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의 뒤통수를 보고 자란다.
저는 광주지역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보육교사예요. 공동육아는 부모와 아이, 교사가 함께 아이를 바라보고 잘 키우기 위해 서로 소통하고 노력하는 조합형 어린이집을 일컫는 말이에요. 모두가 함께 어울려 잘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내 아이만 잘 키우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모두의 아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교육적 대안을 찾아보고 실천하는 곳이지요. 그래서 저는 보통의 보육교사보다는 직업적 자부심이 높은 편입니다. 10년이 넘게 보육교사로 살면서 제가 키웠던 아이들은 적어도 저와 함께 있는 동안은 즐겁고 행복했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예요. 그런 아이들과 사는 저 또한 매일이 즐겁고 행복했음은 당연했고요.
하지만 공동육아 교사로 사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해요. 교사회의, 방모임, 각종 행사, 전국단위의 교사대회 등을 포함한 수많은 일정들은 매주, 매달, 매년 이어져 있고, 항상 깨어있는 교사가 되기 위해 스스로 공부도 많이 해야 하지요. 부모들과의 상담은 상시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고요. 때문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남의 아이 돌보다 내 아이 못 돌본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고 다니기도 합니다. 싱글맘이었던 저는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이 혼자만 집에 둘 수 없어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회의를 하기도 했고, 더러는 아이를 혼자 집에 남겨 놓고 늦게까지 모임을 해야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는 엄마로 인해 불편하고 힘든 일들도 많았을 거예요.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이는 그것에 대해 한 번도 불평했던 적은 없었네요.
저는 아이와 단 둘이 살면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특별히 다짐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떠올려보면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 뿐이에요. 행복한 삶은 저절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다고 행복을 경험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작은 것에도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면 사실 행복한 삶은 조금 쉽답니다. 이혼을 하고 딸과 나, 둘이서 산지 11년째. 아이가 마냥 엄마, 아빠의 이혼 사실에 몰입해서 매일을 비참하게 살아갔다면 옆에 있던 행복을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에요. 하지만 아이는 엄마와 매일의 일상을 즐겁게 보냈고, 아빠와 주말마다 만나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았어요. 그리고 나는 아이의 일상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매일 즐거운 일을 생각하며 살았어요. 물론 시골에서 사는 일은 절로 매일이 즐거워지는 일이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으니까.
아이를 키우면서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일상을 잘 꾸리는 일이었어요. 좋은 먹거리와 편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아이 스스로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지요. 매일 아이를 위해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하며 맛있는 음식 냄새가 자연스럽게 집안을 채우도록 했어요. 그 음식의 재료는 내 노동으로 일군 텃밭에서 구하기도 했으며, 세상의 모든 풀, 모든 동물, 모든 생명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내 아이가 세상 모든 것들에게 다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 세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 또한 기꺼이 그러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거예요.
함께 살면서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어요. 저는 공동육아 보육교사로 살면서 매일이 바빴지만 매일 즐겁고 성실하게 그 모든 것들에 임했지요. 아이는 제가 가는 각종 회의마다 따라다니며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요.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항상 활력이 넘치고 긍정적이에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움직이는 삶은 그러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만들어낸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 말이지요. 아이는 이러한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옆에서 지켜보았고 힘들지만 보람되게 살아가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알게 모르게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 거예요. 아이는 부모가 쏟아내는 열 마디 말보다 부모의 신념과 그에 따른 올바른 행동거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믿고 있거든요.
어쩌면 이혼을 결심하고, 그동안의 결혼생활 동안 쌓인 피로에 지쳐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할 뻔한 적도 있었죠. 하지만 세상에서 전부인 나의 아이가 나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처럼 여긴다면 나는 얼마나 더 불행하게 될까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나만을 바라보며 세상 꾸밈없는 함박웃음을 지어주는 아이를 바라볼 때 절로 행복해지는 거예요. 아이가 내게 이렇게 큰 선물 보따리를 주었는데 어떻게 불행의 구렁텅이 안에서만 살 수 있겠어요. 나에게 준 선물을 더 큰 보따리로 돌려주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다행히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꾸리며 사는 것. 그렇게 사는 모습은 아이에게 훌륭한 모델링이 되었으리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아이는 부모의 뒤통수를 보고 자란다고 하더라고요. 성인이 된 우리 아이의 일상을 보면 힘들지만 보람된 직업을 갖게 되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포기하지 않고 더 잘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매일을 분주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왠지 내가 다시 20대가 된 듯 없던 활력이 생겨요. 그리고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스스로 뿌듯해요. 아이에게 저는 멋진 뒤통수를 선물해줬음이 분명한 것 같거든요. 이렇게 저도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