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시간
저는 제주도를 참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요. 일 년에 2~3번은 꼭 가고 단골 집도 생겼습니다. 휴직이 시작되자마자 짐을 싸서 제주도에 왔습니다. 해외여행도 생각해 보았으나 역시 제주가 좋더라고요. 짐을 바리바리 싸서 도착하자마자 낮잠부터 잤습니다. 길어야 3박 4일 일정으로 항상 아쉽게 돌아갔었는데, 이번엔 2주 일정이다 보니 마음이 편하더군요. 따로 계획은 짜지 않았고 필수 예약해야 하는 숙소와 렌터카 정도만 결정했습니다. 5일 차가 된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네요. 행복한 기분이 듭니다. 이런 여유를 느껴 본 지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는 주말이 오는 게 싫었을 정도로 일이 안 풀렸습니다. 주말에 출근하기 싫어서 어떻게든 해내지만 마음이 불편해 회사 노트북을 들고 집에 가는 길은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거든요.
제주도의 바다와 숲에서 평안을 얻고 갑니다. 향기로운 편백나무 숲에 가서 음악을 즐기기도 하고 너른 들판을 보기도 했어요. 꼭 해보고 싶었던 서핑에도 도전했는데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파도타기에 성공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 며칠은 베스트 프랜드가 와줘서 정말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와 함께 있으면 꼭 이불속에 파묻힌 것처럼 포근하고 나른해지거든요. 서로 많은 말이 필요 없는 20년 지기가 특별히 더 고마웠습니다. 게다가 가기 전에 선물도 주고 갔어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여기 와서 책을 몇 권 샀는데, 얇은 그림책을 그녀에게 선물했습니다. 제주의 일상 이야기라 친구와도 공유하고 싶더라고요. 책 제일 앞장에 ’ 내가 읽고 친구에게 주다 ‘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친구도 다 읽고 나면 또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소소한 낭만입니다.
날씨가 맑진 않지만 낮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 행운입니다. 사실 전 날씨요정이거든요. 패기 돋게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정말로 아직까지 우산이 안필요한 걸 보면 운이 참 좋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더위에 약한 저에게 또 하나의 행운은 약간 흐린 날씨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입니다. 다니면서 덥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어요. 여름 여행에서 더위로 고생한 기억들이 잔뜩인데 이번엔 날씨도 절 도와줍니다.
며칠이나 시간을 보내고 나름 레저도 했는데, 아직 꽤 시간이 남았습니다. 이제 육지가 그리울 법도 한데, 역시 여행이라 그런가요? 집생각은 전혀 안 나네요. 여유 있게 제주를 느끼다가 갈 생각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이 휴식이 저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어요. 휴직을 선택한 것이 도피라는 생각에서도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겠죠? 사랑하는 강아지가 보고 싶은 것 빼고는 심심해서 행복한 제주 여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