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악한 행동을 벌하는 것과 선한 행동을 하는 것. 그러나 사람들은 선의에 감동하기보다는 악의를 비난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뉴스와 신문은 악인들을 고발하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과 지면을 할애하고, 사람들은 매일 끔찍한 사건과 악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분노하고 비난하고 욕하는 것은 쉽지만 감사하고 사과하고 배려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작은 선의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런 끔찍한 세상 속에서 누군가는 선의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선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20xx년, 한 소녀가 어느 작가의 무덤을 방문한다. 그녀의 손에는 소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들려있다. 1985년, 작가는 젊은 시절 들었던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1968년, 젊은 시절의 작가(주드 로)는 휴양차 들른 낡은 호텔에서 호텔의 주인이자 한때 갑부였던 한 노인 만난다. 노인은 작가에게 그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갖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1927년, 동유럽의 주브로스카산 꼭대기에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있다. 호텔의 컨시어지 구스타브(랄프 파인즈)는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마담 셀린느(틸다 스윈튼)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구스타브는 로비보이 제로(토리 레볼로리)와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을 하고, 그녀가 그에게 명작 ‘사과를 든 소년’을 남겼다는 유언을 듣게 된다. 마담 셀린느의 아들 드미트리(에드리언 브로디)는 구스타브에게 비싼 그림이 남겨지는 것을 불쾌해한다. 구스타브는 ‘사과를 든 소년’을 훔쳐 달아나고 이내 마담 셀린느의 살해 용의자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된다. 제로의 도움으로 탈출한 구스타브는 누명을 벗기 위해 마담 셀린느의 집사인 서지 X(마티유 아말릭)를 찾아 나선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시작부터 독특한 액자식 구성을 갖는다. 이야기는 한 시대에서 이전의 시대로, 점점 과거로 회귀한다. 할아버지가 소녀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기도 하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모든 이야기들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내려오지 않던가. 구전 동화처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4개의 시대를 걸쳐 전해진다. 1세대의 이야기가 2세대에게 전해지고 그 이야기가 3세대에서 책으로 쓰이며 4세대의 소녀가 그 책을 읽는다. 영화의 구성은 책의 교훈이 시대를 너머 전달되는 방식을 그대로 표현한다. 과거의 사람이 현대의 사람과 소통하고 과거의 좋은 것들을 물려주는 것. 이것은 책의 역할이자 예술의 역할이다. 구스타브가 낭만 시를 읊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장면이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데 이는 영화의 구성과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감독은 잔혹한 세상에서 책과 예술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는 시대별로 화면비율을 달리한다. 1930년대는 1.37:1, 1960년대는 2.35:1의 와이드 스크린, 1980년대는 1.83:1의 비율로 상영된다. 그 당시에 가장 유행했던 화면비를 적용시킨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 시대를 온전히 보여주고자 하는 감독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시대 배경은 단순히 ‘배경’의 역할만 하지 않으며 이야기와 정면으로 부딪힌다. 구스타브가 살아있던 1930년대는 나치즘과 파시즘으로 물든 2차 세계 대전을 연상케 한다. 생명의 가치는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적 소수자는 탄압받는다. 드미트리는 그런 세상을 대표하는 인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살인을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행한 것은 킬러인 조플린이지만 명령을 내린 것은 드미트리이므로) 그에게 부모도 고향도 돈도 없는 구스타브와 제로는 무가치하고 탄압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영화의 막바지, 드미트리는 구스타브를 향해 총을 쏘고 같은 층에 있던 수많은 군인들은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서로를 쏘기 시작한다. 그때 헨켈스(에드워드 노튼)가 외친다. "누가 누굴 쏘는 거야?” 난장판이 된 호텔은 더 이상 누가 누굴 쏘는지 모르게 된 전쟁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잔혹한 시대를 표현하지만 영화는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그림 같은 배경과 아름다운 소품과 의상, 정확히 좌우를 나누는 구도, 자로 잰듯한 카메라 워크. 이것은 누가 봐도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구분할 수 있게 만드는 특징이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는 한 컷 한 컷이 강박적으로 아름답다. 누군가는 그런 이유로 그의 영화를 예쁜 패션 필름이라며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미장센이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의 그러한 표현방식과 그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속의 세상은 잔인하고 폭력적이지만 희망을 품고 있다. 구스타브라는 한 인간에 대한 희망이다. 여기서 구스타브가 세상을 보는 시선은 감독이 세상을 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선의와 긍정으로 세상을 본다.
