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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Jun 24. 2024

파블로 네루다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고

어떤 한 가지를 알게 되면 그것과 연관되어 있는 세계도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오래전 우연히 티브이에서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를 보았다.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합작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 The Postman)이다. 1996년 개봉작이다. 한적한 이탈리아 마을에서 칠레의 망명 시인과 우체부와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로 재미, 감동, 음악, 모든 면에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여기서 칠레의 망명 시인은 ‘파블로 네루다’이다. 영화를 통해 그가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시인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1971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운명과 희망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설득력을 갖춘 시’ 


이것이 스웨덴 한림원이 시인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 사유이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다... 시가 나를 찾아왔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서인지 강에서 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


그건 목소리도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불렀다.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속에서 불렀다.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나를 건드렸다.


 

네루다의 '시' 중에서


시에 대해 이렇게 멋진 시를 쓰다니. 내가 시를 찾아간 게 아니고 시가 나를 찾아오다니 얼마나 낭만적인 말인가. 그러나 시인의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무대는 이탈리아의 한 작은 섬이다. 시인이면서 칠레의 외교관이었고 공산당원이었던 네루다는 일 때문에도 그렇고 정치적 문제로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일 포스티노는 네루다가 이탈리아로 잠시 망명했을 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미 유명한 인기 시인인 그에게 전 세계에서 편지와 소포가 작은 섬으로 쇄도하자 우체국 책임자는 그에게만 전달하는 마리오라는 임시 우편배달부를 고용하게 된다. 마리오는 네루다가 전 세계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걸 알게 되면서 그 비결이 바로 시인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시를 배운다. 배워봤자 네루다가 쓴 시를 거의 베껴 쓰는 수준이었지만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면서 시인이 되어간다. 마침내 편지에 감동한 여자와 결혼하게 되는데 마침 네루다도 망명에서 해제되고 고국 칠레로 돌아가게 된다. 


그 후의 이야기도 감동이지만 이 둘의 우정이 쌓여가는 장면이 재밌고 둘의 대화에서 네루다의 시적인 표현이 가득 나온다. 음악도 우정 어린 두 남자의 재밌는 일상과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네루다가 떠나고 마리오는 진정한 시인이 되어 데모하는 곳에서 대항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실제로 마리오 역을 맡았던 이탈리아의 배우가 영화 마칠 때까지 심장 수술을 미루다가 영화를 다 찍고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은 너무 안타까웠다. 네루다를 연기한 사람은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필립 느와레’인데 생전에 네루다와 아주 많이 닮았다. 




네루다가 공부를 해서 외교관이 된 것이 아니라 칠레에서는 특이하게도 시인을 해외 영사로 발령 내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그의 시가 다양하고 풍부한 색채를 끊임없이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해외 생활로 인한 많은 경험과 열린 마음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양과 솔방울’이라는 네루다와 미국 시인 로버트 블라이의 대담 내용이 흥미를 끌었다. 블라이는 먼저 네루다의 시에서 엄청난 이미지들의 강이 범람한다 말하고 스페인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알렉산드레, 페루의 바예호, 아르헨티나의 에르난데스 등의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가 스페인어로 나타난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네루다는 미국 시인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 좋다고 하면서 스페인의 정치적 각성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유럽에서는 모든 게 그려졌고 노래되었는데 남미는 아무도 모르는 나무들, 이름 없는 강들로 모든 것을 새롭게 노래할 수 있었다면서 미국 시인 휘트먼을 이야기하며 모든 것을 보는 무서운 눈을 가진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휘트먼의 자유분방한 시들도 좋아하는데 사실 이렇게 시인들끼리 영향과 영감을 주고받은 걸 생각하면 감동이 두 배가 된다. 하나의 영화에서 위대한 시인들을 연이어 알게 되고 발견하게 되었다. 지식의 연결고리가 재밌다. 












네루다의 시를 우리말로 가장 많이 번역한 정현종 시인은 ‘네루다의 시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생동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시에는 사랑도, 현실도, 낭만도, 치열함도, 이념도, 정치도, 투쟁도 그리고 인간애까지 가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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