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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Dec 02. 2022

가수 탄생!

 문자가 한 통 왔다. 누가 보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문자로 온 사진 한 장을 먼저 확인했다. 사진은 딸아이가 마이크를 잡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어느 작은 행사장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중이었다. 사진만 달랑 한 장 보내고는 가타부타 내용 하나 없는 이 문자가 뜬금없었지만 사진만으로도 누가 보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어제 딸과 인스타그램 DM(Direct Message)으로 주고받은 대화가 생각이 났다.     


 “엄마, 오늘 성래 엄마랑 통화했는데 서로 누군지 모르고 통화했다가 나중에 알아봤다니까?”

 “무슨 소리야?”

 “공연 섭외 전화가 왔는데 성래 엄마도 나인지 모르고 전화했고, 나도 해달라길래 했는데 성래 엄마가 하는 행사인 줄 몰랐다고.”     


 성래 엄마는 딸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을 다닌 친구의 엄마였다. 가끔 연락을 하는 사이이긴 하지만 서로 최신 근황을 잘 모르던 차에 두사람은 우연히 같은 행사의 주최자와 공연 당사자로 만나 서로 대면하고 깜짝 놀랐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공연하는 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엄마랍시고 내게 보내준 건데 사진만 달랑 보내져 오다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면 ‘나는 니 딸을 데리고 있다!’ 식의 협박문자로 오해할만해서 웃음이 나왔다.   

  

 올해 딸아이는 많은 노래 공연을 했다. 어쿠스틱 기타를 치는 아이와 둘이서 밴드를 만들어 몇 년 전부터 함께 노래 연습도 하고 공연도 가끔 했는데, 공식적으로 공연비를 받고 공연을 다닌 건 올해부터였다. 대단히 두둑한 공연비를 받는 것은 아닌데 한 달에 두세 번 정도의 공연을 하고 나면 용돈 정도는 소소하게 벌 수 있어서 혼자 자취하면서 드는 생활비에 많은 보탬이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특히 올해 초에는 선거 등의 다양한 일들이 많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느슨해지기 시작하면서 공연 섭외가 많았다. 하지만 잠깐일 줄 알았던 공연 섭외가 이후에도 꾸준히 들어오는 것을 보면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중인가 보다. 심지어 내 지인들도 나를 통해 딸아이의 공연 섭외를 물어보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한편으로는 내 어깨가 으쓱해 지기도 했다.

     

 지역사회는 꽤 좁다. 그래서 이름을 알리는 것이 많이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래를 부를 무대가 많은 것도 아니다. 딸아이는 그래서 지금처럼 공연을 다니는 일이 꾸준하지는 않을 거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아이 말로는 ‘아마 24살까지는 하지 않을까?’ 하는데, 그 이후에는 더 어리고 노래 잘하는 애들이 공연 섭외에 우선순위가 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그렇더래도 아이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함께 하는 아이와 돈독하게 지내며 둘이서 밴드 활동을 오랫동안 하고 싶은 계획은 있어 보였다.     


 아이가 노래를 잘하는(편인) 것은 조금은 내 영향을 받은 것도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타고나기를 목소리가 듣기 좋게 태어났다. 젊은 시절 삐삐 인사말에 저장된 내 목소리에 한 번만 만나 달라고 하루 종일 삐삐를 울려대던 사람이 있을 정도로 좋은 목소리를 타고났고 음감도 조금 있는 편이었다. 그런 나를 조금 닮아서인지 아이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아이는 본격적으로 노래를 열심히 불러댔고 학원도 몇 달 다닐 정도로 노래에 진심이었다. 누군가는 아이를 가수를 시켜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솔직히 TV에 나오는 가수를 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라서 그런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아이도 엄마가 가끔 해주는 객관적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였는지 스스로도 그런 꿈을 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합주를 하고, 노래와 관련된 활동들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했다. 요즘은 뮤지컬을 배워보고 싶다며 그 모임에도 자주 나가는 듯 보였다.     


 나는 이러한 아이의 다양한 활동들이 항상 고맙다. 처음엔 학습이 느린 아이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기 위해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지지하고 꾸준히 근성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도록 의지력을 높여주었다. 사춘기 이후엔 아이가 하는 것들에 대해 어떠한 참견도 하지 않았다. 물론 참견을 했다고 한들 아무런 효과도 없었을 것이다. 아이는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았고, 그렇게 찾아낸 것들을 지키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옆에서 ‘널 믿어.’라며 응원해주는 일이었다. 나는 딸아이가 무엇을 했든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스스로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꿈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부모가 원하는 직업이나 희망사항들을 자신의 꿈으로 여기고 있는 아이들도 꽤 있어 보였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부모가 가라고 하는 학교, 배우라고 보내는 학원, 되라고 하는 장래희망에 따라 순응하며 살아왔던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뭘 잘하는지 잘 모르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에 아이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었던 경험은 얼마나 많았을까.


 보육교사로 생활하며 다양한 부모들을 만나보았는데, 어떤 부모들은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선택을 해보도록 이것저것 물어보고 아이의 선택을 따르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영유아 시기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은 해로운 일이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주 어릴 땐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선택은 책임을 낳는다. 하지만 그 시기의 아이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심지어 자꾸 스스로 선택을 했던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아이로 성장하기 쉽다. 오히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영유아 시기의 아이들보다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키워가는 10대의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선택의 기회는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청소년들의 선택은 묵살되기 쉽다. 아이들의 생각과 선택이 부모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것마저 배려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의 선택에 조금씩 책임지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실패하는 경험은 아이를 훌륭한 어른으로 만들 확률이 매우 높다. 자신의 삶을 망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다. 


 오늘 받은 문자 한 통에 생각의 가지가 길게도 뻗어 나왔다. 결론은 내 딸을 자랑하고 싶은데 팔불출이 될까 봐 사적인 글에 조금 끄적거려본 얘기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나무 밭에 외치는 심정이랄까.     


 “내 딸 노래 잘해요. 가수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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