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널 쇼퍼>
우리는 때때로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감각을 느낀다. 마치 누군가는 주인공으로 태어나고 누군가는 엑스트라로 태어난 것 마냥.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자기 계발서 혹은 시대의 멘토들은 말하지만 때때로 의문은 솟아난다. 나는 진정 내 인생의 주인공인가? 인생의 어떤 순간에 내가 주인공이 되는가?
영화 ‘퍼스널 쇼퍼’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전작인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와 같이 셀러브리티를 케어하는 인물의 역을 맡는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는 유명 배우 마리아의 비서 발렌틴으로, ‘퍼스널 쇼퍼’에서는 키라의 퍼스널 쇼퍼인 모린으로. 비슷한 직업군이지만 영화 속에서 둘의 역할은 차이를 보인다. 발렌틴은 비서로서 제 열정을 다하며 마리아의 고집스러움에 반박하다가 사라진다. 모린의 경우는 키라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열정을 다한다. 오히려 모린과 비슷한 캐릭터는 스포트라이트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하는 마리아다. 둘은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마리아는 이미 지나간 영광, 시그리드로부터 자신의 의미를 되찾으려 노력한다. 모린은 키라를 경멸하면서도 그녀의 세계를 동경한다.
감독은 상당히 불친절한 방식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것’ 보다 ‘보여지지 않은 것’들이다. 영화 속 모린은 여러 가지 관계들에 얽혀있지만 대부분이 흐릿하고 아련하며 명확하지 않다. 모습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루이스, 살아있을 때와 죽었을 때 단 두 번 보여지는 키라, 비밀스럽게 접근하는 잉고, 컴퓨터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는 남자 친구 개리. 다들 어떤 이유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메모를 통해, 문자메시지를 통해, 스카이프를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숨긴다. 마치 유령처럼. 영화에서 가려진 것들은 단순히 유령들 뿐만이 아니다. 감독은 중요한 순간들에서 뚝- 맥을 끊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 끊어진 필름이 감독이 진정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이라면 우리는 추론해야만 한다. 유령들이 프레임 뒤에 숨어 던진 메시지들이 모린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린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모린은 영화 속에서 세 가지 관계에 얽혀 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보이는 루이스와의 관계가 그 첫 번째다. 루이스는 모린의 쌍둥이 오빠이며 심장마비로 죽었다. 둘은 죽기 전에 약속을 했다. 먼저 죽은 사람이 남은 사람에게 신호를 보낼 것. 이러한 둘의 약속은 일견 감동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먼저 떠난 오빠가 사랑하는 동생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점에서 둘의 만남은 신비롭고 따뜻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 초반부터 모린의 시도를 어둡고 아슬아슬하게 표현한다. 모린은 루이스가 보낼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루이스가 살던 집에서 홀로 밤을 지새운다. 모린은 사랑하는 오빠를 기다리는 것 치고는 지나치게 두려움에 떨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다릴 때 보이는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온 집안은 불이 꺼져있고 적막하다. 집 안도, 모린도 거의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진정 루이스일까?
모린은 스스로를 영매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매치고는 영 어설프다. 할 수 있는 말은 '뭔가 있는 것 같아', 정도. 그녀는 영매라기보다는 그저 삶보다 죽음에 조금 더 가까운 자처럼 보인다. 그녀는 루이스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똑같은 심장 기형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죽음에 대한 집착으로 어떻게든 사후세계를 훔쳐보려 두리번거리는 꼴이다. 이에 반해 루이스는 이미 건너간 자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루이스의 신호에 집착한다. 루이스의 신호는 그녀에게 성공한 자의 후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두려워하면서도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사후세계를 동경한다. 