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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May 31. 2024

그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구나.

(타카하타 이사오 展을 다녀와서)

지난 휴일에 먼 길을 다녀와 피곤했지만, 월요일에 타카하타 이사오 전을 보러 세종문화회관에 갔다. 전시회 첫날 가서 포스터도 받고 특별영상도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오후 2시에 도슨트 설명 시간에 맞추어 들어갔다. 4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슨트를 에워쌌다. 연령대가 다양했다. 예전에는 새로운 곳에 가기 전에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러지 않고 있다. 이미 기대 이상일 거라는 확신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확신을 빗나가지 않았다. 아니, 거기서 사 온 도록을 감탄하며 보면서 기분 좋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타카하타 감독을 생전에 잘 알지 못한 게 아쉬웠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라고 하면 미야자키 하야오를 대중들은 더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 머리 앤’이 모두 그의 작품이라고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그도 제작에 참여했지만, 사실상 타카하타 이사오가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연출을 맡았고, '엄마 찾아 삼만리'는 감독을 했으며, '빨강머리 앤'은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는 걸 알게 됐다.      


타카하타는 처음 외국 소설을 애니로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고 일본과 너무 다른 문화와 자연환경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 하이디 때는 직접 6개월간 알프스로, 삼만리는 이탈리아를, 앤은 캐나다의 프린스에드워드섬을 직접 방문하는 로케이션을 통해, 철저히 관찰하고 연구하며 자연의 색과 풍경등을 눈에 담고 스케치하고 메모했다고 한다. 고증에 철저했던 것이다. 어릴 때 애니를 보면서 일본에서 만들었을 줄은 상상도 못 하다가 20대 때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하이디를 보면서 알프스를 동경하고, 삼만리를 보면서 이탈리아 도시를 꿈꾸고, 앤을 보면서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었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타카하타의 엄청난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어린 시절 보았던 애니가 그토록 오랫동안 뇌리에 남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서야 이유를 알게 된 셈이다. 

하이디에서는 타카하타가 생각하고 미야자키가 실행한 ‘레이 아웃 시스템-그림 콘티를 바탕으로 컷의 설계를 구체적으로 그린 것’의 획기적 시도로 나중에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앤은 타카하시 덕분에 소설보다 애니를 먼저 보게 됐다. 아마 내 또래 아이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고, 타카하타의 앤을 떠올릴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대화의 재미라 생각하고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작화감독인 곤도 요시후미에게 독특하게 눈에 띄는 얼굴이고, 감정이 풍부하며, 미래에 매력적이고 지적인 미인이 되는 얼굴로 만들었으면 하는 걸 요구했고 그대로 막대한 양의 스케치로 앤의 설계에 두 사람은 엄청나게 집착했다고 한다. 원화와 메모가 아주 빼곡하다.         

  

이후로 타카하타는 일본을 무대로 한 작품을 내놓기 시작한다. 1985년에 설립한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반딧불이의 묘’ 1988 ‘추억은 방울방울’ 1991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1994 ‘이웃집 야마다 군’ 1999 ‘가구야공주 이야기’ 2013 

이 작품들을 본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하던 일이 중단되고 집에만 있게 되자 나는 그동안 보고 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못 보고 있던 지브리 애니를 빠짐없이 볼 계획을 세웠다. 먼저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다 보고 난 후, 지브리의 또 다른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를 알게 되어 그의 작품을 하나씩 보았다. 그리고 곧 그에게 관심을 가졌고 존경하게 되었다.    

  

반딧불이의 묘

먼저 반딧불이의 묘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작품성에 비해 평점이 낮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로서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 중 일본의 아이들이 고생하다 비참하게 죽는 애니가 와닿지 않았을 수 있다. 나는 그런 것을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 전쟁이라는 비참한 현실에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죽어야 하는 아이들의 현실이 슬펐다. 전쟁고아 남매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다 간 이야기이다. 반딧불이의 노란빛과 전투기에서 쏟아지는 쏘이탄의 잔해의 불빛이 섞이는 장면이 압권이다. 전쟁으로 불타버린 불길, 연기, 수증기, 빛이라는 뉘앙스를 묘사해 심리적 효과를 더했다고 한다.      

추억은 방울방울

이 애니도 보면서 울었다. 슬퍼서라기보다 애잔함이 감돈다. 10살의 타에코와 27세의 타에코가 나온다. 어린 시절은 수채화로 표현하고, 어른이 된 현재는 아주 진한 색 물감으로 풍요로운 자연을 표현하기 위해 자세히 그려,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얼굴의 팔자 주름과 골격을 너무 리얼하게 표현해서 애니를 볼 때 살짝 불편했다. 왜 애니를 예쁘게 그리지 않고 실사처럼 표현할까 하며 봤었다. 타카하타의 지칠 줄 모르는 실험정신과 리얼리즘의 반영이었다는 걸 이제 알게 되었다. 마지막 두 명의 타에코가 나오는 장면은 아름답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음악은 팝가수 베티 미들러의 더로즈를 일본 가수가 일본어로 부르는데, 제목처럼 추억이 방울방울 거린다.      


To be continued...


#타카하타이사오 #빨강머리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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