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스마트폰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폰케이스가 있으니 괜찮겠지?'
속으로 이런 희망을 품으며 엎드려 있던 폰을 뒤집어 본다.
'헐'
액정은 깨져버렸고 폰은 작동하지 않았다.
비상금이 없는 상태에서 백만 원이 넘어가는 스마트폰을 다시 사려니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얼마 후 새로운 스마트 폰을 샀다.
그러고 나니 이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어폰을 사용하질 못한다.
'제기랄... 없다 없다 하니 돈 들어갈 데가 넘쳐나는구나.'
그러면서 무선 이어폰 없이 지내보자 나 자신을 설득한다. '블루투스를 사용해야 하니까 무선 이어폰은 건강에 좋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먹지 못하는 포도를 바라보며 '저 포도는 신포도일 거야' 라 생각했던 여우가 생각났다. 서글퍼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몇 달을 망설이다 결국 나 자신과 타협을 보게 됐다.
무선 이어폰을 구매한 것이다.
줌미팅이 잦아지면서 출퇴근 시간에도 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최대한 볼륨을 줄여도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내 모습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아 돈을 쓰기로 했다.
착용감이 낯설다.
유선이어폰은 귀에 꼭 맞는 느낌이었는데 이 녀석은 왜 이리 큰 건지...
거북하기 그지없다.
저녁 식사 시간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혼자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는다.
뻘쭘하니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식판에 밥을 덜어 입에 넣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든다.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귀가 먹먹하다.
온 사방의 소리는 물속처럼 멀어지고 내 몸 안으로부터의 소리가 너무 강하게 들려 민망스럽다.
우걱우걱...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인데, 어디더라?
아 맞다!
먹방에서 듣던 ASMR
바로 그 소리 같았다.
내 입안에서 씹히는 음식 소리가 ASMR처럼 들린다.
그 순간 느닷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구나!
외부 소리가 차단되니
내 안의 소리가 확실히
더 잘 들리는구나!
이 단순한 진리를 뜻하지 않은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외부와 차단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외부 시선에서 벗어나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나 단조로운 일상 가운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깨달음이었다.
무선 이어폰은 이미 제값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