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라랜드>
LA로 향하는 고가도로. 줄지어 늘어선 차들에서는 각각 다른 장르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클래식, 힙합, 오페라, 팝, EDM, 어쿠스틱까지. 한 여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을 했는지, 그럼에도 왜 그를 떠나야 했는지에 대해. 영화의 첫 곡 ‘Another Day of Sun’은 영화 <라라랜드>의 긴 여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영화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이는데 첫 번째는 젊은 두 남녀의 사랑, 그리고 그들이 꾸는 예술의 꿈이다. 노래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는 댄서들은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장르의 예술가들로 보인다. 4분가량의 노래와 춤이 흐르는 동안 카메라는 끊어지지 않고 그들을 따라가면서 다양한 예술에 시선을 던진다. 탭댄스, 재즈, 탱고, 무용, 훌라후프, 스케이트보드, 파쿠르까지. 그 모든 소소한 예술문화를 보여주는 카메라의 무빙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위플래쉬>를 연출했던 감독 다미엔 챠젤레는 그만의 독특한 편집 리듬을 갖고 있다. <라라랜드>의 이 첫 번째 씬은 단 한 번도 컷이 끊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변화하는 몽타주를 느낄 수 있다. 이 장면에서 그는 연출을 했다기보다 지휘를 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고가도로 위를 휘저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대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다정하다. 그 시선은 어떤 예술도 소외받지 않기를 원하는 감독의 마음을 전하는 듯하다.
그렇게 또 다른 날의 태양을 꿈꾸며 라라랜드로 달려온 예술가들 중에 미아(엠마 톰슨)가 있다. 그녀는 배우를 꿈꾼다. 하지만 오디션 장에는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 색깔의 수많은 미아들이 있다. 아무도 그녀 안의 열정을 깊이 들여다 봐주지 않는다. 그녀는 사람들 틈에 숨어있을 특별한 한 사람을 찾기 원한다. 그는 돈 많은 영화제작자라거나 대배우 따위가 아니라 그녀의 재능과 열정 그대로를 믿고 지켜봐 줄 수 있는 누군가다.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또한 같다. 그의 재즈에 대한 열정은 불타오르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관심이 없고 그가 그저 크리스마스 캐롤이나 연주해주기를 원한다. 세바스찬은 뿜어 나오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난데없이 화려한 재즈를 연주한다. 모든 불이 꺼지고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진다. 그는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모든 열정을 다해 피아노를 친다. 그렇게 새어 나온 열정을 레스토랑 앞을 지나가던 미아가 듣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깨닫는다. 그가 그토록 그녀가 찾아 헤매던 군중 속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둘은 한 동안 만나지 못한다. 미아는 또다시 수많은 오디션을 보고 세바스찬은 파티 밴드에서 키보드를 연주한다. 자신의 열정을 숨기고 팝송을 연주하고 있는 세바스찬을 보고 미아는 의아해한다. 그 사랑스러운 밤, 두 사람은 아름답게 보랏빛으로 빛나는 경관을 마주한다. 그렇게까지 멋진 것도 아니고 , 그보다 더 좋은 것도 본 적이 있지만 두 사람은 노래하기 시작한다. 한참을 밀고 당기던 둘은 함께 탭댄스를 춘다. 나는 그들의 춤이 하나의 은유라고 생각한다. (어느 미친 사람들이 만나자마자 갑자기 탭댄스를 추겠는가.) 아마도 그들은 긴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열정을 엿보았고 그 열정이 만났을 때 스파크가 튄 것이리라. 길고 지루한 대사보다 훨씬 간결하고 아름다운 표현이었다. 둘은 서로를 아직 잘 모르지만 척하면 척 박자를 맞춰가며 신나게 춤을 춘다. 우리 또한 일상에서 그런 사람을 한 번쯤 만난 적이 있다. 처음 만났지만 대화가 함께 춤추듯이 흘러가는 사람. 두 개의 열정은 마침내 서로를 찾아냈다.
두 사람은 ‘이유 없는 반항’을 보다가 영화 속에 나오는 그리피스 천문대로 데이트를 간다. 대사 없이 인물을 따라가는 천문대 씬은 마침내 그들이 사랑에 흠뻑 빠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함께 별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별안간 중력이 약해졌음을 느낀다. 손수건이 휘릭 떠오르고 두 사람의 몸도 우주로 떠오른다. 파란 우주에서 그들은 춤을 춘다. 사랑은 그런 것일까. 서로를 우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힘. 두 사람이 함께 부르던 ‘City of Stars’처럼, 그들은 파란 별들의 도시에서 서로를 위해서만 환하게 빛난다.
