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쥬디 May 29. 2024

드디어 청나라로!

열하일기 1장 渡江錄(도강록) 압록강을 건너며

지난주 호프맨 작가님의 인문학 강의에서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간을 통해 부쩍 연암의 열하일기에 관심이 갔다. 반듯한 선비 중의 선비인 정약용과 다르게, 사회에 대해 삐딱한 시선으로 해학과 풍자를 아끼지 않았던 박지원의 글에 끌렸다. 

     

일요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았는데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 3권으로 나와 있었다. 인문 사회과학 서적 전문출판사인 돌베개에서 출판되었고 옮긴이는 박지원의 사유 양식과 산문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혈조 학자이다. 2009년 9월에 첫 출간을 하고 2017년 10월에 개정판을 냈다. 첫 번째 책은 박영철본으로 했는데, 그 책은 필사 과정을 거치면서 당시 사회의 경직되고 폐쇄적인 사상과 문화적 풍토에 의한 자기 검열의 윤색이 심하게 되어 변질되어 있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게 그 책뿐인 줄 알았다가 최근에 이가원 선생이 소장하다가 단국대에 기증한 초고본 열하일기를 알게 되면서 개정판을 냈다고 한다. 이 책에는 김혈조 학자가 현지답사를 통해 유적이나 유물, 여행한 장소 등의 사진이 가득 수록되어 현장감이 생생하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1780년 청나라 건륭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북경과 열하 지방을 체험한 견문록이다.     

서문에 연암의 글을 최대한 진심으로 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심한 김혈조 작가의 정성이 가득 느껴진다. 학자로서의 소명 의식으로 인해 독자들이 얼마나 편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지 새삼 깨닫고 감사한 마음이다.      

먼저 1권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1장씩 글을 올려보려 한다. ‘도강록’은 1780년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의 기록이다. 연암이 사신 일행을 따라 중국에 들어간 첫 번째 체험을 기록했다.  

    

읽기 시작하면서 실로 눈을 뗄 수가 없다. 우선 문장력이 아주 뛰어나다. 한양에서 먼 길을 와서 압록강만 건너면 청나라로 들어가는데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와 물이 불어 열흘을 숙소에서 있다가 막상 물이 빠져 건너려 하니, 고향과 조선에서의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마음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단순히 여행 기록만 적은 게 아니다. 청나라의 앞선 문화와 문명을 조선이 어떻게 배워야는 지 등을 세세히 담고 있다. 그리고 박장대소를 할 만큼 위트와 재미가 넘친다. 도서관에서 조용히 읽어야 하는데 데 계속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배를 대어 둔 곳이 매우 질척거리기에 나는

웨이 位

하고 되놈 하나를 불렀다. 조금 전 시대가 하는 것을 보고서 방금 배운 말이다. 그가 선뜻 상앗대를 놓고 건너왔다. 나는 몸을 날려 그의 등에 업혔는데, 그는 ‘히히’ 웃으며 나를 배에 들여놓고 숨을 내쉬며 길게 탄식하고는,

흑선풍 黑旋風의 어미가 이처럼 무거웠다면 기풍령沂風嶺을 업어서 오르지는 못했을 겁니다” 51쪽     


연암의 초상화를 보니 풍채가 있어 보이는데 과연 무거운 몸을 이리 표현한 것도 재밌고, 중국말을 금방 배워 써먹고 얼른 등에 업히는 게 익살스럽다.      

봉황산의 전경을 표현

‘흡사 순전히 돌로 만들어 땅에서 우뚝 뽑아 올린 것 같았다. 손바닥 위에 손가락을 세운 듯, (중략)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경관이지만 다만 맑고 윤택한 맛이 없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63쪽     

사진이 함께 나와 있는데 과연 그러하다. 사물을 적확하게 보고 표현함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의 전통가옥을 살펴보면서 아주 세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기와 이는 법이 다르다는 걸 알고 감탄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배워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북학파로서 이용후생을 설파한다. 벽돌을 찍어내는 기술도 여러 번 말하고 있다. 만주족과 한족 사람들의 생김새를 보는 눈썰미도 보통이 아니다.     


7월 초 5일 술 한잔하고 막 잠이 드는데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났다.

“거기 누구냐?”

“도이노음이오”

라고 하는데, 발음과 목소리가 우리말과 다르고 수상쩍어 고함을 질러, 다시 물으니 큰 소리로

“소인 도이노음이오”

라고 대답한다. 

청나라 갑 군이 매일 밤 일행 숙소를 순검 하면서 몇 명인지 숫자를 세어가는 과정에서 갑 군이 자기를 ‘도이노음’이라 스스로 칭한 것은 포복절도할 일이다. 130쪽     


이 부분에서 얼마나 웃기던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오랑캐를 도이(되)라 부르는데 갑군이 다년간 사신을 맞이하며 우리말을 배운다는 게 자기들을 –되놈-이라고 부르는 말을 별생각 없이 배워 그렇게 자신을 지칭한 것이다.      


박지원의 유머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장마철이고 긴 여행길인데 힘들다는 표현이 거의 없다.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고 관찰하고, 눈과 마음에 담아둔 걸 표현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넘치고 웬만한 일은 유머로 넘기는 너그러움이 있다.     


왜 ‘열하일기’를 읽어야 하는지를 알 거 같다. 첫 장부터 매력이 철철 흘러넘친다. 


#열하일기 #연암박지원 #김혈조 #돌베개 #호프맨작가님인문학강의

작가의 이전글 제대로 여행을 즐기는 재능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