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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야 Jan 19. 2023

자주색이 고구마는 아니었어요

아동미술학원일지



너의 시간은 유독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진도를 나가고 시작하더라도

어느새 저 혼자 저 멀리 뒤처져 마지막 주에 거의 밀린 숙제 하듯이 허겁지겁 그림을 마무리하는 편이었다. 너는 같은 수업 설명도 두세 번 이상 따로 설명해야 했다.

내가 이제 얼굴 부분 색칠해 보자 하고 얘기하면 얼굴 부분만 색칠하고 끝낸다는 것이다.


혹시 미술에 흥미가 없는 것인가?

라는 판단을 하기엔 색칠도 꼼꼼한 편이었고 제법 좋아하는 취향도 있던 너였다.


나는 너를 처음 7살 때 만났지만,

너는 아직도 7살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딱히 다른 친구들을 방해한다거나 소란 일으키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것에 집중을 하지 못하거나,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았고, 이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까먹을 정도였다.


그랬기 때문에 마치 내비게이션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설명해줘야 하는 너였다. 그런 너는 어느 순간부터 나를 늘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진도가 눈에 띄게 뒤처져 있으면 너는 마치 불안해서 인지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계속 찾았다. 그러나 칭얼거리면서 늘어진 말투로 안아달라고 하기엔 너는 약 130cm가 훨씬 넘는 9살이었다.


소란을 피우는 아이보다 더 어려웠다.

그런 너의 관심과 불안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넌 금방 울어버렸다.


어느 날 네가 문득 너무 미웠다.

내가 미술을 배울 수 있게 가르치는 것보다 그림 그려보라고 애원하는 사람 같았다.

몇 번이고 쉽게 설명해 줘도 집중하지 않을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날은 자신이 염색한 종이로 설산을 산맥처럼 찢어 (콜라주) 붙이는 수업을 하고 있는 날이었다.


그날도 방법을 여러 번 알려줘도 어렵다고 한참 다시 칭얼거리는 너였다. 결국 내가 다 찢었고 네가 오공본드로 붙이기만 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그 붙이는 게 30분이나 걸리더니 이내 모양에 맞춰 붙이는 게 아니라 제멋대로 그냥 붙이고 있었다.


“내가 맞춰서 붙일 수 있게 모양까지 다 잡아줬잖아, 이렇게 겹쳐 붙이면 되는 거야. 다른 친구들도 같이 수업하는데 계속 내가 너만 바라볼 순 없어. 선생님 몇 번이나 얘기했었는데 제대로 안 들은 거야? “


또 울어 버리는 너였다.

단 한 번도 너를 혼낸 적도 없고 벌세운 적도 없었는데 나도 속상했나 보다.

그래서 널 안아주거나 달래주지 않았다.

스스로 멈추기를 기다렸고 이내 이유를 물었다.


모양에 맞게 붙이는 게 어려웠다고 작게 속삭였다.

본인도 답답했는데 마치 다그치듯이 말한 내 목소리가 무서웠나 보다 마음이 불편했고 미안했다.


곧이어 수업이 끝났고 뒷정리를 하며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중에 나의 뒷정리를 도와주러 다른 친구가 들어와서 내게 말했다.


너는 분홍색을 제일 좋아해서 분홍반으로 왔다고 했던 아이였다.


“선생님 도와드릴까요?”

”나는 괜찮아, 너는 셔틀 타야지 얼른 가!”

“저 오늘 엄마가 데리러 오신대요.

괜찮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 그래 고마워 “라고 말하며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나의 한숨이 아까의 한바탕 운 친구 때문이라는 걸 알았을까 나를 오히려 10살의 네가 다독였다.


(책상을 닦아주며)

“선생님은 매운 거 좋아하세요? “


갑자기 대뜸 매운 것을 물어본 너의 질문에 치우다 말고 당황했다. 이내 별 의미 없는 수다일 거라고 생각했다.


“응, 좋아하지. 너도 매운 거 좋아해?”


“저는 매운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정확히는 잘 못 먹어요.

근데 우리 엄마는 매운 걸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엄마가 한 요리를 잘 못 먹을 때가 많았어요.

그건 엄마 기준에서는 맵지 않았으니까요.

오늘 일을 보니까 갑자기 생각이 나서 예를 들어봤어요, 선생님.

비록 걔가 말도 없이 갑자기 울어버린 건 잘한 행동은 아니지만 그냥 다른 친구들과 기준이 다른 거 아닐까요? “


“아니면 선생님의 기준은 어떠신 것 같으세요? “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대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 하나 특별하게 예뻐하는 것 없이 같은 방법으로 표현했고 그게 스스로 공평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혹시나 차별을 느낄까 옳다고 내세운 기준은 차갑게 다가왔을 뿐이었다. 달리기 할 때 저마다 출발점이나 속도, 지구력 하물며 신은 운동화까지 다르듯이 모든 아이들은 달랐다. 나는 너의 속도를 알면서도 외면했었 던 것이다.


이제 10살이 된 네가,

엊그제만 해도 자신이 10대가 된다며

어른 인 척 마냥 장난치던 너의 입에서 나온 조언이 너무 고마웠고 따뜻했다. 어쩌면 네가 어른보다 낫구나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아동 미술을 오래 근무했다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일하면서 스트레스받지 않냐고 를제일 묻곤 했다.


아동 미술 강사가 교육직이면서도 서비스직인 것 같다는 의미에 공감했다. 그러나 오히려 아이들에게 많이 위로받고 배운 적이 많았던 것 같았다.


마치 저 날의 위로처럼.


“보라색이라고 다 포도가 아니잖아요,

요즘은 자주색, 초록색 포도도 많으니까 “


조금은 느릴 수 있는 너를 언제나 재촉하기 바빴다.

강사로서 자질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기간 내에 모두 다른 아이들이지만 최선의 성과가 나와야 아이, 학부모, 강사 모두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림을 배우고 그리는 아이가 가장 중요했고아이의 기준이 정답이었다.

내가 자유롭고 재밌게 배웠던 그림에 대한 기억이 있듯이 아이에게도 그림 그리는 게 무서워지는 것이 아닐까 덜컥 미안했던 하루였다.


조금은 다를 수 도 있는데,

자주색 같은 너는 고구마가 아니고 말랑하고 여린 포도였던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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