던 아이, 똑똑해서 어떻게 클지 궁금했던 아이 등 아이들 하나하나 다 생각이 난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졸업생 캠프를 했었다. 이곳 어린이집의 역사가 20년 거의 되었으니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들도 꽤 된다. 나는 이곳에서 부모로 5년, 교사로 11년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 대부분을 기억한다. 오늘 졸업생 캠프는 올해 초등 1학년인 아이들부터 4학년인 아이들까지 올 것이다. 4학년인 아이들은 1학년 때 졸업생 캠프를 경험했지만 그 이후의 아이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해서 아이들 또한 큰 기대를 가지고 며칠 전부터 들떠 있었을 것이다.


 졸업생 캠프는 처음엔 1년에 한 번, 봄에, 무논에 청개구리들이 합창하기 시작하던 때 열었다. 그러다 점점 졸업생들이 많아지면서 고학년(초등 5학년부터 윗 학년 전부) 졸업생 캠프와 저학년(초등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졸업생 캠프로 나누어 진행을 했다. 저학년 졸업생 캠프는 주로 6월 초 오디가 열리는 무렵 진행을 했던 터라 모토를 ‘형님들, 오디 먹으러 오세요!’라고 정해놓기도 했었다. 동네 주변에 오디나무가 많아 그 계절엔 오디를 따먹는 일이 일상이었고, 졸업한 아이들도 그렇게 따먹었던 오디를 잊지 못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터전 아이들도 형님들 줄 오디를 남겨놓고 먹는 배려를 항상 잊지 않았다. 

 졸업생 캠프를 시작하고 처음 몇 해는 어린이집 다니던 때를 생각하며 *터살이 하는 기분으로 1박 2일을 하기도 했는데 규모도 커지고 들어가는 품이 만만치 않아서 당일치기 행사로 점차 바뀌게 되었다.


 고학년 졸업생 캠프는 주로 11월 초에 진행이 되었다. 고등학생인 아이들도 졸업생 캠프에 대한 기대감이 사그라들지 않아서 참석률이 꽤 높았다. 아이들은 어릴 적 지내던 곳이 스스로 성장하는 동안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고 했다. 어릴 적 놀며 자란 햇살 가득 생활이 소중해서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들에게 햇살가득을 보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모여서 무엇을 하자고 하면 옛날만큼 열의와 열정을 보여주지 않아 무언가를 도모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머리는 크고 몸이 무거워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솔깃하게 할 특별한 프로그램을 고민해보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가장 인기 있고 재미있었던 것은 TV 프로그램을 우리 식대로 만들어 본 ‘아이스박스를 부탁해!’였다. 각각 아이스박스 안에 요리 재료를 넣어놓고 그것만 가지고 요리를 만들어 대결을 했던 프로그램인데 호응도 좋았고, 요리하는 과정도 즐겁고 볼만했으며, 만들어놓은 음식들도 제법 훌륭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졸업생 캠프의 메인 행사는 용진산 등반이다. 이것은 저학년이든, 고학년이든 피해 갈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용진산은 터전 근처에 자리 잡은 동네 뒷산인데, 해발 349m쯤 되는 작은 산이지만 제법 등산 기분이 날만큼 가파른 산이기도 하다. 터전에서는 7살 아이들의 용진산 산행을 정식 교육 내용으로 삼았다. 산이 조금 가파르고 바위들도 있어서 7살만 등산을 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워두었는데 신체발달이 좋은 아이들은 5살, 6살 아이라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등산이 어렵지 않은 산이었다. 하지만 7살 아이들만 할 수 있다고 하는 순간 7살이라는 나이에 대한 경외심으로 동생들은 어서 7살이 되기를 바라고, 7살인 아이들은 스스로 특별한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게다가 용진산을 등반하고 나면 힘든 과정 이후 얻어낸 성취감으로 모든 일에 자신감이 충만해지게 되는 경험도 얻게 된다. 용진산 등반의 매우 많은 이점들로 인해서 우리는 이러한 전통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졸업생 캠프에 오는 아이들에게 용진산은 더욱 특별한 곳이 되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한 번쯤은 올랐던 곳이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소중한 산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등반 과정에서 어릴 적 보거나 겪었던 모든 것들이 나이가 들어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기도 했다. 


