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부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18화)
에어비앤비를 숙소로 택한 건 세비야가 처음이다. 어느 정도 여행이 익숙해질 무렵 에어비앤비에서 묵기로 했는데 세비야가 바로 그곳이다. 에어비앤비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주인과 소통하며 해결해야 하는데, 영어로 소통이 쉽지 않은 우리는 그게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메신저에 번역기능이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까지는 우버를 이용했다. 택시에서 내려 구글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데 해당 장소인 22번지를 금세 찾았다. 지도 보며 찾아가는 게 바로 내 역할이고 그 역할, 나는 잘 수행했다. 그런데 남편이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며 여기가 아니라 한다. 안내문에는 옆에 기타 상점이 있는데 여기는 없다며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는 왔던 길을 다시 나가 이 골목, 저 골목 왔다 갔다 한다. 갈수록 주소의 숫자는 달라지고 멀어진다. 내가 보기에 남편은 엄한 곳을 헤매는 것만 같다.
그대로 두면 안 되겠기에 인상을 팍 쓰며 목소리에 날을 세워 이쪽으로 다시 오라고 말했다. 내가 처음 찾은 22번지로 다시 갔다. 우리 숙소는 그곳이 맞았다. 대문 옆 화분을 들어 열쇠를 찾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1층에는 작은 정원과 세탁실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도착하니 세 개의 방이 나란히 있고 그중 하나의 방이 우리 숙소다.
생각보다 더 실망인 숙소, 빠르게 극복했다
▲ 세비야 대성당에 있는 이슬람 양식의 히랄다 탑
ⓒ 김연순
방으로 들어와 빠르게 둘러보며 스캔했다. 침대와 거실, 주방과 세탁실이 있다. 그런데 1박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한 숙소가 기대에 비해서 너무 부실했다. 토스터기는 녹이 슬어 있어 거기에 빵을 넣어 굽고 싶지 않았다. 무선 주전자는 더러워서 물을 끓이기가 싫었다. 프라이팬이 여러 개 있었지만 코팅이 다 벗겨져 있어 제일 작은 것 하나만 사용이 가능했다. 수건도 달랑 네 장이었다. 에어비앤비, 엄청 기대하며 들어왔는데 완전 대실망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 무렵 세비야의 비슷한 조건을 갖춘 숙소들은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도 워낙 비쌌기에 어쩔 수 없다. 세비야에서 지내는 7일 동안 마트에서 장 봐다가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며 빠르게 정신승리 모드로 진입했다.
일단 그동안 캐리어 한편에 고이 모시고 다닌 라면을 꺼냈다. 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 세 개를 넣어 팔팔 끓였다.
"우리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그러니까 둘이서 라면 세 개는 먹어줘야 해."
누구랄 것도 없이 이때만큼은 한마음으로 일치단결했다. 그렇다. 세비야까지 왔으니 그럴 수 있는 거다. 반찬으로 볶은 김치와 진미채도 꺼냈는데 이건 뭐, 입에 들어가는 대로 뭐든지 다 맛있다. 정신없이 젓가락질하고 국물까지 떠먹으니 속이 뜨끈하며 포만감이 쑤욱 올라온다.
단지 배불러서 오는 포만감이 아니다. 이제 더 바랄 게 없다 싶으면서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뭐든지 이해가 되면서 마음의 품이 넓어진다. 이런 게 그동안의 숙소였던 호텔과는 다른 맛인가 보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어 커피 한잔씩 내려 마시는데 그게 또 뭐라고 마음 한쪽이 저려오며 살포시 행복감이 느껴진다.
127년 걸려 지어진 대성당이라니
다음 날 아침, 누룽지를 끓여 먹고 숙소를 나섰다. 예약해 둔 세비야 대성당으로 갔는데 이미 입장하려는 사람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세비야 대성당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영국의 세인트 폴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성당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대표적 도시 세비야는 이슬람 문화와 가톨릭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 세비야 대성당 내부
ⓒ 김연순
세비야는 오래전에 이슬람의 알모아데 왕조가 뿌리를 내린 지역으로 이슬람 문화가 활짝 꽃 피운 곳이다. 이후 레콩키스타에 의해 가톨릭 세력이 세비야를 점령하면서 이곳의 주인은 가톨릭이 되었다. 가톨릭은 이슬람이 다시는 이 땅에 발 딛지 못하도록 공언을 하고 만방에 그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그 방법으로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바로 그 자리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당을 짓게 된 것이다. 그게 바로 세비야 대성당이다. 1528년 완공된 대성당은 공사기간이 무려 127년이나 된다.
대성당의 동쪽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탑이 보인다. 바로 히랄다 탑이다. 그런데 이 히랄다 탑은 이슬람에 의해 건축된 이슬람의 유물이다. 이슬람의 모든 흔적을 지우려고 했는데 어떻게 히랄다 탑은 파괴되지 않고 남았을까? 1248년 스페인 페르난도 3세에게 항복한 이슬람의 알모아데 왕조는 이슬람 정신이 깃든 문화유산인 이 탑을 스스로 부수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페르난도 3세의 아들 알폰소 10세는 "만약에 벽돌 하나라도 없어지면 세비야에 남아있는 이슬람교도를 모두 죽이겠다"라고 공언했다. 그래서 히랄다 탑은 그대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세비야 대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히랄다 탑에 올랐다. 10여분 정도 걸어 오르니 다리가 후 덜덜거렸다. 탑의 맨 꼭대기에 다다르니 사방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전망대를 한 바퀴 돌았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도 식으며 눈도 마음도 시원해졌다. 이 탑의 꼭대기는 원래의 모습에서 변형되어 있다. 이슬람 양식인 돔형 지붕을 허물고 꼭대기에 전망대와 풍향계가 있는 종탑이 설치되었다. 둘러보니 사방에 종들이 꽤 많이 보인다. 당시에는 미처 세어보진 못했으나 나중에 확인해 보니 종의 수는 25개나 된다.
