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변화 속 중요한 것은 -'천개의 파랑'을 읽고
트렌드코리아 2024를 읽다가 그만 지치고 말았다. 2022년 6월 캐나다 밴쿠버로 유학 나와 경험해 본 적 없던 느린 삶을 살았다. 오후의 해변엔 아이들과 개와 함께 걷고 뛰는 사람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에 딱 붙는 룰루레몬의 레깅스를 입고 달리는 건강한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렇게 살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SNS 업로드를 끊고 단순하게 살았다. 건강하게 먹고, 자주 운동하고, 고민과 걱정은 내려놓고 자연을 누리며 21개월을 지냈다. 이제 세 달 후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코로나 끝 무렵 외국에 나와 한국의 소식은 일부러 듣지 않고 지냈기에 언제나 빠르게 움직이는 나의 나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싶어 트렌드코리아2024를 펼쳤다. 700페이지 쯤 읽고 나는 도망치고 싶어졌다. 2024년 트렌드의 첫번째는 '분초사회'.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아껴 생산적으로 쓰기 위한 노력들. '육각형 인간'. 능력,외모,집안 등이 모든 조건이 완벽한 사람을 이르는 말. '호모 프롬프트', 챗GPT로 비롯된 생성형 인공지능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 등등을 읽다보니 한국의 경쟁 문화 속에서 애쓰며 성취하고 유학까지 나온, 시간 낭비를 싫어하고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자주 아프고 종종 수액을 맞으며 기력을 회복하던, 불과 2년 전까지의 내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고작 21개월 동안 이 곳에서 살면서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 고작 책을 읽으며 한국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게 버거웠다. 그래서 다른 책으로 도망쳤다.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새파란 표지에 몽환적인 무지개빛 구름이 그려진 SF 소설이 도피처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읽고 싶어 밀리의 서재 SF 메뉴를 둘러보다 동화 같은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인 이 책은 인공지능 로봇이 사회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지금도 내가 다니던 회사 앞에는 자율주행로봇이 음식을 서빙하고 있는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대신 감정 없이 물건을 팔고 자리를 정리할 수 있는 인간 형태의 로봇이 자리하고 있는, 지금보다 조금 더 로봇이 가까워진 정도의 사회가 책 속에 펼쳐졌다. 구조 현장에 투입 되어 생존률을 측정하는 로봇, 길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로봇. 언젠가는 당연히 올 것 같은 낯설지 않은 미래. 좀 더 새로운 상상력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던 나는 조금 심드렁한 채 책을 읽어나가다가 기분이 나빠졌다.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근미래는 아주 빠르게 발달하는 과학 중심적인 사회의 장점보다는, 인간성이 소멸되어 가는 부작용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 발전에 힘 입어 경주마를 타는 기수 로봇을 만들어 경마를 지속하는데, 로봇이 말을 타기에 사람이 떨어져 죽을 일이 없으니 살아있는 생명인 말은 사람들을 더욱 더 흥분시키도록 더 더 빠르게 달려야만 하는 미래. 로봇 팔과 다리가 상용화되어 장애가 극복되는 미래가 아니라, 너무나도 비싼 비용 때문에 누군가는 계속 일반적인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이 양극화 되는 미래. 사람들이 편의점의 로봇을 자꾸 발로 차서 고장나는 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낸 이 소설에서 그려내는 소외되고 괴로워하는 인물들은 생명의 가치를 위해 비효율적이고 순수한 선택들을 하면서 중요한 것을 회복한다. 생명을 살리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 과정이 너무나 따뜻하고 감동적이라 내용을 여기에 적지는 않겠지만, 1000쪽에 달하는 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어떤 희망을 품었던 것 같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일지라도, 이런 글을 쓰고, 이런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불과 2년 전에 두고 온 한국에서의 내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가 두렵더라도, 밴쿠버에서 2년을 지내며 느낀 감각을 기억하는 이상 나는 괜찮을 거라고. 돌아가서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나와 가족의 삶을 돌보고, 나아가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거라고.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이지만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중심을 잡을 수만 있으면 될 거라는 용기가 느릿 느릿 솟아올랐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그저 내 마음이 가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그 과정이 힘에 부친다면 멈춰서기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