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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Aug 14. 2023

태국 치앙라이, 터미널 앞 고기국수

살림남의 방콕 일기 (#169)


터미널은 시작과 끝을 이어주는 공간이다.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승객들의 모습에서 분주함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대학생자녀를 방콕으로 유학 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에는 걱정과 그리움이, 아이의 마음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나이 든 노부를 혼자 두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떠나는 중년 아들의 근심 속에서 터미널은 만남과 이별, 기대와 미련, 기쁨과 슬픔 등 극성이 공존한다. 심중이 비어버린 허전함 때문일까. 터미널 앞에서는 항상 따뜻한 음식을 찾게 된다.


치앙라이 터미널 앞에 오래된 국숫집이 있다. 태국에서 흔한 쌀국수(꿔띠여우)를 삶아파는 노점으로 버스시간을 기다리며 먼 길을 떠나는 가족들의 복잡한 속을 따뜻하게 풀어준다. 메뉴는 돼지와 소고기로 만든 고기국수로 50밧(2,000원)의 가격에 푸짐한 한 그릇을 내어준다. 태국식 고기국수(꿔띠여우)는 다양한 면, 수프, 토핑을 선택할 수 있다. (아래 항 1~3에서 원하는 재료를 한 가지씩 선택해 간단히 주문할 수 있다.)


1. 면(센) 선택하기

소면(센미) : 농도가 묽은 수프에 선호하는 쌀국수

중면(센렉) : 농도가 보통인 수프나 볶음국수에 선호하는 쌀국수

대면(센야이) : 농도가 진한 수프나 볶음국수에 선호하는 쌀국수

에그누들(센바미) : 드라이누들(비빔면)에 선호하는 면


2. 수프(남) 선택하기

맑은 수프(남싸이) : 일반적으로 돼지나 소고기 등으로 우려낸 맑은 육수

똠얌수프(똠얌 남싸이) : 맑은 수프에 맵고 신맛이 나는 똠얌을 넣은 육수

선지수프(남똑) : 맑은 수프에 선지 등을 넣어 짙은 갈색이 나는 육수

드라이누들(행) : 수프가 들어가지 않는 비빔국수


3. 토핑 선택하기

돼지고기(무) : 숙성시켜 삶거나 쪄낸 돼지고기나 부속부위

닭고기(까이) : 삶아낸 닭고기와 닭발, 부속부위

소고기(느아) : 숙성시켜 삶거나 쪄낸 소고기나 부속부위

미트볼 또는 피시볼(룩친) : 삶거나 찐 고기완자와 어묵


오후 2시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터미널 앞 국숫집은 사람들로 붐빈다. 에어컨이 없는 홀이지만 사람들이 센미(소면)+똠얌 남싸이(똠얌수프)+무(돼지고기)+룩친(미트볼 또는 피시볼)을 땀을 흘리며 먹고 있다. "똠얌국수(맵고 신맛이 나는 고기 국수)는 30년 전 어머니가 사주셨던 터미널 앞 잔치국수와 비슷할까?" 기대감으로 주문해 보았다.


거대한 솥에 육수를 삶아내는 열기로 홀은 습한 사우나 같다. 주문과 동시에 나오는 똠얌국수는 50밧이라는 가격치곤 고기양이 제법 듬뿍하다. 구수한 육수에 새콤한 똠얌향이 묵은 김치를 올린 수육처럼 식욕을 돋우며 입에 침이 고인다. 센미면은 우리의 소면보다 얇아 깔끔한 맑은 국물과 잘 어울린다. 평소 즐겨 먹지 않는 똠얌이지만 터미널 앞에서 먹는 감성 때문일까 어느새 한 그릇을 깔끔하게 비우고 말았다.


거리는 시간과 속도에 비례한다는 수학공식 보다 그리움은 거리와 시간에 비례한다는 삶의 공식이 가까이 와닿는다. 20년 전 논산훈련소 입소를 위해 대전역 앞에서 친구와 함께 먹던 콩나물국밥과 10년 전 주말부부였던 아내와 함께 마산터미널에서 먹던 돼지국밥은 먼 길을 떠나기 전 뱃속의 든든함과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주었다.


치앙라이에서 방콕까지 800km, 거리는 짧을지라도 버스로 11시간은 비행기로 인천에서 LA까지 걸리는 긴 시간으로 거리가 멀어질수록 심적공동이 커진다. 하지만 각자의 꿈을 위한 짧은 이별은 오늘의 그리움을 씨앗 삼아 내일의 간절함으로 열매를 맺으리라. 치앙라이 터미널 앞 국숫집은 인생의 여정을 떠나는 이들에게 소박한 국수 한 그릇을 대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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