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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ul 25. 2024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아낸다는 건

정말이지 말이다, 사람들은 어쩜 매일을 똑같은 삶을 살아낼 수 있는걸까.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은 시간에 회사나 학교를 가고, 똑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똑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그 모든 시간 곁에는 휴대폰이 있고.


가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혹은 연말 같은 특별한 날이 다가오면 잠시 ‘안똑같은’ 하루를 보내다가 다시 똑같은 하루로의 복귀.


어떤 날은 거울을 보며 내가 이렇게나 늙었나, 느끼면서도 또 별다름 없이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나.


원대한 꿈을 꾸고 노력해서 이룬들, 그 하루에서 조금도 벗어나질 못한다.


닭장 안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암탉들과 다를게 뭐가 있을까. 조금더 너른 세상에 산다는 것? 너른 세상 곳곳을 모두 둘러 볼 일도 없는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 더군다나 우주를 생각해보라. 먼지 한 톨을 수억만개의 분자로 쪼갠 만큼의 크기도 안되는 지구인 걸.


그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암탉들이라고 생각이 없을까. 제 새끼를 품고 줄탁동시(啐啄同時) 하는 마음은 사람보다 나은 걸.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그들이라고 꿈이 없을까. 거위도 꿈이 있고, 오리는 하늘을 날아오르고 싶어 했는 걸.


코모레비(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그리고 그 햇살을 바라보며 느끼는 행복’이라는 뜻의 일본 말.


볕뉘. 창틈으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살.


윤슬. 바다 위 햇살이 수놓은 잔물결.


똑같은 하루에서 어느 날엔가 이 세 가지를 생각케 됐다. 산에서, 이른 아침 방안에서, 그리고 제주 바다에서 본 것들이다. 오늘과 영원히 단절한 죽은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걸, 나는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럼 죽은 사람들은 무얼 바라보고 있을까.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지금껏 돌아온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겠느냐’ 하며 탄식했던 소설가 야콥 하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볕뉘나 윤슬에 상응하는 아름다움이 저승에도 있긴 한가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하고 담대하게 소리치며 똑같은 하루에 대한 복수를 솎아내자. 그리고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 그곳을 향해 기쁜 마음으로 떠나자.


그곳은 매일매일 또다른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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