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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Sep 02. 2024

단어 29

의무, 책임

노트:

<단어 28>에서 미셸 앙리(Michel Henry)가 세계(; Le Monde)와 삶(La Vie)을 현상학(Phénoménologie)을 전복함으로써 근본적인 구분을 한 것을 토대로 <책임; La responsabilité>에 대한 가설을 간략하게 제시했다. 앙리가 이렇게 구분한 것은 정확히 1)후설의 지향성으로부터 열리는 세계와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l'être-au-monde>에서 삶을 구해내는 것이며, 2) 삶과 삶이 육화 된 오롯한 생명(;vivant étant incarné)을 그리스적, 근대적 사고, 즉 존재(Être)와 가시성(Visibilité)의 중력으로부터 구해내고 3) 세계에 종속된 것이 아닌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삶의 행위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다.


 현재의 이미지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토대가 붕괴되는 것을 목격하게 한다. 나의 얼굴로 말하고, 나의 목소리로 말하는, 나의 몸과 괴리된, <나의 이미지>는 나를 내가 하지 않은 행위로 부끄럽게 하고 나와 다르게 나의 정체성을 세운다. 나아가 여기에 더욱 당혹스러운 질문이 있다. <진정한 나의 이미지(; 참 이미지)>는 존재하는가? 있다면 나에게 이질적인 <나의 이미지; 거짓 이미지>는 어디까지 진정한 나의 이미지의 영역을 침식할 것인가? 우리는 <참인 이미지>를 <거짓> 이미지로부터 구분할 능력이 있는가? <참>과 <거짓>의 불분명한 구분 속에서 <거짓>은 결국 세계-내에서의 <참>의 모든 자리를 종속시키는 것은 아닌가?


이 아이러니에 직면하여 미셸 앙리의 세계와 삶의 구분은 현세대에서 진리의 새로운 토대(; <참>과 <거짓>의 체계에 종속되지 않는 진리)를 <세계와 다르게>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숙고해 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토대의 전복 <renversement du fondement>은 새로운 윤리와 도덕 즉, 새로운 책임(responsabilité)과 의무(devoir)를 요구한다.


[책임과 의무에 대한 가설]

지난번 글에서 «'계'가 '나'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것이며 내가 세계에 대하여 책임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제시했다. <삶>과 <세계>의 구분에서 볼 때 어떤 한 생명이 책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삶의 주체인 <나 Moi>에 대하여 <너 Tu>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 Nous>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이 <책임>은 세계를 통한다. 이 책임은 어떤 체계가 아닌 세계 안에서 근원적으로(삶은 세계의 체계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무지로 세계에 틈, 간극을 형성하고 세계가 그 무지에 대하여 사유하도록 요청한다.


그렇다면 세계는 '나'에 대하여 어떤 관계도 맺지 않는가? 이에 대한 답으로 또 다른 가설이 있다. 세계는 나에 대하여 <의무; devoir>를 부과한다. 이 구분을 정리해 보자면 <의무>는 세계가 <안정성>, <안락함>을 대가로 삶에게 지불하게 하는 것이며 그 대가는 삶, 그 자체에 대한 망각 (; l'Oublie)이다. <책임; responsabilité>은 <자기-자신>의 삶에 닿는 것이며 어떤 보편적인 앎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 근원적 무지를 발견하는 것이고 그 무지에 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랑과 예술, 정치는 이 요청에 대한 답이며 이 '요구를 거부할 수 없음'이 '책임'의 방식(mode de la responsabilit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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