 "이모, 여기 원래 이렇게 가팔랐어요? 나 엄청 산 잘 탔네!"

 "여기에서 우리 항상 오이 먹었잖아. 그 오이 왜 그렇게 맛있었냐?"


  물론 누구나 용진산 산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학년은 몰라도 고학년들은 이제 몸이 무거워져 산에 간다고 하면 탄식과 야유를 섞어 싫은 감정을 온 힘을 다해 표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더래도 갔다 오고 나면 또 다른 활력으로 이후 남은 일정을 더욱 즐겁게 참여하기도 했다. 같이 가는 교사들도 산행이 힘들고 고되다 보니 졸업생 캠프를 하며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갔다 와서는 또 운동을 한 듯 몸이 개운해져서 즐겁게 아이들과 이후 일정들을 치루기도 했다.     




 올해 졸업생 캠프는 오랜만에 치루기도 하는 것이지만 상반기에는 그나마도 코로나 분위기가 풀릴 것 같지 않아 기대도 하지 않았다가 거리두기가 느슨해진 틈에 급하게 준비한 행사라서 모든 아이들을 모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저학년들만 데리고 우선 해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본 아이들은 아직 1학년 아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훌쩍 커서 새삼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아이들마다의 기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교사들과의 친밀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들마다 이름을 부르고 아는 체를 하면 달려와 와락 안겼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들은 이름을 부르면 시선을 피하기도 했지만 억지로 잡아당겨 안아주면 싫지 않은지 가만히 안겨있는 것을 보며 속으로 아직은 내자식이 구나 하며 뿌듯한 감정이 일었다. 그랬다. 난 이 아이들을 졸업은 시켰지만 나이가 들어도 내 자식 같이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노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다 큰 아이들이 마당 모래밭에 우르르 몰려가 수로를 파고 물을 붓고, 물길을 내는 게 영락없이 그때 그 모습이었다.   

  

 “너희들은 왜 4년이 지나도 노는 게 똑같니?”

 “맞아요. 우린 원래 그래요.”     


 우리 터전을 졸업한 아이들은 영원히 똑같을 거란다. 아이들 뿐만 아니다. 부모도 변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한쪽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속에 섞인 부모들의 모습이 아이인지, 어른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천진난만했다. 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 웃음이 배실배실 나왔다.      


 “너 그거 기억나? 식판 들고 맛단지 옆에 가서 밥 먹었던 거?”

 “야, 나는 남자처럼 쉬한다고 서서 볼 일 보다가 바지가 다 젖었잖아.”     


 아이들은 그 시절 이야기들을 보따리째 풀어놓는다. 지나고 나니 배꼽 잡고 웃을 일이지만 그 시절 그 아이들을 돌보던 교사들은 얼마나 천불이었을까. 하지만 교사도 지난 일이 추억이 되어 함께 웃고 만다.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의 기억이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교사의 보람은 그것에 있으니까 말이다.

      

 하루 해가 조금씩 저물어가기 시작하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모이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했던 하루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쉬운 마음에 자리를 떠날 줄 모르고 부모들은 오랜만에 만난, 한때는 공동육아 식구들이었던 모두와 회포를 푸느라 마당이 온통 웅성웅성하다. 반갑고, 즐겁고, 또 아쉬운 자리지만 이제 다시 시작한 졸업생 캠프가 내년에도 또 이어지리란 믿음으로 적당히 마무리하고 하나둘씩 헤어졌다. 아이들도 모두 내년에 또 만나자는 인사가 자연스럽고, 교사에게 안겨 작별 인사를 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해맑았다. 이런 맛에 졸업생 캠프를 했었지. 쌓인 기억들이 노을 진 하늘을 배경 삼아 필름처럼 풀려갔다.


 저 녀석들이 다 큰 어른이 되어도 보고 싶다. 좋은 어린이집에 대한 기억과 좋은 어른, 좋은 교사에 대한 기억이 저 녀석들을 좋은 어른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믿는다. 그래서 계속 졸업생 캠프는 이어질 것이다. 그 아이들의 미래가 자꾸만 기대된다. 




*터살이는 아이들이 터전에서 1박 2일 동안 살아보는 일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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