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문학강연에서 낯선 것에 대해 시도해 보라는 말을 듣고 엊그제 바로 실행에 옮겼다. 한 달에 한번 뿌리염색을 해도 며칠만 지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흰머리와 점점 머리카락이 얇아지면서 사진을 찍으면 주저앉다 못해 두피에 딱 달라붙어 있는 윗 머리가 보기 싫었다. 단골 미용실의 디자이너 말고 전혀 다른 동네, 다른 미용실, 남자 헤어디자이너한테 스타일을 맡겨보자! 하는 생각에 검색하면서 샤프한 젊은 남자 디자이너가 눈에 뜨여 예약했다.
과연 새로운 시도에는 반작용이 늘 세트로 따라다닌다. 낯선 동네 낯선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바로 뒤에 노란 학원미니버스가 따라오는 게 아닌가. 내려가니 벽 쪽으로 딱 두 개가 남았있어 주차가 쉽지 않다. 엉성하게 하고 내리는데 따라온 학원버스기사가 제대로 대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다시 들어가 간신히 옆차에 붙이고 내려보니 변화가 없다. 학원버스기사는 짜증 난 얼굴로 쳐다보고 나는 다시 주차하며 낑낑 대는데 순간 그냥 나갈까? 역시 낯선 곳엔 오는 게 아닌가 봐. 하는 생각이 스친다. 다시 한번 주차하고는-별 차이 없다-그냥 학원버스기사가 알아서 하겠지, 금안에는 들어갔으니. 하며 모른 척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첫 번째 나온 반작용을 무사히 지나 미용실로 들어가니 사진으로 샤프해 보이던 남자 디자이너가(사진빨) 수더분한 얼굴로 맞이한다. 나의 최 애로사항인 윗머리 상황을 말하며 가져간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가르마 없는 파마를 해달라 하니 그러면 옆머리가 너무 짧아져서 양쪽 턱이 도드라져 보인다, 쉽지는 않다 등등 자신 없는 말을 하며 그래도 괜찮냐고 한다.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또다시 걱정이 스멀스멀 몰려온다. 역시 하던 대로 하는 게 맞나? 두 번째 반작용이다. 그러다 결단을 내렸다.
"괜찮아요.
그냥 해주세요.
나에겐 윗머리가 젤 중요해요. "
망설이는 디자이너에게 내가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이번에 변신해 보죠."
말하니 그제야
"아! 네 변신해 보시죠."
하며 열심히 머리를 만지기 시작한다. 커트를 하고 펌을 하고는 샴푸 후 거울 앞에 앉으니 이런! 새롭고 조금은 젊어 보이는 내가 있다. 나는 박수를 치며 마음에 들고 고맙다고 하자 디자이너의 얼굴이 환해진다. 걱정과 망설임은 기우였다. 상쾌한 발걸음으로 나오니 1분 거리에 대형마트가 보였다. 낮에 시장에 못 가 아쉬워했는데 훨씬 더 좋은 마트를 알게 되었다. 카트에 가득 장을 보고 귀가하면서 이 동네가 집에서 멀지도 않은데 왜 가던 데만 가면서 단조로움을 고수하고 있었을까 싶다. 조금만 나오면 세상은 이렇게 다채로운데 말이다.
미션 성공이다. 낯선 곳, 낯선 상황, 낯선 사람들 속에 가는 걸 겁내고 망설일 필요가 없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행동을 막는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장서야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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