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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Mar 12. 2024

단어 23

: 미셸 앙리

미셸 앙리: 이름만 알고 제대로 공부한 지는 한 달도 되지 않은 철학자이다. 현재 논문을 쓰고 있는데 주제를 잡고 방향성에 있어서 어느 정도 결론을 내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연구를 하고 있었다.


 주제를 아주 짧게 이야기하면 ( 함축도 많고 생략도 많아서 계속 읽을 사람은 다음문단으로 넘어가는 게 좋다...) '이콘'을 통해서 이미지의 진리성을 '주체로 부터 시작되는 사유''세계의 지식과 분위기stimmung을 구성하는 세계성'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의 '물-자체(혹은 실존의 자리로서의 몸corps, 물질 matériaux...)의 열림'으로부터 찾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으로는 지성의 가능성을 벗어나는 공백의 열림으로 푸코가 말하였듯이 지식의 불연속을 가져오고 이 불연속이 우리에게 진리를 사유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의 '어떻게'의 문제에서 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연구를 위해 후설의 현상학과 장 뤽 마리옹, 메를로 퐁티, 장 뤽 낭시를 계속해서 탐구하고 추가로 안카 바실리우, 레비나스, 디디 위베르만, 러시아 신학자인 파벨 플로렌스키, 파노프스키, 도스토옙스키 이론가인 미하일 바흐친의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을 모두 탐독하지 않고 마리옹의 현상학과 후설의 큰 틀 속에서 접근하고자 하였지만 연구를 하면 할수록 내가 가는 방향성이 맞다는 확신이 들면서도 사상가들과 철학자들의 서술은 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비껴나갔다. 그래서 거의 절망적으로 여러 철학자들을 동시에 허겁지겁 읽었다.


그중에서 레비나스의 고통 개념과 비-지향성 개념이 이 문제를 푸는데 중요한 실마리로 느껴졌지만 제대로 풀어내기 너무 어려운 개념이었다. 그러던 중 미셸 앙리의 책들을 발견했는데 단번에 내가 향하고 있던 연구의 길을 정확히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을 읽다가 대담집도 같이 읽었는데 정말 내가 정말 큰일 날 뻔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고 가려했던 결론은 미셸 앙리가 교수직을 그만두고 10년 동안 집필한 깨알 같은 글씨의 928페이지의 책인 《L'essence de la manifestation ; 나타남의 본질》부터 그 논의가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책의 두께는 이전의 연구에 대한 불만족"의 표현이라고 하였다. 결국 처음부터 토양을 다시 다져야 했고 그 토양을 다지는 데에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내가 비껴간다고 느꼈던 현상학자들의 서술이 미셸 앙리의 글에서도 나타나는 걸 보고 먼저 연구해 주신 것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꼈다.


잘못했으면 10년 칩거하면서 미셸 앙리처럼 '후설도 레비나스도 언급하고 있으나 더 나아가지 못했던 길'을 홀로 가야 할 뻔했다. 이럴 때면 늦게 태어나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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