웨스 앤더슨의 캐릭터들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의 첫 작품인 <바틀 로켓>에서부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이르기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 철딱서니 없고 이기적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스럽다. 감독은 아무리 철없고 아무리 찌질한 인간이라 해도 그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잃지 않는다. 구스타브는 허영심이 강하고 물질에 욕심이 많으며 난잡한 성벽을 지녔다. 그런 그가 영화 속에서 희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 때문이다. 손님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의 친절함은 단순히 직업의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말 끝마다 "스윗”이나 "달링”을 덧붙인다. 돈 많은 노부인뿐만 아니라 감옥의 죄인들에게까지 그의 스윗함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안다.
최근 한국 사회에는 갑질 논란이 한창이다. ‘갑’들은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을’을 함부로 대하며 하대한다. 갑과 을은 결국 권력에 의한 상하 관계이며 인간의 계급을 나누는 문화이다. 개개인은 자신의 계급으로만 그 존재 가치를 부여받는다. 이는 파시즘의 전조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사회를 향해 구스타브는 진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모든 이를 차별하지 않으며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심지어 죽은 자에게까지 다정하고 스윗하다. 인간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 그것이 구스타브가 처음부터 끝까지 잃지 않는 하나의 원칙이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그의 다정한 말들은 다시 그에게 되돌아온다. 헨켈스는 어린 시절 자신이 받았던 친절을 떠올리며 구스타브를 도와주고, 그에게 따뜻한 옥수수죽을 받아먹은 한 수감자는 구스타브의 탈옥을 눈 감아 준다. 심지어 마담 셀린느는 외로운 노후에 친구가 되어준 구스타브에게 모든 유산을 남긴다. 다정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에 울리는 감동은 그만큼 크다.
‘인간성’이라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을 뜻한다. 다정한 말을 건네고, 예술 작품을 음미하고, 아름다운 시를 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 소소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이다. 구스타브는 현대사회가 상실한 인간성을 상징한다. 구스타브의 '인간성’의 근원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했던 책과 예술은 그의 인간성을 만드는 하나의 장치이다. 구스타브는 ‘사과를 든 소년’을 훔쳐 달아나는 기차 안에서 제로에게 묻는다. “어때? 나랑 닮았지?” 그에게 있어 예술은 닮고 싶은 대상이다. 그가 아름다운 낭만시를 읊는 것 또한 같은 이유일 것이다. 구스타브가 이상으로 삼는 인간상은 그가 책으로 읽고 예술에서 접한 누군가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책과 예술이 제시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웨스 앤더슨은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겪으면서 가족의 해체와 상실을 경험했다. 이후 그는 한 인터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를 만들면서 가족애를 느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결핍된 가족을 채우는 존재가 함께 영화를 만드는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경험이 반영된 것인지 그의 모든 영화는 망가진 가족이 재결합하는 과정 혹은 타인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는다. 그에게 있어 가족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는 존재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구스타브와 제로는 인종과 나이를 넘어 우정을 쌓아간다. 구스타브는 제로에게 로비 보이로서의 예의를 교육하고 시와 예술을 가르치며 그를 지키기 위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로 아가사를 두고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둘은 끈끈한 신뢰를 바탕으로 고난을 헤쳐 나간다. 영화의 중반, 가족을 잃은 과거를 고백하는 제로에게 구스타브가 사과하는 장면에서 그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가족으로 전환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고 상처를 안아준다면 피가 이어지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는 감독이 제시하는 또 다른 희망이다.
나이가 든 제로는 말한다. “솔직히 내 생각에 구스타브의 세상은 그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사라졌네. 그는 그저 자신의 환상 속에서 멋지게 산 거지.” 제로의 말처럼 구스타브의 세상은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스타브의 눈으로 본 세상은 완벽하게 아름답고 스윗하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말한다. 인간에 대한 작은 선의를 갖고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 안고 다정한 말을 건네라. 낭만적인 시를 읊고 예술을 닮아가라. 희망이 없다면 당신이 세상의 희망이 돼라. 구스타브가 그랬듯이. Sweet, my dar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