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살이를 다녀왔다.
개학을 하면서부터 기대하던 들살이였다. 들살이 가서는 무엇을 해 먹고, 들살이 가서 몇 시에 자고, 무엇을 하고 놀 것이며 캠프파이어를 할 땐 마시멜로를 구워 먹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한 달을 넘도록 계획하고 들떠 있던 아이들이었다.
출발 당일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하기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막상 2박 3일의 일정에 맞춰 싸 온 가방과 그 기간 동안 먹을 음식들을 메고, 들고 지하철로 터미널까지 이동하는 동안 아이들은 이미 3일 일정을 모두 마친 아이들처럼 지쳐버렸다. 잠시의 쉬는 시간도 앉을 곳을 찾아 널브러져 있기 일쑤였다. 이제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난 그렇게까지 맘씨 고약한 선생은 아니니까 살짝 참고서 기운을 내라고 응원을 해주었다.
어쨌든 아이들은 결과적으로는 즐겁게 들살이를 다녀왔다. 실컷 놀고, 실컷 먹고, 실컷 소리 지르다 왔다. 바람이 많이 불어 밖에서 캠프파이어를 할 수는 없었지만(산이 둘러싸여 있어 산불의 위험이 있었다.) 소시지도 구워주고, 마시멜로도 구워줬더니 아이들은 그것대로 만족하며 하루 돌아보기를 하는 순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적어내기도 했다.
사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진솔한 대화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래 일정상으로는 아이들과 분위기를 내볼 겸 모닥불 주변으로 동그랗게 앉혀놓고 진지한 시간을 가져보려고 했었다. 산불 이슈로 불발된 캠프파이어를 대신해서 어쩔 수 없이 실내에서 스마트폰 조명을 켜고 투명물컵을 올려 살짝 분위기만 내봤는데 아이들은 또 처음 보는 광경에 그것대로 좋아했다. 이야기 주제는 ‘서로에게 고마웠던 일’이었다. 동그랗게 앉은 위치에서 옆친구의 고마웠던 점을 순서대로 돌아가며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막상 이야기하라고 하면 금방 떠오르지 않을 수 있어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주겠다고 했는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여러 가지 고마웠던 일들을 금세 떠올리며 어서 이야기하고 싶어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OO언니가 인형을 빌려줬는데 자기는 놀지 않는데도 가지고 놀게 해 줘서 고마웠어요.”
자신은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거라고 덧붙이며 명백한 고마운 이유를 야무지게 말해주었다.
“내가 벌레가 무서웠는데 OO이가 나 대신 그 벌레를 치워줬어요.”
“내가 혼자서 치우고 있었는데 옆에서 같이 도와줬어요.”
고마웠던 일들이 어찌나 많은지 아이들은 잘도 생각해 내며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물론 고마웠던 일들의 대부분이 같이 놀아주었다는 내용이었지만 일상에서 놀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은 아이들에게 같이 놀아준다는 것의 의미는 매우 큰 것이기 때문에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칭찬을 하는 아이는 하는 아이대로 발표를 하고 싶은 마음에 잔뜩 기대를 하는데, 칭찬을 받는 순서가 온 아이들은 또 그것대로 가볍게 긴장하고 기대를 한다. 다른 아이들을 칭찬했던 것처럼 나도 이제 칭찬해 주겠지 하며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듣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것대로 귀엽고 웃음이 난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자신을 칭찬해 줄 아이가 무슨 말을 할지 기억이 나지 않아 계속 생각하고 있자, ‘아, 내가 말해주고 싶다.’ 하며 상대방이 자신에게 무엇을 고마워할지 다 알겠다는 듯 설레발을 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늘의 ‘웃음 사냥꾼’은 그 아이는 아니었다. 강민이라는 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평소에도 교사의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도 고마웠던 일을 이야기하는 자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지 제법 진지하게 들살이 기간 중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보며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차례가 되자 매우 자신 있게 말하기 시작했는데 옆 친구가 아닌 반대편에 앉아 있는 친구를 보며 고마웠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잔뜩 기대하고 있을 옆친구가 실망할까봐 하던 이야기를 끊으며 다시 이야기해 주었다.
“아니, 강민아. 너의 옆친구에게 고마웠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야. 다시 생각해서 이야기해 줄래?”
“아! 그래요? 나는 몰랐어요. 아~. 뭐가 있더라. 뭐가 있더라.”
그렇게 분주히 말을 뱉어내며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발표하지 못하고 지나쳐가야만 했다. 계속 기다리다가는 일정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강민이의 실수로 인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을 칭찬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는지 그 이후로는 순서대로 모두 고마운 일들을 발표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계속 강민이가 제대로 된 발표를 하지 못한 게 맘에 걸려 한 번 더 누군가를 칭찬할 기회를 줘보았다.
“강민이는 고마웠던 일이 생각나는 게 있으면 다시 이야기해볼래?”
“내가 오늘 OO이를 놀이할 때 도와줬어요.”
“아니….”
내가 말문이 막혀 이야기를 잇지 못한 것인지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려 이야기를 못한 것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찌 됐든 더 이상 이야기를 잇는 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강민이더러 ‘오늘의 웃음 사냥꾼’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다.
강민이는 자신의 이야기에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으니 이유야 어쨌든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웃겼다는 만족감으로 그 자리를 마무리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퉁쳤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아이들은 교사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강민이를 크게 비웃지 않고 그냥 호탕하게 웃고서 넘겨주었다.
나에겐 들살이 기간 중 그게 가장 고마운 일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