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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Nov 18. 2022

나는 '책 먹는 여우'다

 아이가 어렸을 적, 나는 수많은 책을 사서 읽었다. 그 시절만큼 책을 많이 사서 읽은 적이 없다. 책의 종류는 많고 많았지만 그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책들은 바로 동화책이었다. 아마도 내 아이 또한 그 시절만큼 책을 많이 읽었던 때가 없을 것이다. 나야 뭐 책을 좋아하니까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읽고 있지만 나와는 다른 내 딸은 매일 뉴스라도 보면 다행이다 싶을 만큼 글 읽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태어나서부터 초등 저학년 때까지 읽은 책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시절인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 시절 아이에게 책을 사준다는 핑계로 수많은 동화책을 사서 모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이보다는 내가 그 책들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아이가 잠자기 전 책을 한 권씩 읽어주었는데 아이더러 골라오라고 하면서도 결국 내가 읽고 싶은 책으로 유도했던 일이 다반사였다. 여러 책들 중에서 나는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림이 따뜻하고 재미난 이야기도 많았다. 


 문득 옛날 일이 떠올랐던 이유는 내가 좋아했던 책 하나가 요즘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바로 ‘책 먹는 여우’이다. 아이 읽으라고 사준 동화책이었는데 이 책 또한 아이보다 내가 더 좋아했던 책이었다. 이야기 자체가 기발한데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너무 행복해졌다.     

      

 책 먹는 여우의 내용은 이렇다. 책을 좋아하는 여우가 있었다. 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이 여우는 책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소금과 후추를 갖고 다니며 책을 다 읽은 다음 그 책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먹어버린다. 책을 계속 사 먹다가 빈털터리가 된 여우는 책이 너무 먹고 싶어서 결국 서점에 있는 책을 훔치다가 경찰에게 잡혀 버리고 만다. 교도소에 들어간 여우에게 내려진 벌은 책을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안 먹고 살 수 없었던 여우는 결국 자신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너무도 많은 책을 읽고 먹었던 여우라 재미있는 책을 쓸 수 있었고 그것은 결국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부자가 된 여우는 이제 먹고 싶은 책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지만 자신이 쓴 책이 특별히 맛있었다고 한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그랬을까? 자신이 쓴 책이 가장 재미있었다는 구절은 두고두고 내게 각인되는 구절이었던 것 같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요즘 다시금 생각해보는 구절이기도 하고 말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다섯 달이 되었다. 일주일에 두 편씩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지만 구독자도 많지 않고, 읽는 사람도 많지 않다. 처음엔 내가 글을 쓰기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읽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멋모르는 기대였다. 그래서 글을 쓰는 순간순간 예전 같은 자신감은 조금씩 사라지고 책을 내고 싶은 꿈도 조금씩 접는 중이다. 아무래도 내 문장력은 사람들을 잡아 끄는 매력이 없고, 소재 또한 썩 재미가 없는 것인가 보다 했다. 솔직히 내 글이 이렇게 재밌는데 왜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으며 누군가에게 조그만 동기부여조차 할 수 없는 글을 계속 써야 할까? 요즘 들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답은 항상 같다. 그런 질문이 나를 시나브로 조여 오더라도 계속 글을 쓰게 될 것 같은 것이다. 그것은 내가 바로 ‘책 먹는 여우’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 먹는 여우랑은 다르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는 애시당초 글러먹은 것 같다. 하지만 우선 나는 내 글에 가장 만족하고 있다. 내 글은 내게 있었던 일을 돌이켜 보는 일이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고,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이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써왔던 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공개된 플랫폼을 빌리는 것이 다를 뿐이다. 지금까지 내가 써왔던 글들이 인터넷상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가장 만족스럽다.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내 재산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내 글에 꾸준히 라이킷을 눌러주는 독자들이 있어 행복하다. 더불어 그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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