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영, ‘비어있는 것(들)’을 보기 위한 방법론(2023) , 전시: « 무대 », 파주 헤이리 유리재
‘비어있는 것(들)’을 보기 위한 방법론’
« ‘비어있는 것(들)’을 보기 위한 방법론 »이라고 이름 붙인 이 작품은 ‘비어있는 것(들)’, ‘봄’, ‘방법론’이라는 세 개념을 조형적으로 구성해 본 것입니다. 제게 중요한 개념들이고 철학을 하거나 예술을 하는데에 저에게 질문거리로 항상 따라다니는 개념들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말들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이렇게 작품과 글로서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네 개의 파트로 ‘비어있는 것(들)’이라는 말로 표현한 개념을 설명할 것입니다:
1) 과학에서 ‘비어있는 것(들)’을 보기 위한 방법론: 사건의 지평선을 관측하기
2)둘의 관계에서 ‘비어있는 것(들)’을 보기 위한 방법론: 사랑을 생각하기
3) 회화에서 ‘비어있는 것(들)’을 보기 위한 방법론: 원근법 (percepective)의 소실점과 무관점의 항(le term sans percepective)을 생각하기‘
4) 글쓰기에서 ‘비어있는 것(들)’을 보기 위한 방법론: ‘아무것도 지나지 않는 자리’를 생각하기
앞으로 시간이 허락되는대로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1) 과학에서 ‘비어있는 것(들)’을 보기 위한 방법론 : 사건의 지평선을 관측하기
먼저 제게 ‘비어있는 것(들)’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부터 설명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라는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여러 매체나 책에서 자주 들려오는 ‘블랙홀’이나 ’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개념은 과학에 관심 있는 분들은 저보다 더 잘 아실 거라 생각됩니다. 이 용어를 대략적으로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우주의 ‘검은 구멍’인 블랙홀이 있습니다. 블랙홀 주변에 다가가는 모든 것은 소멸됩니다. 달리 말하자면 블랙홀에 다가가는 모든 것의 밀도와 시-공간의 곡률이 무한히 증가해 과학이 관측할 수 있을만한 모든 물리적인 것들의 크기가 결국 0에 수렴합니다. 빛이 입자로 존재하던 파장으로 존재하던지 아니면 동시에 둘 다로 존재하던지 빛을 관측할 수 있는 정보는 결국 0으로 소멸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블랙홀을 관측할 때 블랙홀 내부로부터 오는 어떤 정보도 관측할 수 있는 경계가 생겨나는데 이것을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저는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 개념의 차이점이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저의 이해로 ‘블랙홀’은 그 자체로 ‘비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우리가 블랙홀을 ‘관측한다’라고 말할 수 없고 ‘사건의 지평선’이라도 불리는 ‘무한한 소멸’에 대해서 탐구하면서 간접적으로 그 존재를 파악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제가 주목한 점은 이 지평선의 너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가 그 너머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스피노자가 말한 “자연 안에는 공허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부분은 공허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도록 서로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스피노자 Baruch Spinoza, 에티카 (1부 정리 15, 보충)(강영계 역, 서광사, 1996))”라는 명제에 대한 과학적인 반박이기도 합니다.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블랙홀은 그 자체로 우주가 하나의 법칙으로 이루어졌다는 믿음에 전적으로 반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저는 보거나 듣거나 만지거나 느끼거나 우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나타나는’ 현상 속에 이러한 ‘세계 너머의 세계’가 내재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달리말해 우리의 인식의 모든 것이 결국 0에 수렴하는 특이점 너머의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든 것 속에 있습니다.
용어 표기
‘비어있는 것(들)’
: 엄밀히 말해서 우리는 ‘비어있는 것(들)’을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비어있는 것(들)’을 ‘사건의 지평선’의 개념을 통해 이해할 때 이 ‘너머’는 우리 세계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존재한다’ 혹은 어떤 ‘것’이라는 말에서 전적으로 벗어나 있습니다. 이러한 ‘있음(존재)’와 ‘무엇(것)’의 의미를 취소하는 의미에서 ‘비어있는 것(들)’이라고 표기하였습니다. 또한 ‘(들)’이라는 복수를 나타내는 말을 추가하고 ‘(들)’로 표기한 것도 비어있음은 ‘하나 one’ 혹은 ‘다수 multiple’의 개념도 넘어선 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있다’, ‘존재한다’라는 말을 부여하지 않고는 이 개념에 대해서 쓰는 것은 제게 능력 밖입니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비어있는 것(들)’의 존재함을 발견한다’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허용하고자 합니다.
‘세계 너머의 세계’
: 위의 표현과 마찬가지로 ‘세계’라는 우리의 개념을 넘어선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세계’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브런치 제목에서는 취소선 표기가 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비어있는 것(들)’이 아닌 ‘비어있는 것(들)’로 표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