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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Aug 31. 2023

태국 방콕, 한달살이 제품들

살림남의 방콕 일기 (#179)


태국에는 쇼핑하는 재미가 있다. 환율에 따른 저렴한 쇼핑물가는 태국 여행의 최대 장점이다. 물론 유명 브랜드 의류, 신발, 잡화는 한국과 비교해 별 차이 없지만 현지 로컬 마켓에서는 100밧(4천 원)으로도 서너 가지 생필품 등을 구매할 수 있으니 보고 고르고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입해서 한 달 만에 변심하는 물건들을 '한달살이 제품'이라 부른다. 싸고 좋은 제품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입을 하게 된다. 단단해 보이는 속 외형과 달리 자세히 보면 보기 좋게 플라스틱 위에 색칠해 놓았다. 지 않으려 해도 속게 되는 한달살이 제품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달살이 제품들을 리해 보았다.


ㅇ 선풍기

일반적인 태국 선풍기에 타이머가 없다. 약풍, 미풍, 강풍 바람의 세기와 회전 정도만 가능하니 이런 직관적인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즉, 불필요한 기능을 없애고 가격까지 저렴하니 그 만한 가성비가 없다. 그런 솔직한 모습 때문이었을까. 굳이 필요 없는 탁상용 선풍기를 300밧(만원)에 구입하고 말았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버튼을 누르면 돌아가는 시간과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한다. 1초, 2초.... 어느새 1분이 넘어서야 겨우 모터가 돌아가며 약한 바람을 불어낸다. 이제는 버튼을 눌러도 움직임이 없다. 한참을 잊고 있다 갑자기 혼자 돌아가는 선풍기, 변심해 버린 그녀의 순수했던 첫인상은 한 달 만에 사라져 버렸다.


ㅇ 건전지 시계

이사오기 전부터 장식처럼 벽에 걸려있던 시계는 원래 움직임이 없었다. 건전지를 교체해 보아도 초바늘은 멈춰있어 새로운 시계를 사기로 했다. 집 앞 10밧 가게에는 생활 잡화들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12인치 크기의 원형 시계가 100밧(4천 원)으로 멀리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시야가 좋았으며 손가락만 한 아라비아 숫자는 기교 없이 청순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시간에 흐름에 잘 따라가던 100밧(4천 원) 짜리 벽시계는 5분, 10분, 15분씩 시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만만한 10밧 가게에 가서 10밧짜리 건전지를 사서 교체하니 뒤쳐진 초침이 다시 부지런히 시간을 쫓아간다. 겨우 며칠이 지났을까. 시간은 늘 그렇듯 다시 늦어진다. 건전지가 잘못된 것인지, 시계가 잘못된 것인지, 10밧 가게가 잘못된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ㅇ 전기자전거

집과 버스정류장까지 거리가 멀어 구입한 전기자전거는 전기로 충전하니 휘발유도 필요 없고 자전거 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며 오토바이 같은 외형이지만 운전면허 필요 없이 최대 성인 2인까지 탑승할 수 있으니 편의성과 가성비에 반해 구매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났을까. 한번 탈 때마다 1시간 이상 충전을 해야 하고 노면이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달리다 보니 충격에 약한 배터리는 파손되었고 타이어는 하루마다 바람을 채워줘야 하니 관리하는 시간과 비용보다 차라리 우산을 쓰고 걸어 다니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멈추어버린 전기자전거는 여전히 멈춰 서있다.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편리함을 바라는 이에게 한달살이 제품은 감성적이고 수동적인 불편함을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겉보기와 달리 변심을 빠른 로컬 제품들을 고쳐서 제대로 동작하길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그들에 맞춰가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이런 시행착오 덕분일까. 태국생활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예전보다 더 부지런해졌고 불필요한 물건을 즉흥적으로 사지 않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일을 혼자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태국 리얼 라이프는 당황스러움을 모른 척 즐기는 것에 진정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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