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선생님 말씀 중 기억 남는 문구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많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제대로 쓰일 곳에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매사에 채우려는 나. 행동하려는 내가 떠올랐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해야 한다는 생각은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고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그 일이 꼭 나를 필요로 하고
동시에 내가 그 일이 나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고
문제는 양에 있다.
해야 하는 일이 많다는 것.
그 말은 정말 중요한 일에 밀도 있게 질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 말인 즉, 해야 하는 일이 아주 간결하고 명확하고 심플하고 명확한 한 가지가 아니라 매사에 열 가지라는 것은 내가 진짜 내게 중요한 한 가지를 삶의 큰 틀에서도, 몇 년 단위에서도, 일 년 단위에서도, 한 달 단위에서도, 하루 단위에서도 제대로 골라낼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런 능력을 그래서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싶어 고민해 보았다. 최근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소우주가 대우주의 원리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서이다.
나의 글은 생각이 넘치고 산발적이고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그 말은 내가 정말 제대로 된 한 가지를 날카롭게 성찰하고 파헤치려는 노력이 부족함을 느낀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정말이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참이다.
어제 처음으로 제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주말까지 쓰기로 한 글의 초고를 작성하는데 나의 글은 한 가지에서 시작해 어느덧 오만 가지를 담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저저것도 저저저저것도 떠올라 다 담으려다 보니 이게 뭔가 가슴이 울리지 않는다. 뻔한 이야기 대잔치다.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모든 내용을 다 버리고 하나의 소재에만 집중해보려고 한다.
이때 아쉬운 것이 있다. 어제까지의 모든 노력을 다 버리기에 아까운 것이다.
아 이것도 남겨두면 언제 어딘가에 쓰이지 않을까.
여태 썼던 것을 어찌 다 버릴까 하는 그런 생각들.
이 생각을 바라보며 왜 내가 그렇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지 보인다.
정리 정리 정리 비움 비움 비움을 외치면서!!!!
언제 쓰이지 모를 수도 있다는, 여기에 이만큼 돈과 시간을 썼다는 그 지나간 과거의 시간과 에너지를 버리지 못하기게 간결해지고 단촐해지지 못하는 내가 보인다.
쓰단 만 글을 여기저기 남겨두며 버리거나 삭제하지 못하여
끝도 없이 보관하고 쌓여가는 노트들,
배움의 흔적들, 지난 서류들,
컴퓨터 안에 터져나고 있는 용량들,
서랍 안 잡동사니, 창고 구석구석을 차지하는 물건들,
옷장 안 입지 않는 옷들,
치우지 못하는 장난감들,
다음에 또 쓸지도 몰라 남겨두는 아이들 스티커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더냐.
스피노자가 말하는 사과나무 한 그루.
난 그 사과나무 한 그루를 찾기 위해 살고 있다.
어떠한 기쁨과 쾌락, 환희가 찾아와도
어떠한 고통과 불안, 절망이 찾아와도
내가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그 행동 한 가지를 찾고 싶다.
그 '일'은 만물의 정기를 담고 있으며
그 '일'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으며
그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으며
그 '일'을 통해 매사에 나를 느끼고 깨어있을 수 있으며
성장 실패 시도 성공 좌절 끝에 찾아오는 그런 '일'
그 '일'이 결국 '내 존재 자체'인 그런 일.
그런 일은 어쩌면 특정 행위, 생각, 행동, 직업이 아니라
매 순간 일과 내가 하나 되는 상태가 아닐까?
결국 믿음 아닐까?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많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제대로 쓰일 곳에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이 말은 내가 아직 나를 못 믿고 있다는 것이고, 그 말은 내가 하는 일을 아직 못 믿고 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그 믿음 이면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자꾸 해야 할 일들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분주하고 바쁜 게 아닐까?
해야 할 것 하나만 하면 나머지 아홉 개는 안 해도 된다고 하신 말씀은 결국 내가 딱 하나에 대한 믿음이 매사에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
엔트로피가 자꾸 증가하려는 것은
그 안이 비어있고 자꾸 더 비움을 감추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 아닐까?
나선의 중심이 자꾸 넓어져가고 비어져 가는 것을 정신과 철학으로 채우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더 내려놓고 더 간소화하고 행동을 더 줄여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물질도 사람도 다 내려놓을 만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가족인 경우에라도?
너무 어렵다.
가족을 내려놓는다??
내가 채우려는 것은 가족을 더 잘 돌보기 위함인데
내가 진짜 채워야 하는 것이 나라면
나만 제대로 채우면
내 가족은 내가 돌보지 않아도 알아서 잘 채워질 것이라는 말인가.
그들은 하늘과 우주가 알아서 그들을 돌보고 있으니
나는 세상에 그들을 위탁하여
부디 나부터 채우게 해달라고 해야 한다는 말인가?
결국 이 모든 것은
내가 진짜 믿음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여전히 불안하다는 뜻인 건가?
궁극적인 자기 신뢰란 뭘까?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내면소통 책에 나오는 마음근력의 핵심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상태란 결국.
세상의 고통과 기쁨에도 초연하고
내 아주 가까운 가족이 느끼는 고통과 기쁨에도 초연하고
심지어 나의 고통과 기쁨에 초연한 상태인 것인가?
에너지가 수렴되는 고요의 상태인가?
그럼 무엇을 위해에 고요에 도달해야 하는 것일까?
고요의 상태만이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탄생시키고
그 힘으로 또 생성과 소멸의 무한 반복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인가?
내가 추구하는 그 상태가
소멸의 상태
비움의 상태
고요의 상태라는 사실이
두렵게 느껴진다.
그 하나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것은
결국 소멸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아 어렵다.....
일단 오늘은 그저 어제의 글을 싹 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 보자.
이것저것 담으려고 하지 말고 한 가지에만 집중하자.
싹 다 못 버릴 것 같으니 새로 저장으로 새로 시작해 보자.
어렵고 두려울 땐 그냥 생각을 멈추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만 하면 된다.
오늘 나는 어제의 글을 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