이 탑의 이름 히랄다(Giralda)는 '풍향계'라는 뜻이다. 가톨릭 최후의 승리에 대한 믿음을 상징하는 히랄디요(Giraldillo)에서 이름을 따왔다. 바람이 불면 돌아가게 만든 청동 조각상 히랄디요는 한 손에는 방패를, 다른 한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탑의 맨 꼭대기에 우뚝 서 있다.
히랄다 탑에서 내려와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엄청나게 큰 규모에 놀라고 금빛 제단을 비롯한 장식의 화려함에 놀랐다. 성가대석 원목 나무에 새겨진 수많은 조각상들은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다. 그 세밀하고 정교함에 감탄이 절로 나오며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드넓은 성당을 둘러보는데 그중 특이한 조각품이 눈에 들어왔다. 네 명의 왕이 들고 있는 콜럼버스의 관이다.
'대항해의 시대'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네 번의 항해를 떠났지만 결국 인도를 찾는데 실패한 콜럼버스는 결국 모든 재산과 직위를 뺏겼다. 말년을 비참하게 보내게 된 이탈리아 출신의 콜럼버스는 "죽어서 스페인 땅을 밟고 싶지 않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 유언에 따라 땅을 밟지 않도록 스페인의 네 왕국인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의 왕이 콜럼버스가 잠든 관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침략자와 학살자, 콜럼버스에 대한 재평가들
▲ 콜롬버스의 관. 스페인의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 왕이 관을 들고 있다.
ⓒ 김연순
콜럼버스를 '신대륙을 발견'한 영웅으로 떠받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다른 평가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신대륙'인 미국에서는 그를 침략자이자 잔혹한 학살자로 평가하며 미국 땅 곳곳에 세워진 그의 동상들이 철거되고 있다. 네 명의 왕이 들고 있는 콜럼버스의 관을 보면서 당시 해상왕국으로 등장한 유럽의 국가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이 이룬 부는 다른 대륙에 대한 약탈로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세비야 대성당을 둘러보니 너무나 볼 게 많았다. 그러다 보니 뭔가를 집중해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스테인드글라스와 성수대다. 쨍쨍한 한낮의 햇빛이 투영된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눈이 부시게 화려했다. 다채로운 색상으로 연결된 유리조각에는 성경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그 자체로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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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비야 대성당 안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 김연순
화려한 아름다움도 좋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에도 마음이 갔다. 바로 성수대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한국의 성수대는 거의 다 성당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세비야 대성당의 성수대는 입구뿐 아니라 성당 곳곳에 위치해 있다. 성당 내부가 넓으니 그런 것 같다. 성수대는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다 달랐다. 성수대를 이렇게 하나하나 비교하며 들여다보는 것, 그것도 매우 재미있다.
▲ 세비야 대성당 안에 있는 성수대. 워낙 성당이 넓어 각기 다른 모양의 성수대가 곳곳에 있다.
ⓒ 김연순
이제 성당을 나와 바로 맞은편에 있는 알카사르로 향했다. 알카사르에서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신청했다. '작은 알람브라'라고 불리는 알카사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신청한 건데 아쉽게도 오디오가 잘 작동되지 않았다. 교환하러 접수대로 되돌아오기엔 너무 멀었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기에 그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대로 영어 설명을 보며 다녔다. 알카사르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8세기 무렵부터 레콩키스타로 가톨릭이 세비야를 되찾기까지 약 300여 년 동안 이 지역의 주인은 무슬림이었다. 알카사르의 건축양식은 이슬람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아름답기가 이루 다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건물 곳곳에 중정이 있고 중정에는 늘 물을 뿜는 분수가 있다. 화려한 문양의 타일이 바닥과 벽, 천정을 장식하고 있고 아치 모양의 문에 정교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 세비야 알카사르. 중정에 흐르는 물과 함께 벽과 천장의 문양은 이슬람 정신 무한의 세계를 상징한다.
ⓒ 김연순
이슬람의 정신은 '무한'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한다. 끝이 없는 '무한'의 개념은 물이 흐르는 분수로 연결된다.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은 물이 흐르는 통로로 연결되고 그 물은 다시 분수를 통해 솟아오른다. 벽과 기둥, 천정을 장식한 아라베스크문양도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늘이 있는 회랑으로 들어가 중정을 바라보았다. 가운데 물이 흐르고 있다. 조용히 흐르는 물을 보고 있자니 절로 침묵하게 된다. 한참 동안 침잠에 잠겨 있다 보니 머리가 맑아지며 '끝없이 이어지는' 그 무한의 세계에 나도 속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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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카사르 내부에 있는 분수ⓒ 김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