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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Dec 17. 2022

명명 (命名)

지니의 언어 탐구 영역

'이름' =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


우리는 새로운 것과 조우하게 되었을 때 그 대상에 이름을 붙인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새로운 물건이 만들어졌을 때.

이전에 보지 못했던 현상들을 보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는 그것들에 이름을 붙인다.


요즘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화두 중 하나가 이름 붙이기, 즉 명명이라는 행위이다. 


명명 (命名)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일차원적으로는 사물, 사람, 현상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의사소통에서의 혼란이나 오류를 급격히 줄일 수 있는 행위이다. 내가 지시하는 것을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고 상대가 얘기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내가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명명의 의미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일단 명명화작업을 끝내고 나면 사람들의 사고가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례로 한참 사람들 사이에 대화만 하면 떠나지 않고 사용되던 단어가 있었다. 


금수저 vs. 흙수저


들으면서 내내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는데 그래서 더더욱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 나는 이 용어들에 이토록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인지..


사람들은 흙수저 = 불행한 삶, 희망없음 이라는 개념과 동일시하며 사용하고 있었다. "흙수저가 그렇지..." "흙수저라 그래." 흙수저란 단어와 같이 붙어져 나오는 문장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사람들은 비난의 대상이 필요했던 것임을 볼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흙수저'인 내 상황이야.'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기 보다 바깥 정황으로 돌리는 것이 훨씬 쉽다. 흙수저 출신이라는 것이 실패가 많은 우리네 삶에 좋은 변명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즉, 사회적 구성원들 대부분이 이해하는 두 단어 금수저 vs. 흙수저로 관념화시켜 놓은 프레임이 있으니 내 실패가 너무나 정당화되는 것이다. 


"흙수저가 그렇지..." "흙수저라 그래."


이 말은 사실일까? 


흙수저 출신이 소위 말하는 성공을 이룬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데... 도리어 크게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흙수저 출신이거나 큰 실패를 경험하고 인생의 밑바닥이라 얘기할 수 있는 시점까지 내려가지 않았었나?   


"누군가를 도둑으로 보면 그가 하는 행동이 다 의심스러워 보인다"는 말이 있다. 내가 oo을 도둑으로 명명하는 순간 그 사람은 내 사고 체계에서 도둑의 속성을 갖게 된다. 그가 하는 말, 손짓, 행동들이 도둑의 그것과 꼭 닮게 느껴진다. 


명명으로 인해 내 뇌에서 frame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단순한 현상을 명하는 것이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체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리 쉽게 이름을 붙이거나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고 해서 단순히 따라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 그 말을 사용하면 할수록 내가 그 단어를 가장 많이 듣게 된다. 그 말인 즉슨 그 언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이도 '나'라는 것이다. 


수저계급과 관련된 신조어를 무슨 유행어처럼 전국민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집단 전체가 어떤 부정적 사고 프레임에 갇힌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 부정적 프레임을 너나 할 것 없이 전하고 퍼트리는 모습이 아주 불편했다. 


우리 조상들도 익히 언어의 힘을 알고 있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 했고 '말이 씨가 된다고 하지 않았나?' 언어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한다면 우리의 언어 습관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신조어를 만들고 사용할 때 조금은 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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