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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Dec 16. 2022

당신의 언어 안녕하신가요? (ft. 우울증 진단)

지니의 언어 탐구 영역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입맛도 없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도무지 무엇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들 모두 우울증과 관련된 증상들이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이라 믿었지만 어느 날 불현듯 그 친구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후 홍콩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위 사태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난 재택근무 모드로 들어갔다. 어디에서 어떤 테러가 일어날지 알 수 없었기에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거의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특히 내가 근무하던 대학교는 학생들이 요새로 사용하면서 곳곳을 불태우고 훼손했던 터라 복구하는 데까지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나의 재택근무 시간 또한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과 학교가 복구되었고 학교 측에서도 다가오는 학기부터는 정상적으로 수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예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나 싶었다. 그러던 찰나 코로나19가 발병했다. 다시 또 집안에 갇히게 되었다. 1년 반 이상 홍콩의 좁은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남의 얘기인 줄로만 알았던 우울증 증세가 내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울증이 '정신적 감기'로 표현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우울증을 겪으면서 언어학자로서 특이점을 발견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들이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리서치하던 중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 연구는 63개의 인터넷 포럼 (6400명 이상의 멤버들)에 포스팅되어 있는 글들을 분석한 것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에는 크게 3가지 특징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1. 부정적 의미의 형용사/ 부사 사용 
(more negative descriptors)


첫 번째 결과는 부정적 의미의 형용사나 부사 사용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내용이다.  예컨대,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외롭다' '비참하다' 등 상황이나 감정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형용사나 부사의 사용이 두드러지게 많았다




2. 과한 1인칭 대명사 사용 
(overuse of first-person pronouns)



개인적으로 두 번째 결과가 놀라웠는데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언어에서는 3인칭을 지시하는 대명사 (그, 그녀, 그들) 보다 1인칭을 지시하는 대명사 (나)가 훨씬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과도한 1인칭 대명사 사용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줄이고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더 쉽게 걸리는 것인지 아니면 우울증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 더 초점을 맞추게 하는 것인지 그 인과관계는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모든 시선이나 사고의 프레임이 자신에게만 향해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부정적 의미의 형용사/ 부사 사용보다 지나친 1인칭 대명사 사용이 우울증 진단에 좀 더 신뢰 가능한 지표라는 것이다. 




3. 절대 주의자적 언어 사용
 (presence of absolutist words)


세 번째 결과도 흥미로웠는데, 그건 바로 “절대 주의자적 단어의 사용” ("항상", "언제나", "완전히" "아무것도" 등)이 우울증 진단에 가장 신뢰할 만한 지표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된 시선으로 현실을 판단 보며 세상을 흑백으로 (black-and-white view of the world) 바라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 삶에서 ‘항상’ ‘언제나’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며 ‘본인’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도 아닌데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며 말에도 극단성을 보이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 포럼의 글에서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는 인터넷 포럼에서는 50% 이상 이러한 언어들이 자주 발견되었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글에서는 80% 이상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언어는 곧 그 사람을 드러낸다. 언어생활이나 패턴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지금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있다. 


잠시만 시간을 내어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 패턴들이 어떠한지 들여다보자. 만약 저 3가지 패턴이 모두 두드러지게 보인다면 하루빨리 우울증 진단 및 치료와 관련해 구체적인 도움을 받아볼 수 있길 권한다. 




< 참고 자료 >  

▶ Clinical Psychological Science journal article

https://journals.sagepub.com/doi/full/10.1177/216770261774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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