그녀가 기다리는 것은 루이스의 신호라기보다는 죽음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힐마 아프 클림트에 대한 얘기를 들은 모린은 그녀를 구글에 검색한다. (유독 영화상에서 모린은 구글을 검색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등 최신 기기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 지점에서 사후세계와 물적 세계가 연관되는 느낌을 준다) 옷을 키라의 집에 갖다주고 다시 자신의 좁은 집으로 돌아간 모린은 소파에 앉아 힐마 아프 클림트의 화집을 구경한다. 그녀에게 있어 힐마 아프 클림트는 사후세계와 연결된 자, 즉 루이스와 같은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철저히 현실세계의 사람인 남자 친구 개리의 전화연결도 무시한 채 모린은 힐마의 그림에 빠져든다. 모린은 잉고를 만났을 때 그에게 말한다. 영혼이라는 것은 살짝 열린 문 같은 것이라고. 그녀는 힐마의 그림을 본 이후 지속적으로 살짝 열린 문의 이미지를 그린다. 두 번째로 모린이 루이스의 집에 혼자 남게 되었을 때 한 유령이 그녀의 그림에 십자 무늬 긁힌 자국을 내고서 엑토플라즘을 토해낸 뒤 사라진다. 유령이 토해낸 것은 무엇일까? 살짝 열린 문을 통해 토해낸 욕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 장면은 모린의 사후세계에 대한 집착이 물적 세계에 대한 집착으로 치환되는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모린의 직업은 퍼스널 쇼퍼다. 모린의 두 번째 관계는 키라와의 관계이다. 모린은 셀레브리티인 키라의 옷과 액세서리를 대신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 심지어 키라는 모린에게 컴퓨터 업그레이드를 시키기도 하고 모린은 늦는 키라 대신 사진 대타를 서기도 한다. 한마디로 시녀 역을 맡고 있는 셈이다. 모린은 제멋대로인 키라를 경멸하는 듯한 말을 한다. “난 그녀가 너무 싫어. 최악이야." 하지만 반대로 그녀를 질투하고 그녀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옷과 액세서리에 대한 모린의 집착에서 보인다. 그녀가 옷을 고를 때마다 손으로 꼭 한 번씩 쥐어보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리고 그녀 자신에게 옷을 대보면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옷들을 대여하기도 한다. 처음에 그녀는 분명 조심스러웠다. 키라가 자기 옷을 입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모린은 샵에서 키라 몰래 그녀의 신발을 신으며 쾌감에 빠진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조금씩 살짝 열린 문으로 모린의 욕망이 삐져나오기 시작한다.
키라는 실재하는가? 키라는 영화 상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그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등장하는 부분은 살아있을 때 한 번과 죽었을 때 한 번뿐이다. 키라야말로 영화에서 유령처럼 존재한다. 영화의 중반부 모린이 촬영에 늦는 키라를 대신해 대역을 할 때 촬영 스탭은 말한다. “그녀는 괴물이라고 들었어요” 키라는 모린이 동경하는 삶 속에 사는 환상적 존재이다. 금은보화 위에서 잠들어 있는 드래곤 같은 느낌이랄까. 모린은 살금살금 그 금은보화의 방에 숨어든다. 키라의 셀러브리티 세계를 탐하는 모린은 사후세계를 엿보려는 그녀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모린이 런던으로 가면서 이야기는 또 한 번 크게 전환된다. 결국 잉고로 밝혀지는 문자 메시지와의 관계 때문이다. 모린은 처음에 그 문자메시지를 루이스에게서 온 것으로 착각한다. 감독은 별다른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고 문자 메시지를 핸드폰 화면 그대로 관객에게 보여준다. 관객은 본인이 직접 그 문자 메시지를 받고 있는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분명 모린이 런던으로 향하는 여정에서는 큰 사건이 없지만 관객은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모린을 따라간다. 모린은 여기서 살았냐 죽었냐를 묻다가 혹시 루이스냐고 문자를 치는데 이때의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손연기는 굉장하다. 그녀는 문자를 보내고서 금방 핸드폰을 비행모드로 바꾸어 버린다.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은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그녀를 휘감는다.
모린은 잉고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하면서 좀 더 과감해진다. 루이스-사후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그녀 자신의 욕망과 충돌하면서 극도의 시너지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잉고의 문자메시지로 욕망이 폭발한 모린은 키라의 방에서 키라의 비싼 옷들을 입는다. 심지어 키라가 입고 벗어둔 듯한 속옷들과 함께. 감독은 이 장면을 달콤한 샹송과 함께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모린의 물적 세계에 대한 욕망은 키라의 침대에서의 자위로 마침내 정점을 찍는 듯하다. 영화 후반부에 그 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각하면 감독은 극적인 대비를 원하지 않았나 싶다. 물적 세계로의 욕망이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는 그림을 말이다.