“별들의 도시에서 당신은 저를 위해서만 빛나는 건가요?
별들의 도시에서 당신은 이렇게 빛난 적이 없었죠."
영화는 사랑의 과정을 계절 따라 쫓아간다. 처음 만난 겨울, 사랑에 빠진 봄, 서로에게 불타오르는 여름. 세바스찬은 미아가 자신만의 연극을 시작하도록 응원한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던 미아도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직접 쓴 일인극을 준비한다. 반면 세바스찬은 스스로 생활에 대한 압박을 느끼면서 자신의 열정을 일부 타협하고 전통 재즈가 아닌 일렉트로닉 재즈 밴드에 들어가 활동한다. 미아는 그의 타협을 조금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세바스찬의 밴드가 성공하고 전국 각지로 투어를 바쁘게 떠나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삐걱댄다. 가을이 되고 미아를 위해 서프라이즈 저녁식사를 준비한 세바스찬은 결국 그녀와 말다툼을 한다. 이 장면은 이전 장면들과 다르게 정적이고 딱딱하다. 두 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흐르던 리듬감이 사라진 채 카메라는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기만 한다. 세바스찬은 미아의 열정을 응원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열정은 믿지 않는다. 예술가의 길에서 미아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세바스찬은 현실과 타협한다. 세바스찬은 남들 따위 신경 쓰지 말라고 미아를 응원하더니 어느 순간 당신도 배우면서 왜 남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느냐고 외친다. 그 순간 음악은 끊어지고 미아는 헛웃음이 나온다. 미아는 그의 응원과 믿음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처럼 오븐 경고음이 찢어지듯 울려 퍼진다.
일인극 공연 후 관객의 혹평을 들은 미아는 다 그만두겠다며 고향으로 내려간다. 사실 미아에게는 그 혹평보다 세바스찬의 거짓 응원을 더욱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세바스찬은 미아의 캐스팅 전화를 대신 받고 그녀를 찾아 볼더시티까지 쫓아간다. 미아는 왜 자신이 꿈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변명하고 세바스찬은 그녀를 설득한다. 그는 아마도 처음으로, 미아의 꿈을 진심으로 믿고 응원한다. 지금까지의 달콤한 거짓 속삭임과 달리 그는 시끄럽게 난동 피우고 소리를 지른다. 넌 최고라고, 꿈을 그만두지 말라고. 미아는 마지막으로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오디션장에 찾아간 미아는 그 자리가 오디션이 아니며 캐스팅이 확정된 미팅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가 그토록 상처받았던 일인극이 최고의 기회를 향한 발판을 만들어준 것이다. 캐스팅 디렉터는 미아의 이야기와 그녀의 열정을 궁금해한다. 그녀는 그녀 자신처럼 바보같이 꿈꾸던 이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강물에 맨발로 뛰어드는 것. 꿈은 그런 것이다. 바보처럼 보이고 상처받기도 쉬운 것. 미아의 마지막 노래 ‘Audition’은 바보같이 꿈꾸는 예술가들을 응원한다.
“광기야말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보게 해 줄 열쇠다.
잠긴 문 너머는 미지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모든 면에서 아름다운 영화 라라랜드는 나에게 단 하나의 아쉬움을 남긴다. 감독의 의도가 꿈꾸는 예술가를 위로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작 꿈꾸는 예술가인 나에게 라라랜드는 성공한 자의 조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가 나에게 조롱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내겐 아직 5년 후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꿈꾸는 예술가들에게 그 5년 후는 오지 않을 것이다. 내 자격지심 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너무나 간단하게 미아의 성공을 표현한다. 감독 자신이 이미 성공한 예술가이기 때문인 것일까? 감독은 그들의 성공과 그 과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많은 생략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 영화로써 훌륭한 마무리였지만 성장영화로써는 너무 손쉬운 마무리였다. 감독은 포기한 예술가와 성공한 예술가로, 단지 두 부류로만 예술가를 분류한다. 성공한 예술가만이 꿈꾸는 예술가는 아니다. 영화는 그 결말에서 마치 성공만이 꿈의 결말이며 정답인 것처럼 말한다. 그것은 포기하지도, 성공하지도 않은 예술가들에게 조금 비참하지 않은가. 그들이 인생의 절정에서 정답을 찾은 것과는 달리 우리네의 실제 인생에 정답은 없다. 현실은 처절하고 치열하고 비극적이다. 포기한 예술가와 성공한 예술가,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도 그들만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훌륭하고 완벽한 영화의 끝에 살짝 남은 내 개인적인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