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경찰 신분의 친구와 오랜만에 술을 한잔하게 됐다. 이 친구는 성이 권씨인데, 나는 이 친구를 "어이~ 권청장"하며 부르기도 한다. 술이 한껏 취하면 '권순경'으로 직급을 수직낙하 시켜 부르기도 하지만.
요즘은 나라가 어지러우니 화두는 역시 사회적 이슈로 자연스레 모아졌다. 이 친구가 속해있는 경북경찰청의 채상병 사건 이첩 이슈부터 동탄경찰서의 헬스남 성희롱 무고 사건까지 두루두루 이야기가 오고갔다.
현직에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보도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종종 받게 된다. 생생하며 집중력도 따라서 높아진다. 다시 기자로 복귀한 마냥, 어느새 나는 취재를 하고 있는 꼴이 된거다.
그러다 농구선수 허웅 얘기가 나오게 됐다. 전여친을 두번 임신 시켰고, 두번의 낙태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그 과정에서 전여친은 낙태의 댓가로 3억을 요구했는데, 알고봤더니 그 여친은 강남의 유명 업소 출신이며, 마약사범 황하나 무리들과 이선균을 협박했던 룸 실장과도 연루가 되어있다는 내용이다.
이 후 폭로전이 계속 됐는데, 허웅도 집착이나 행동 등이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이 여자의 녹취록을 보면 "(애 지우는게) 이제 익숙하기도 한데.." 라는 얘기가 나온다. 허웅을 만나며 또다른 남자를 사귄듯한 늬앙스도 등장을 한다. 그래서 허웅은 긴가민가 했던거다. 뱃속에 있는 애가 내 애가 맞는지.
나는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만약 만나던 친구가 임신을 했는데 '내 애가 맞을까?' 하는 그런 표독스러운 생각. 남녀간에 혐오가 넘쳐나고 사회가 흉흉하다보니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 얘기를 친누나한테 해본적이 있다. 그런데 여자 입장에서도 만약 그 시점에 외간 남자와 관계를 하게 되면 누구 애인지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그저 결혼을 약속한 이와 신뢰와 믿음으로 키우는 수 밖에.
여기서 의문이 든다. 옛날이야 의학기술도 없고 대부분 집에서 낳는터라 누구 애인지 알 길이 없지만, 요즘은 태어나는 순간 간단한 검사 등으로 알 수가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하지 않는걸까? 법적으로 강제하면 간단한데 말이다. 서로 의심하고 싸울일이 뭐가 있나. 애가 태어나자마자 친자 확인을 의무화 하면 되는 것을.
이미 결혼을 한 앞에 있는 친구도 동조를 한다. 그런데 현실이 쉽지가 않을거라고 한다. 여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거라며. 나는 반박한다. 아니, 기분 나쁠게 뭐가 있냐고. 그러니까 법적으로 강제해놓자는 말인데, "이 권순경 병X 같은 새X야!!ㅎㅎ" 친구는 이에 질세라 답한다. "뭐 이 X같은 기레기 새X야!!ㅎㅎ"
청장에서 순경으로 격하가 된 걸 보니 점점 취기가 오른 모양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권청장아, 너라면 저렇게 매혹적이고 여시 같은 여자가 마음먹고 달려들면 꼬임에 안넘어갈 자신이 있냐?"하며 물었다. 말로야 저렇게 더러운 여자 왜 만나냐고 대답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청년시절부터 장년이 된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의심이 현실이 되는 불행하며 냉소적인 사랑을 했으며, 그 결과로 신뢰보다는 의구심을 점점더 품게 되었다. 사랑은 언제나 푸성귀 같을 줄 알았는데, 여름의 한 계절에만 피고 지는 능소화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셈이다. 그 결과로 나는 지조와 절개를 지키지 못했는데, 상대에게는 보다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이혼과 반복되는 이별을 겪으며 이제와서 고백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면 됐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이성을 혐오할 일도, 친자 확인에 의문을 품을 일도 없다. 혼자 살겠다는 다짐은, 이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10년전 서울에서 친하게 지내던 한 변호사 선배의 우스갯 소리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부부 자녀들 전수조사하면 10% 정도는 친자녀가 아닐껄?" '설마' 했던 물음표가 '아차' 하는 느낌표가 되기까지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