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병아리콩 Aug 11. 2022

스크린 너머의 이미지

영화 <사랑에 빠진 것처럼>


"왜 웃으세요?”

"네가 재밌는 이야기를 한다고 했으니까.”


영화는 도쿄의 바에서 일하는 아키코(타카나시 린)가 노교수 타카시(오쿠노 타다시)를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남자 친구인 노리아키(카세 료)에게 들키는 반나절을 따라간다. 3명의 인물이 가진 사랑의 방식이 얽히고설키어 감정의 폭발로 치닫는다. 겨우 10개의 신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부분의 대화와 사건들이 편집 없이 이어진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감독은 결코 단순하지 않은 연출을 선보인다. 그가 표현하는 ‘사랑’의 이미지들은 색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이것은 진짜 사랑일까 아니면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착각일까.

<사랑에 빠진 것처럼>에는 스크린 너머의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영화의 첫 번째 컷에서 카메라는 시끌벅적한 바의 정경을 비춘다. 여자가 전화통화를 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관객은 그녀가 누구인지 찾기 시작한다. 빨간 머리의 여자가 불쑥 화면 중앙으로 들어와 스크린 밖을 향해 속삭일 때 비로소 우리는 그녀의 위치를 파악하게 된다. 카메라는 대상 자체가 아닌 대상의 시선을 비춤으로써 상상의 여지를 제공한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화면에 없는 그녀의 모습을 시각화시키는 것이다. 관객은 이를 통해 네모난 스크린을 벗어나 이미지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키코가 택시를 타고 가는 두 번째 신에서 감독은 이러한 연출을 이용해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포스터의 이미지로도 사용된 이 장면은 감독이 생각하는 진실된 사랑의 모습을 담는다. 아키코의 슬픈 얼굴 위로 휘황찬란한 도쿄 밤거리의 불빛들이 비치고 그 위에 다시 할머니의 음성메시지가 겹쳐진다. 레이어가 겹겹이 쌓이면서 이미지는 또다시 확장된다. 이 단순한 장면에서 우리는 역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과 할머니를 속여온 아키코의 지난 시간들까지 동시에 보게 된다. 여기서 할머니의 모습은 멀리서 아주 조그맣게 보인다. 이것은 관객을 아키코의 위치로 데려와 공감하게 만드는 또 다른 장치이다.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자기 자신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나를 몇 시간이고 기약 없이 기다려 줄 수 있는 누군가. 할머니의 자리에 위치한 각자의 ‘누군가’와 그에게 느끼는 미안함이 관객으로 하여금 아키코의 감정에 철저히 공감하게 한다. 

   

그다음 등장하는 인물이 타카시이다. 타카시는 영화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 인물이다. 타카시는 외로움에 아키코를 돈을 주고 산다. 하지만 타카시가 아키코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녀를 오랜 시간 사랑해 온 것만 같다. 타카시는 여자와의 하룻밤을 사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것 같은 환상을 사고 싶었던 것이다. 타카시와 아키코가 만나고 둘의 긴 대화가 리얼타임으로 보여진다. 아키코가 지네 이야기를 하자 타카키는 웃는다. "왜 웃으세요?” / "네가 재밌는 이야기를 한다고 했으니까.” 이 대사는 타카시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재밌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연기한 것이다. 동시에 그는 사랑해서 그녀에게 다정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연기한 것뿐이다. 가장 순수해 보이는 그는 사실 가장 가식적인 인물이다.

 

아키코의 남자 친구인 노리아키는 아키코에게 집착한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부딪히지만 사랑에는 서툴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소유와 동의어인 것처럼 보인다. 결국 그는 사랑해서가 아니라 소유하지 못해서 분노한다. 아키코의 학교 앞에서 타카시를 만난 노리아키는 거침없이 그의 공간, 차 안으로 들어온다. 노리아키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둘은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성인 남자로서 대면한다. 타카시는 노리아키에게 괜히 훈수를 둔다. “질문을 하지 않는 것,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대답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가능할 때 결혼할 수 있는 거야.” 타카시의 말은 많은 경험을 가진 노인의 지혜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결혼은 결국 그가 하고 있는 역할놀이에 불과하다. 노리아키는 그런 타카시의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 그에게 있어 결혼의 목적은 그녀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 즉 소유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와 아키코, 할머니 모두 자기만의 컷 안에 갇혀있던 택시 신과는 달리 이 자동차 신에서는 세 인물이 한 프레임 안에 모인다. 꽉 찬 화면에서 서로의 입장들이 충돌한다. 타카시는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노리아키는 조급한 마음에 아키코를 압박한다. 아키코는 여전히 상황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각자 다른 화면에 있던 인물들이 모이자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된다. 거짓말을 하는 타카시와 아키코, 그녀를 의심하는 노리아키 사이에서 싸한 분위기가 흐른다. 아키코의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리아키의 뒤로 불안한 눈빛의 아키코가 계속 한 화면에 걸린다. 이때 타카시는 다른 화면에 배치되어 그들의 갈등에서 동떨어진다. 감독은 이렇게 인물들이 한 화면에 배치되느냐, 각자의 화면에 배치되느냐 혹은 화면의 바깥에 배치되느냐를 통해 그들의 관계를 표현한다.


이것은 옆집 여자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그녀는 누구와도 한 화면에 함께 하지 않으며 심지어 처음에는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그녀 또한 철저히 자기만의 환상(착각) 속에 빠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단단한 나무 벽 안에서 작은 창문만으로 외부와 소통한다. 그녀는 타인과 이어져 있지 않고 개별적인 화면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녀의 작은 창문이 마치 TV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타카시와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자신의 망상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타카시는 아키코를 자신의 환상으로 데려올 능력이 있었다는 것뿐이다.


감독은 이들의 치정극을 가장 충격적인 방식으로 마무리한다. 마지막 신은 스크린의 틀을 깨부수는 그의 연출이 응집되어 가장 거대한 이미지를 이룬다. 화가 난 노리아키가 타카시의 집으로 찾아오고 타카시는 문을 걸어 잠근다. 이 장면에서 노리아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에도 굉장한 긴장감이 화면을 채운다. 우유가 다 데워졌음을 알리는 전자레인지의 삐-소리, 평화로운 동네 아이들의 소리 위로 노리아키의 분노에 찬 외침이 겹쳐진다. 카메라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지만 관객은 노리아키의 목소리를 따라 집 앞의 소동을 바라본다. 관객의 머릿속에는 난동을 부리는 노리아키와 놀란 옆집 아주머니, 동네 아이들의 모습까지 여러 화면이 동시에 떠오른다. 이미지가 점점 부풀어 올라 긴장이 고조된 순간, 창문이 와장창 깨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때 우리는 꿈에서 갑자기 깬 듯한 얼떨떨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타카시의 사랑, 혹은 사랑이라는 착각을 깨부수는 이미지의 표현이다. 노리아키의 돌팔매는 자신의 환상 속에 아키코를 데려간 타카시에게 "그건 네 착각일 뿐이야!"라고 외치는 듯하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은 사랑인가, 착각인가? 사랑에 빠진 듯 한 자신의 모습에 만족을 느껴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타카시의 가식은 많은 이들의 연애와 닮아있다.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한다 말하고 사랑하지 않아도 서로를 안는다. 외로워서, 동정해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에 빠진 듯 연기하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사랑의 단물만 빼먹고 싶은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달기만 한 사랑은 없다. 쓰디쓴 것들까지도 모두 삼켜내야 한다. 창문이 깨지고, 우리는 지나간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빛의 난반사가 그려낸 색색의 플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