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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Mar 14. 2024

시시한 하루에 꾸는 꿈

비 오는 하루가 열개의 또다른 날을 지탱해 주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또 열흘 정도는 거뜬히 살아낼 수 있게 됐다.


무기력한 정신이 온 몸으로 전이 된 기분이 든다. 술로 이겨내려드니 전이 된 그 무언가는 악성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그 위력을 점점 더 떨쳐간다.


글을 읽고, 쓰기 조차 힘겨운 시간들이 하염없이 흘러간다. 본능적으로 폰을 집어들까 싶어 집에 있는 날이면 저 먼벌치에 폰을 가지런히 놓아두고 침대에 멍하니 누워 창문 너머의 바깥세상과 지나간 영겹의 세월들을 생각한다.


쓸모를 다해 버려지는 것들과 정말로 보고 싶은 사람들이 꿈에 나오면 나는 어떻게 맞이할지도 생각해 본다.


이를테면 '폴'과 '비르지니'가 나눈 맑은 사랑에 관해서다. 언제든 이름도 모르는 나무가 가득한, 그들이 머문 1700년대의 모리셔스 섬으로 떠날 수 있는 꿈 같은 것이다.


아버지가 택시기사 일을 끝마치기를 기다리며, 우리 가족은 마당 툇마루에서 밥상을 준비한다. 아궁이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고, 누나와 나는 아버지가 도착 할 무렵 어딘가에 숨어서 깜짝 놀래킬 준비를 한다. "아! 오늘은 뒤주가 좋겠다!"하며 둘이 합을 맞추기도 한다.


마흔 즈음, 그러니까 마흔 셋이 된 지금 즈음 국민학교 시절 첫사랑이 우연히 찾아와 인사를 건넨다. "기헌아, 30년만이네. 잘 지냈어?"하며. 그런 꿈들을 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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