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마천루와 자유의 여신상의 뉴욕, 영화 '라라 랜드'의 보랏빛 노을이 담긴 로스앤젤레스, 이름처럼 거대한 그랜드캐니언... 미국 여행하면 떠오르는 유명 여행지다. 실제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여행객들이 미국 여행을 계획할 때 우선순위에 두는 곳들이기도 하다. 물론 나도 위에 나열된 것처럼 멋진 여행지만 골라 다니고 싶지만, 학업으로 인한 빠듯한 예산과 시간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의 일탈인 여행을 멈출 수는 없는 법. 땅이 넓은 나라이니만큼, 미국엔 여행객들의 발길이 상대적으로 닿지 않는 중소도시들이 많다. 그리고 여느 여행지들이 그러하듯, 중소도시들 또한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브런치를 통해 짧게 짧게 다녀온 나의 미국 중소도시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3월의 어느 포근한 토요일, 나는 당일치기로 메릴랜드의 서쪽에 있는 소도시 컴벌랜드(Cumberland, MD)에 다녀왔다
꽤 오랫동안 미국 생활을 하면서 한국이 그리운 점 중 하나는 다양한 산으로의 쉬운 접근성이다. 내가 살던 동네만 하더라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야트막한 산이 있었고, 좀 더 도전적인 등산을 원하면 관악산이나 북한산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내던 볼티모어 근처엔 마땅한 산이 없었다. 1~2시간 가까이 서쪽으로 운전해야지만,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다양한 등산코스를 즐길 수 있었다.
입산했을 때 느껴지는 상쾌한 냄새, 높은 곳에서 보이는 탁 트인 경치, 그리고 정상에서 먹는 꿀맛 같은 간식 등등 다양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등산을 좋아하는데.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를 배경 삼아 산에 오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즐긴다. 마치 "머릿속 최적화" 같은 느낌이랄까?
마침 작업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진행이 잘 안되고 있어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기분 전환도 할 겸 컴벌랜드로의 나들이를 결정한다. 아직은 조용한 아침, 나는 가벼운 등산 장비와 간식 등을 챙겨 서쪽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맥도날드에 들러 간단하게 허기를 채운 후,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인 컴벌랜드 근교 딥 크릭 호수 주립공원 (Deep Creek Lake State Park)에 도착했다. 딥 크릭 호수는 수력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 호수로, 내가 사는 메릴랜드주에선 가장 큰 호수다. 여름이면 수상 레저활동을 즐기려는 피서객들로 붐비지만, 내가 갔을 당시에는 아직 한산하고 조용했다.
딥 크릭 호수 주립공원엔 호수뿐만 아니라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갖춰져 있는데, 나는 대략 8km의 둘레길 코스(Beckman's trail)를 선택했다. 코스 초반엔 계속 오르막길이라 숨이 찼는데, 껄떡 고개 구간을 지나니 평탄한 길과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방문했을 땐 바람도 많이 불지 않아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들 소리와 내가 내는 발소리 말고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사실 딥 크릭 호수 바로 옆에 붙어있는 코스라, 호수의 멋진 경치를 기대하면서 이 코스를 선택한 건데, 딱히 호수의 전경이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었다. 하지만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멍하니 걸으니 내가 원래 목표했던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어서 무척이나 좋았다.
하산한 후엔, 트레킹 코스 맞은편에 있는 딥 크릭 호수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숫가로 가는 길 양옆엔 소나무들이 울창해 숲속 같은 느낌을 주었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호수의 모습이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호숫가에 도착해서 바라본 풍경은 적은 관광객들 때문인지 무척이나 평온한 인상을 주었다. 마치 주변에 식당들이나 가게들이 없는 포천의 산정호수 같은 느낌이랄까? 주변의 모래사장, 소나무 숲,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호수와 조화를 이루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벤치에 앉아 꽤 오랜 시간 멍하니 바라보며 즐긴 후에, 나는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컴벌랜드 도심으로 향했다.
컴벌랜드는 인구 2만 명의 소도시로, 과거에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 서부로 향하던 길목에서 중요한 통로이자 교통의 요지였다고 한다. 지금은 과거만큼의 번성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레저 스포츠 및 야외 활동을 하러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관광열차가 운행하고 있어, 가을에는 단풍놀이를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많이 붐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엔, 비성수기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말 오후인데도 컴벌랜드 도심은 무척이나 한가했다.
등산을 마치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나는 무척이나 배가 고파, 트립어드바이저에서 후기가 가장 좋은 식당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Ristorante ottaviani는 이탈리안 식당이었는데, 저녁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인 5시인데도 꽤 많은 사람이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컴벌랜드엔 어떤 일로 방문했는지 친절하게 묻는 웨이트리스의 안내를 따라 작은 테이블에 착석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나는, 혼자 식당에 방문해 음식을 주문하기를 그리 어려워하지 않는다. 메뉴를 훑어본 나는, 미트볼 파스타를 주문했다.
우선 파스타가 나오기 전에 애피타이저로 빵이 나왔는데, 빵은 갓 구운 듯 김이 모락모락 났다. 겉은 바삭한데, 속은 포슬포슬한 아주 맛있는 빵이었다. 곁에 나온 발사믹 드레싱과 올리브유를 살짝 뿌려 먹으니 맛이 배가 되었다. 빵을 좀 먹다 보니, 미트볼 파스타가 나왔다. 큼직큼직한 미트볼과 간이 세지 않은 소스가 조화를 이루어 무척이나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미국의 식당에서 파는 음식들은 대체로 간이 센 편이라, 삼삼한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간이 세지 않은 음식을 마주하게 되면 은근히 반갑게 느껴진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컴벌랜드를 가로지르는 포토맥강(Potomac river)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잠시 걸으며 이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지금은 배가 다니진 않지만, 이곳 컴벌랜드에서 수도 워싱턴 D.C. 까지는 운하가 뚫려있다고 한다 (Chesapeake and Ohio Canal). 종종 이 운하를 따라 달리는 자전거 여행객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 강변 근처에는 수제 맥주 양조장(Dig Deep Brewing Co.)도 있어, 나처럼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나들이 장소로 적합할 듯싶다. 하지만, 나는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아쉽지만 양조장 방문은 다음으로 기회를 미뤘다.
나 혼자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건, 익숙함에서 벗어나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유를 느끼기도 한다. 딥 크릭 레이크와 컴벌랜드로의 여행도 그랬다. 이전엔 들어보지도 못한 곳이었지만, 평온한 분위기,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종종 생각이 많고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나들이 장소로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