모린을 추동하지는 않지만 가만히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인물이 있다. 라라다. 라라는 루이스의 죽음에 슬퍼하지만 자기 삶을 꾸준히 살아간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모린은 그런 라라를 보며 조금 놀란다. 영화 상에서 라라는 모린과 가장 극에 있는 사람이다. 모린은 두려워하면서도 자기 욕망과 공포의 대상을 향해 몸을 던지지만 라라는 자기에게 주어진 고난과 삶에 만족한다. 모린은 가장 죽음에 가까운 반면 라라는 삶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두 사람이 살아가는 장르가 철저히 다르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잉고가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모린은 "공포영화. 살인자에게 쫓기는 여자."라고 답한다. 그 대사는 그녀를 움직이는 것 그 자체를 표현한다. 모린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앞에 몸을 던지고 자기 욕망을 경멸하면서도 그것을 끊임없이 쫓는다. 앞서 키라의 침실에서 모린이 자기 욕망을 채우는 장면이 있었다면 그다음 키라의 침실에서 벌어진 일은 모린이 살인자에게 쫓기는 여자가 되어 죽음 앞에 서는 장면이다. 모린은 옷을 갖고 들른 키라의 침실에서 피칠갑된 침대를 발견한다. 그녀는 알고 있다. 옷방에 무엇이 있을지. 그러나 그녀는 흔한 공포영화의 주인공처럼 결국 그 문을 열고 키라의 시체를 직면하고 만다. 그러나 그녀는 곧바로 도망치지 않는다. 매우 침착하게 짐을 챙긴다. 더불어 그 집 안에는 누군가 있다. 루이스인지, 잉고인지, 혹은 다른 누군가 인지 알 수 없다. 쿵쿵거리는 소리는 마치 그녀가 일전에 보던 동영상의 유령이 내는 신호 같기도 하다. 그녀는 그것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다가 도망친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두려워하던 공포영화의 주인공 자리에 선다. 살인자에게 쫓기는 여자가 된 것이다.
경찰서에서 진술을 끝내고 난 후, 문자메시지가 말 그대로 그녀를 쫓아오기 시작한다. 집안에서 까르띠에 액세서리를 발견한 모린은 핸드폰 비행모드를 푸는데, 시간에 따라 쌓여있던 문자메시지가 하나씩 오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모린은 지시대로 크라운 호텔로 간다. 문이 딸깍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영화에서 가장 묘한 씬이 이어진다. '누군가' 호텔 복도를 따라가 엘리베이터에 탄다. 엘리베이터는 1층 로비에 서고 '누군가'는 로비를 지나 바깥 자동문을 지나간다. 그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다. 이어 잉고가 호텔방에서 나와 똑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와 똑같이 자동문을 지나간다. 이때 자동문은 '누군가'가 따라가듯 한 번 더 열렸다 닫힌다.
감독은 이 부분에서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기에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감독이 명확한 인과관계를 보여주지 않은 이유는 추측컨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보다 유령의 움직임에 더 주목했다. 나의 상상은 이렇다. 모린은 이미 경찰과 이야기를 한 상태이고 잉고를 붙잡기 위해 그녀가 미끼가 되어 까르띠에 액세서리를 가져간다. 모린이 들은 딸깍거리는 소리는 유령이 낸 신호이며 모린은 위험해지기 전에 그 자리를 뜬다. (잉고가 총을 들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모린이 안전해지는 것을 확인한 후 유령도 그 자리를 뜬다. 여기서 내가 상상한 ‘누군가’는 ‘루이스’이다. 하지만 잉고의 뒤를 따라간 유령은 다르다. 루이스가 잉고를 따라갈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두 번째 누군가’는 키라다. 그녀는 자신을 죽인 잉고의 끝을 봐 두고 싶은 것이 아닐까. 퍼스널 쇼퍼의 세계 안에서 유령들 또한 철저히 자기 욕망을 쫓아다닌다.
이렇게 영화에는 몇 명(?)의 유령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그 흔적을 그토록 찾아 헤매던 모린에게 그들은 마치 아이돌(?)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아이돌의 눈짓 한 번을 받기 위해 나 여기 있다고 필사적으로 손을 흔드는 팬의 마음이랄까. 모린은 유령들을 통해 영매로서 자신을 공고히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들의 선택을 받은, 사후세계와 현실세계를 잇는 존재라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 그녀의 물적 세계에 대한 욕망 또한 그렇게 연결된다. ‘나는 너희와 다르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 그녀는 키라의 물건들에 집착한다. 그녀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 모린은 오만에 있다. 남자 친구를 찾아간 산에서 그녀는 드디어 신호를 받는다. 하지만 그 신호조차 불명확하다. 모린의 질문에 대답을 하던 ‘누군가’는 그녀를 놀리듯 이랬다 저랬다 한다. 마침내 그녀가 다시 루이스야? 아니면 나야?라고 물었을 때 쿵 하고 신호가 울린다. 그 순간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카메라 렌즈를 정확히 응시한다. 이는 분명 의도된 연출로 그녀가 관객과 눈을 맞추는 것을 뜻한다. 스크린 속에서 관객을 바라보는 자, 바로 주인공이다. 그녀는 그 순간 마침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아마도 그토록 갈구하던 죽음으로서.
*그녀가 죽었다는 명확한 암시는 없지만 그녀는 심장 기형을 갖고 있으므로 언제든 죽을 가능성이 있다, 는 것이 내 개인적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