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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Aug 02. 2022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

 나는 처음부터 아이를 하나만 낳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적어도 둘은 낳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둘째를 낳을 계획은 우리 부부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자 동생에 대한 요구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집에서 같이 놀 놀이의 대상이 필요하게 되어서였다. 불행히도 둘째를 계획하고 1년이 조금 넘도록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예민한 성격 탓이었는지 아이를 낳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약간의 강박이 내 몸에 스트레스를 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둘째는 포기했는데 엄마의 어려움을 알 턱이 없는 아이는 다 크도록 동생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지 못했다.


 동생을 낳아주고 싶은 바람은 나에게도 절실했다. 아이는 놀이 상대가 없어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결국 그 빈자리는 내가 채워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같이 놀아줄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 혼자서 놀 수 있는 것들을 매번 찾아주어야 했다. 다행히 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처음엔 그림 그리기에 필요한 도구들을 사다 주었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땐 그림 그리는 것에 집중하며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방학 동안 바느질이며, 뜨개질 등을 익혀하던 것들이 조금씩 손에 익어 십자수나 리틀 위빙(작은 직조 틀에 다양한 직조물을 만드는 일) 같은 것들도 해보았고,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진행하는 신생아들을 위한 모자뜨기도 몇 번 하기도 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심심하다는 말 대신 바쁘다는 말들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윈윈작전'이었다. 


 아이가 혼자서도 잘 놀게 된 계기는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된 것도 영향이 컸다. 그곳은 놀잇감이 매우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사를 가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마당을 갖고 싶은 것이었다. 마당은 나에게 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사적인 외부공간이기도 했지만, 아이에게는 안전하게 놀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아파트에 살던 시절 아이에게 나가서 놀다 오라고 쉽게 얘기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혼자서 놀이터에 가는 동안 생길 불의의 사고에 대한 염려가 가장 컸기 때문이었다. 주차공간은 협소하고, 사람 다니는 곳과 차가 다니는 곳의 경계가 불분명한 데다가 주차공간이 부족해 빽빽하게 아파트를 채운 자동차 사이로 작은 아이가 다니는 길은 항상 위태로워 보였다. 아이와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안전한 놀이공간은 도시에는 없어 보였다.  시골로 이사를 하니 늦잠을 자고 싶은 주말 아침, 아이는 배만 고프지 않으면 엄마를 깨우지 않고도 혼자서 마당에서 매우 잘 놀았다. 마당에 장난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는 나무 막대기 하나로도 매우 다양한 놀이들을 하며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보통의 여자아이들과는 다르게 소꿉놀이를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아이의 놀이를 보면 막대기로 흙파기, 구멍 내기, 나무껍질 벗겨내기, 그림 그리기 등 나무 막대기만으로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놀이들을 했다. 심지어 그렇게 나무 막대기로 구멍을 내다가 두더지를 만나서 엄마를 숨넘어가게 부른 적도 있었다. 나도 두더지를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어서 한참을 신기하게 쳐다봤는데 거의 퇴화된 눈이며 땅을 파기 적당한 길쭉한 발톱과 폭신한 발바닥 젤리까지, 가능하면 키우고 싶을 만큼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던 녀석이었다. 한참을 태양과 마주하느라 기운이 빠진 두더지를 놔줘야 할 때 매우 아쉬워하며 땅속으로 보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놀이는 매우 중요하다. 놀이는 아이들에게는 일이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성장한다. 여럿이 놀 때는 같이 노는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성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혼자 하는 놀이에서도 아이는 성장의 기회를 갖는다. 몸을 움직여 노는 일은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대소근육의 발달을 돕고, 다양한 자연물을 가지고 노는 일은 물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을 경험하고 자연과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다. 심지어 모든 자연물에는 생명의 힘이 깃들어 있어 따뜻한 감성적 경험을 갖게 하기도 한다. 나무나 풀에는 따뜻한 햇빛을 품은 기운이 깃들어 있으며, 물가의 돌멩이에는 거센 물줄기의 힘을 견뎌낸 힘이 깃들어 있다. 그러한 것들은 내가 상상하는 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은 공장에서 만들어낸 장난감들은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요즘의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영상물을 경험하는 데 보내고 있는데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이 아니라, 만져보고, 들어보고, 냄새 맡아보는 모든 감각적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시간은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다. 그 아까운 시간들을 어른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수많은 영상물에 아이의 성장을 맡기고 있는데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수동적으로 세상을 경험한 아이들은 조금씩 놀이를 잃어간다. 당장 아이에게 혼자서 놀 시간을 주었을 때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특별한 놀잇감이 없어도 주변의 사물을 가지고 상상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면 분명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것이다. 하루 단 30분이라도 아파트 놀이터나 근처 공원에 나가 자연 속에서 놀게 해 보자. 매일의 30분이 쌓이면 아이는 달라진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경험하며 다양한 꿈을 갖게 하는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할 것이다. 가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잘 찾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러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장 신나게 노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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