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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Aug 09. 2022

휴가를 다녀왔다

다 큰 아이들과의 여름휴가 여행기록

 놀고먹는 백수에게도 휴가란 매우 기다리는 시간이다. 평소엔 혼자 놀아야 하지만 휴가 때에는 다 같이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뚜렷한 휴가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평소 잘 어울리던 사람들과 또 휴가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일행 중에 남원에서 사과밭을 하는 동생을 꼬드겨 도합 세 가정이 농막에서의 하루를 함께 하자고 약속했다. 


 우리는 꽤 오래된 인연이다. 아이들이 같은 어린이집, 같은 나이의 딸들이라, 아이들이 성장하는 내내 함께 어울렸던 사이다. 그리고 그전부터 광주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함께 만들고 성장시켜왔던 오래된 인연이었다. 아직도 함께 하는 모임으로 자주 보는 사이라 아이들끼리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아이들은 서로 학교가 다르고 각각의 친구들도 달랐지만 또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가 애틋했다. 1년에 겨우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사이인데도 밤새 수다를 떨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아이들끼리 단체 톡방을 만들어 일상적 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서로 사는 곳이 천차만별이면서도 옆집에 사는 친구들처럼 힘든 고민들까지 나누는 관계로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여행에 함께 하자고 여러 아이들에게 이야기했지만 각자의 일정들이 있는 관계로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세 가정만 함께 가게 되었다.


 첫날 아침 일찍부터 부산스럽게 짐을 싸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날씨는 더없이 좋았고 정말 휴가 기분이 났다. 잠시 비 소식이 있어 걱정은 했는데 다음날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덕분에 뱀사골 계곡에서의 물놀이는 뜨거운 여름을 잊을 만큼 시원하고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가능하면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은 얕은 계곡을 찾아갔었는데, 다 큰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다 보니 이젠 발이 닿지 않는 계곡이 더 즐겁고, 심지어 다이빙까지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물에 발을 담그고 멀리서 아이들이 용감하게 깊은 물속으로 다이빙을 해서 들어가는 것만 보아도 절로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물놀이를 한 아이들과 농막에 돌아와 저녁을 해 먹고, 이제 미성년 아닌 성년으로서 술 한잔씩 함께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부모 유전자를 잘 물려받은 아이들은 모두 술도 썩 잘 마셨고 맘먹고 마시면 오히려 우리보다 더 잘 마시겠구나 싶을 만큼 몇 잔을 마시고 나서도 흐트러짐 없이 유쾌한 자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올해 스물한 살이 되었다. 대부분의 이 연령대의 아이들은 대학생들이겠지만 어쩌다 보니 세 아이 중 한 명만 대학생이다. 한 아이는 마이스터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썩 괜찮은 IT업계의 직장에 취업을 했고, 우리 아이는 대안학교를 다니다 학교 밖 청소년 취업 프로그램을 통해 들어간 직장에서 잘 적응해 1년이 넘게 생활하고 있다. 대학생의 생활이야 열심히 공부하는 일이 전부인 터라 아이들의 이야기에 대부분은 두 아이의 직장생활에 대한 주제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아직 직장 초년생인 아이들에게 어려운 점들은 참으로 많겠지만 다행히도 두 아이 다 직장생활에 만족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회사 내 복지가 너무 좋아서 나는 그만 입사지원서를 지금이라도 넣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인지라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고민을 하기도 했고, 직장 내에서 일과 관계에서의 힘든 점들을 이야기하며 잘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직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한 대학 다니는 친구의 고민에 힘이 되어주기 위해 함께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가끔 우리는 옆에서 어른이랍시고 조언을 해주다가도 그것이 결국 잔소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차라리 아이들의 생각들은 어른보다 나았고, 더욱 참신해서 그들의 생각을 오히려 응원해줘야 했다. 아이들은 힘든 일들도 많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포부와 자부심도 가지고 있어 첫 직장인데도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속으론 그런 아이들이 대견할 뿐이었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즐겁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날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느지막이 광주로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은 가기 싫다는 말을 계속 읊조렸는데 나도 아이들이 차라리 같은 도시에 살아서 보고 싶을 때 보고 힘이 되어줄 순간에 옆에 있어 주고 싶었으며, 나 또한 그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기도 했다. 다음 모임을 서둘러 약속하고 아쉬움의 인사를 나누며 또 하나의 행복한 기억을 가슴 깊이 저장해 두었다.


 아직 20대를 갓 시작한 아이들이기에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들을 참 잘 키워낸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성실히 수행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려워하지 않고 어떤 사사로운 욕심도 개입함이 없이 잘 어울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스스로 자찬해도 될 만큼 아이들을 잘 키우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롤모델로 주변의 어른을 본다.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좋은 모델링을 해주었을 것이다. 함께 어울려 살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배움의 기회를 주었음을 확신한다. 물론 아이들은 내가 해주었던 것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며 너무나도 잘 자라주었다. 나를 좋은 어른으로 만들어 준 아이들에게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다.


 더욱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지리산의 밤


쏟아질듯한 별빛을 기대했던 건 아닌데

잠시 올려다본 밤하늘은 

구름 사이로 듬성듬성 보이는 별빛

옥색 물빛에 부서지던 웃음이

문득 까만 하늘에 떴다.

별빛보다 환하던 우리들의 웃음

지리산 뱀사골 깊은 계곡에

모두 흘려놓고 온 줄 알았더니...



깊은 산을 가득 메운 밤새 소리와

귓가를 간지럽히는 풀벌레 소리

속달 속달 서로를 어루만지는 대화 속에서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고

이불보다 더 포근한 서로를 감각하며


그렇게 깊어진 날

서로에게

서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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