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는 잘 알려진 불치병이 있다. 기변병(오토바이를 바꾸고 싶은 상사병)과 기추병(오토바이를 추가하고 싶은 상사병)인데, 이 두 종류의 병은 바이크를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걸릴 수 있는 매우 무서운 병이다.
한 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바이크를 어떻게 그리 자주 바꾸고, 또 추가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기존에 타던 바이크를 짧게 타고 약간의 감가를 감당할 마음만 있다면 무리 없이 가능하다.
바이크의 수요 공급 법칙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수요가 더 많다.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배달용 바이크 말고 취미용 바이크에 한정해서) 개인적으로 바이크의 감가는 감당할 수 있다고 느껴진다. 또 경우에 따라서 인기 있는 바이크를 타고 다닐 경우에는 거의 감가 없이도 팔 수 있기 때문에 기변은 생각보다 쉽다.
어쩌면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름 다들 괜찮아서 있을 것 같고, 혹은 라이더에 삶에 바이크가 매우 높은 우선순위에 랭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비용 지출은 감당할 수 있을 수도 있다.
기변병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 이유는 소라를 타고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나에게도 그 병이 왔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부터 타보고 싶었던 바이크가 있는데, 할리데이비슨의 아이언 883이라는 스포스터 계열의 매끈한 바이크가 있는데, 길 가다 보니 그 친구가 종종 보였고, 바이크가 익숙해지다 보니 나의 소라는 워낙 편한 바이크라 다소 지루한 감도 있었고, 뭐랄까, 그래도 바이크 타면서 인생에 할리는 한번 타봐야 하지 않나? 뭐 이런 복합적인 생각들이 오가면서 기변병을 악화하고 있었다.
다른 할리와 달리 아이언 883은 나름 스포티한 느낌이 강해서 아저씨 이미지도 크지 않고 비용적으로 괜찮고 그래서 말이지...
한참을 파쏘 (Passo : 오토바이 매매 웹사이트)를 뒤지다 집 근처에서 1년도 안된 그리고 2천 킬로 정도밖에 주행하지 않은 883이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며칠을 그 매물을 바라보면서 살까 말까를 망설이다, 차주에게 연락을 했고. 그냥 딱 한번 보기만 하고 이것저것 트집 잡아서 한번 깎아 보자라는 생각으로 만나러 갔는데,
웬걸~ 10분 만에 구매 결정했다. 10만 원 깎은 것 같다.
1450만 원짜리 바이크, 550만 원짜리 바이크를 타다가 갑자기 스케일이 조금 더 커지게 되었다. 전 주인은 젊은 친구였는데, 자기와 883이 너무 맞지 않고, 자기에게는 너무 불편해서 다시 스쿠터로 돌아간다고 하면서 판매한다고 했다.
사실 그때는 속으로 바보 같은 녀석 오토바이가 맞지 않고 맞고가 어딨어, 그냥 타면 되지 그랬었는데…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바이크 매매는 구매자가 구매 의사를 밝히고 계약금을 넣는다. 그러면 판매자는 주중에 오토바이 번호판을 반납하고, 사용 폐지 신고서를 받아야 한다. 이 기간이 보통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물론 바로 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주중에는 본업의 일을 하니까 바로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아서…
판매자가 서류가 준비되면, 번호판이 없는 바이크와 서류가 나에게 주어진다. 물론 번호판이 없기 때문에, 바이크를 운전하면 안 된다. 그래서 화물차를 불러야 하고 탁송으로 집까지 옮긴 이후에 나 역시 평일에 바이크를 등록해서 번호판을 받아야 한다. 일하면서 적당한 타이밍을 봐야 하기 때문에 이 또한도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 물론 마찬가지로 하려면 얼마든지 단축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2주라는 시간이 흘렀고, 몸이 달아오른 난 잘 참고 참아서 883을 인수했다.
그리고 비록 엔트리 급의 작은 바이크지만(상대적인 표현이다. 할리 중에서 작다는 이야기임) 아메리칸 머슬 바이크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자유로운 영혼의 향기가 마늘냄새처럼 사방에 진동하는 이 바이크에게 난 당시 미국 대통령의 딸 이름과 같은 이름인 이방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처음 주행에는 할리의 웅장한 배기음 (물론 작은 바이크라서 그리 크지는 않다. 상대적으로 다른 바이크에 비해서 큰 거지),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바이크에서 풍기는 간지.
사실 할리를 타면 사람들은 자주 하는 경험인데. 횡단보도에서 서 있거나 주유소에서 기름 넣을 때 많은 남자들이 날 본다. 혹은 질문을 던지거나…. 한 번은 여자 친구와 횡단보도를 건너는 남자의 목이 돌아가는 장면을 헬멧 안에서 흐뭇하게 바라본 적도 있지.
하루에 2~3회 정도의 따봉(엄지 척)을 받는 것도 다반사다. 할리란 그런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길가다 획득한 아이템으로 레벨업 되어 주변에서 게임하던 사람들이 우왕 하는 부러움을 받는 느낌이랄까, 혹은 무대에서 맨날 단역배우가 갑자기 신데렐라가 되어 멋진 옷을 입고 주인공 정도의 주목을 받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인생이 달라진 것 같은 엄청난 느낌이 들게 되는데, 그게 할리의 힘이다.
그렇게 난 1년 3개월 만에 편한 바이크에서 간지가 우선인 할리데이비슨 라이더가 되었다.
비록 이전 바이크보다 불편해서 멀리 갈 때 힘들고, 코너링도 힘들고, 지하주차장에서 눈치 보이고, 서스펜션이 딱딱해서 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척추뼈 디스크 대미지 걱정하더라도, 난 내가 생각할 때 적어도 경기 남부지방에서 가장 멋진 놈이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걸 타는 동안은, 환각에 빠진 것처럼 그렇게 또 다른 바이크가 주는 기쁨을 알아가게 되었다.
할리데이비슨 바이크는 사실 호불호가 갈리는 바이크다. 대부분은 호감을 갖고 있지만, 소음 부분에서 관종 라이더라고 손가락질당할 수 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행위에 대한 결과보다, 내가 어떻게 느끼냐 일 것인데, 이방카를 타고 돌아다니면 난 영화에서 나오는 초원을 누비는 방랑자 같은 느낌이 들었고 무언가 새로운 진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그런 여행자의 느낌이 들었다. 매일매일 산티아고 고행길을 다니는 고행자의 느낌이 들기도 했고, 주행 중 들리는 배기음과 고동감은 내가 살아있음을... 그냥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 느낌은 타봐야 안다. 정말로 타 봐야지만 알 수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