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중요한가요 마음이 중요하죠
제주도에 온 지 6일 차입니다. 오전에는 빨래방에 가 밀린 빨래를 하고, 몇 년 전부터 나 혼자 단골이었던 카페에서 스페셜티를 마셨습니다. 중문에 머무른 4일 동안 세 번 방문했으니 얼마나 좋아하는 곳인지 아시겠죠?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하는 저지만 그 집 커피만큼은 밤을 새울 각오로 먹습니다. 이곳을 유독 더 사랑한 이유는 아름타운 티잔들 덕분입니다. 티잔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저에게는 눈도 입도 만족시켜 주는 이 공간이 행복할 수밖에 없죠.
어쨌든 제주에 오고 나서 날이 좋았던 적은 없어도 비는 밤에 내리고 낮에는 흐렸는데 오늘은 기어코 비가 쏟아졌습니다. 계획했던 카약도 타지 못하고 계곡은 위험해서 통제 중이더라고요. 한 시간이나 걸려서 갔지만 별로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전 카약이 별로 타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어제 새로 발견한 카페에 오늘도 가야겠다는 생각에 빗속에서 다시 한 시간을 운전했습니다.
새로 발견한 카페는 좀 더 본격적으로 아름다운 잔을 고를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티팟세트 메뉴를 고르면 티잔과 티팟을 고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서울에서 비슷한 느낌의 애프터눈 티 가게에 간 일이 있었는데, 그때의 추억도 다시금 생각났습니다.
누군가는 제주도까지 가서 카페 타령이냐 하시겠지만, 취향에 맞는 장소를 늘려간다는 건 행복한 일 아닐까요?
지금은 화려한 찻잔과 티팟에 루이보스를 베이스로 한 맛있는 차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주 하면 바로 떠오르는 푸른 바다는 보지 못했지만, 푸른 잔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줍니다.
취향을 갈고닦는 데는 노력과 시간과 돈이 듭니다. 항상 적당한 수준에서 흥미를 잃곤 했는데, 이번 여행지에서 예쁜 티잔을 경험하고 나니 또 제 취향을 발견하러 가고 싶어 졌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정말 싫은 날이었는데, 차 한잔으로 이렇게 운치 있는 날씨가 되다니 신기합니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느긋하게 차나 마시고 책이나 읽으며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저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이런 여유인가 봐요.
모두에게 평안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