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그가 바로 현명한 사람이다.", 논어에도 이 비슷한 말이 있다.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어진 사람을 보면 같아지려고 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면 스스로를 돌아보라." 어떤 변화를 위해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다.
모름지기 배움은 사람에게서 얻는 것이 최고다. 인생을 함께 걷는 세 사람 중 한 명은 삶의 스승이 되고, 그 참된 스승은 우릴 어리석게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업이 망하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등 어려움을 겪다 보면, 우린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분명히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어둠의 동굴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그렇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찾은 정신과에서 사람의 변함으로 얻은 상처 때문에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음을 알았다. 우린 신이 아닌 이상 믿었던 사람의 마음 변함을 꿰뚫어 볼 순 없다. 그런 믿음에 발등 찍혔을 땐 이미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뒤였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람의 배신에 대한 불신은 책이 갖는 불변성을 통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모든 열정은 책이 되었다. 정이 가고, 마음이 가고, 믿음이 가면서 나는 새로운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가장 먼저 책을 찾았다. 처음엔 주로 마음에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집중했고, 그다음엔 스스로 만든 어둠의 동굴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 읽었다.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긴 하지만 작가가 개정판을 내지 않는 한 담긴 내용엔 변화가 없다. 항상 처음 읽었을 때처럼 주던 감동을 고스란히 되돌려주었다. 난 그게 참 좋았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도무지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면,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라. 여의치 않으면 요즘 어디서나 다 되는 인터넷 서점도 좋다. 내 말이 의심스럽다면, 관련된 책을 딱 한 권이라도 먼저 읽어 보고 읽기 전과 후, 그 일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비교해 보길 바란다. 필경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걸 깨닫고, 내가 좀 더 배워야 할 부분이 뭔지 내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쯤 인지 가늠하게 되는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왜 그 한 권이 해당 문제를 푸는 열쇠라고 하는지도 알게 된다.
내게 그랬듯 책은 당신이 당신 인생의 새 주인공이 되는 것을 도울 것이다. 흙수저니 금수 저니 왜 답답하게 아직도 그 아무 쓸데없는 미련에 파묻혀 있는가. 나도 금수저로 태어났다면 하는 미련으로 인생을 허비하고 있느냔 말이다. 왜 멀쩡한 책이라는 삽을 곁에 두고, 왜 그깟 수저에 목숨을 거는지 도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흙수저였지만 뒤늦게 책이란 삽을 찾았다. 그리고 그 삽은 가까운 서점에 가면 즐비하게 널려 있다.
그러고 보면 난 인생을 참 재미없게 살았다. 마땅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바다를 떠돌다가 닿는 대로 그냥 닻을 내리고 그곳이 아니다 싶으면 떠나는 일을 반복했던 것 같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책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든다. 그래서일까 상투적이지만 책을 읽다가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 있으면 그걸 교과서로 따라 살아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책엔 나온다. 삶에서 얻은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해진 사람 이야기,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어려움도 모자라 아홉 살 때는 남자 친척들에게 폭행과 성적 학대를 받았던 소녀가 탁월한 공감력을 인정받아 '토크쇼의 여왕'이 된 이야기 등 동기 부여가 필요할 땐 강한 자극으로, 용기가 필요할 땐 응원으로, 상처가 아플 땐 위로를 통해 일러준다. 나는 그렇게 해서 나아졌고, 나아진 상태에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고 일러준다.
누가 가르쳐 준 건 아니지만 책을 삶의 지침서 삼아 따라 해 봤다. 저자가 책 속에 남겨 놓은 해법대로 아픔을 치유하고 바로 서려했으며, 용기를 갖고 다시 도전한다거나 미래를 위해 자기 계발하고, 경제적 자유를 꿈꿨다. 그리고 매일 독서하고, 스스로 과업을 완수하며, 그 결과를 나는 글로 옮긴다. 정해진 기간도 없다. 내 좋을 대로 필요한 것을 얻거나 텅 비어서 허전했던 곳이 채워질 때까지 쓴다.
팀 페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를 시작으로, 할 엘로드의 "미라클 모닝", 최근에 따라 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까지 얻어진 삶의 철학을 하나씩 하나씩 내 삶에 이식하고 있다. 바꾸지 못했다면 감히 넘볼 수 없던 것들도 이뤘으며, 무엇보다 행복해하는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삶이 배부르다는 표현을 십분 이해한다.
자랑할 만한 모든 변화의 핵심엔 다음과 같은 순차적 단계가 존재한다. 먼저 어떤 문제를 이해하려는 자각과 당면한 문제에 맞서는 용기부터 얻고, 내 안의 자아를 각성하여 얻어지는 자기 존재감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제야 우린 비로소 내 안의 내가 어떤 모양이고, 어떤 빛깔이며, 어떤 냄새를 내는지 깨닫게 된다.
고통의 이유를 각성한 나는 이전 같으면 크게 흔들리던 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두렵고 불안해서 시작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 자아는 트라우마나 콤플렉스까지 제대로 직시하고 보듬을 수 있는 수준이 됐기 때문이다.
자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면 몰랐던 내 안의 숨겨진 힘도 발견하게 된다. 절대로 할 수 없다 여기던 일들도 거침없이 해낼 수 있다. 내겐 강연하는 일이 그렇다. 책을 읽게 되면서 내 안엔 나눔에 대한 갈증이 있고, 이를 실현하고 싶은 욕망이 있단 걸 알았다. 시도해 보기 전까지는 내게 그런 재능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 한심하게도 말이다.
이제 내 존재 가치를 알리는 수식어 중 하나로 '강사'라는 직함이 자연스러워졌다. 당연히 할 수 없는 일,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여겼는데, 문턱을 하나 넘으니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책을 통해 진짜 나를 만나게 되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 안에 어떤 거인이 잠들어 있는지는 직접 용기 내어 내 눈으로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입 벌리고 기다릴 시간에 달려가 감나무를 세차게 흔들어라. 바라는 행복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