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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Aug 16. 2023

태국 방콕, 집도마뱀의 도발

살림남의 방콕 일기 (#171)


"새똥을 맞으면 운이 좋다."라는 말을 지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기분 좋은 거짓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간단한 위로 한마디 새똥 맞은 찝찝함이 샤워를 한 듯 상쾌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운이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지만 언젠가 행운이 찾아올 거라 기다리고 있다.


태국에는 새가 많다. 그래서 이곳에서 더 많은 새똥을 맞게 된다. 좋은 신호라는 기대감으로 어떤 큰 행운이 찾아오려나 일 년을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 여제 것 맞은 새똥만으로 이미 대박을 이루고도 남을 정도라 운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싶은 마음에 외출 시 항상 우산을 쓰고 다닌다.


태국서 우산은 강력한 스콜성 폭우와 뜨거운 자외선을 온몸으로 막으며 심지어 불시에 떨어지는 새똥과 잡다한 해충들로부터 신체를 방어해 주는 외출 필수품이다. 이런 극단적인 환경 탓에 우산은 몇 달 가지 못해 살이 부서지고 원래의 색깔이 바래져 고장 나고 만다.


새똥 덕분일까? 이제는 떨어지는 촉감을 구분해  이것이 배설물인지 아닌지 어떤 새의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이 생겼다. 하지만 듬직한 우산이 있어 더 이상 밖에서 새똥을 맞을 필요 없게 되었다며 안심하던 무렵... "툭... 투둑" 갑자기 손등 위로 가벼운 물방울 같은 것이 떨어진다.


본능적으로 이것이 어떤 생물의 배설물이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비둘기의 것보다 가볍고 참새의 것 같은 느낌이지만 액체가 많은 농도.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집안, 그것도 거실에 있는 책상 앞... 이게 무슨 일일까. 의자를 조심히 뒤로 빼고 천장을 올려보니 매립된 조명등 구멍 안에 모른 채 숨어있는 집도마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많은 새똥들을 처리한 만큼 익숙하게 휴지로 손등을 신속히 닦아내고 건방진 집도마뱀을 잡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매립등 구멍은 막다른 골목처럼 도망갈 곳이 없다. 조명등 구멍에 맞을만한 페트병을 반으로 자른 후, 조심히 의자를 사다리 삼아 천장으로 손을 내밀자 영리한 집도마뱀은 도망갈 곳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팔과 다리를 활짝 편채로 나를 향해 점프한다.


코너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벼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도마뱀을 잡기 위해 잘라놓은 페트병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비웃기라도 하는 듯 2m의 높이의 천장에서 으로 안정적으로 "착" 달라붙는 녀석의 도발에 인내의 경계를 넘는다. 의자 뒤에 걸려있는 옷가지로 힘껏 내려쳐 보지만 어두운 구석 먼지 쌓인 책장사이로 래 날듯 숨어버린다.


이제는 "새똥을 맞으면 운이 좋다."는 말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적어도 도마뱀  정도 맞아야 귀한 행운이 찾아온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찾아오지 않는 행운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직접 그 행운을 쟁취하고 말리라. 그날 저녁 책장뒤에서 숨바꼭질하던 오만하고 건방진 집도마뱀 결국 술래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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