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부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20화)
코르도바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다. 약 1200여 년 전, 스페인 남부를 지배했던 이슬람의 코르도바 칼리프 왕조의 수도였던 곳이다. 코르도바 역사지구는 로마시대부터 16세기까지의 다양한 문화적 유산이 남아 있어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세비야에서 머물며 당일치기로 코르도바에 다녀오기로 했다. 세비야 역에서 8시 기차를 탔는데 50분 지나니 코르도바 역이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드디어 그 유명한 '메스키타 대성당'에 도착했다. 메스키타는 '이슬람 사원'이란 뜻이다. '이슬람 사원'과 '대성당'이라니, 명칭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오랜 기간 '성전'이란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며 극단의 대립으로 치달은 두 종교가 어찌 한 건물에 녹아 있을 수 있나, 궁금하기 그지없다.
▲ 메스키타 대성당 내부. 수많은 기둥 위에 붉은색, 흰색이 교차된 아치가 특이하다.
ⓒ 김연순
메스키타 대성당 입구에 들어섰고 입장권 판매소를 지나 당당하게 무료로 입장했다. 사전에 안내 책자를 보니 8시 30분에서 9시 30분 사이에 입장하면 입장료가 무료라고 했다. 귀한 정보다 싶었고 숙소에서 서둘러 나와 9시 이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입장료(1인당 11유로) 아낀 것이 몹시도 기분이 좋았다. 공짜는 그 어디에서도 좋다.
메스키타 대성당은 원래 코르도바를 정복한 이슬람이 메카(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출생지) 다음으로 큰 규모로 지은 모스크였다. 후에 이 지역을 다시 지배한 가톨릭이 이 모스크를 대성당으로 증축한 것이다. 이슬람 사원으로 건축되었으나 이후 가톨릭 성당이 된 것이다.
내가 알던 성당과는 달랐다
▲ 메스키타 대성당 내부의 예수상
ⓒ 김연순
성당 내부로 들어섰는데, 너무도 특이했다. 내가 알던 성당과는 매우 달랐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수많은 기둥과 기둥 위의 아치들이다. 아치는 붉은 벽돌과 흰 벽돌이 교차된 줄무늬 모양이다. 딱 보자마자 대표적인 이슬람 양식임을 알 수 있었다. 아치를 받치고 있는 기둥은 가로 세로로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서 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기둥의 수는 모두 855개란다. 실내에 기둥이 855개라니 얼마나 넓은지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슬람 양식의 아치와 기둥 사이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이 보인다. 긴 줄에 달려 내려온 중세의 등잔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오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된 이슬람의 미흐랍(모스크의 사방 벽 중에 이슬람교도가 기도하는 메카 방향에 만들어진 아치형 감실)과 황금으로 장식된 십자가 형상이 한 장소에 공존하는 게 너무도 신기하다. 서로 다른 양식이 어우러지는 게 기묘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눈에 들어오는 장면마다 감탄을 하며 돌고 있는데 갑자기 경비 복장을 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둘러보는 관광객들에게 뭔가를 안내하고 있다. 이어 방송이 흘러나오는데 무료로 볼 수 있는 시간은 9시 30분까지고 이제 시간이 되었으니 모두 나가라는 거다. 들어오려면 새로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단다.
우리는 무료라고 좋아하며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9시 30분까지만 무료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안내 책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는 황당했지만 이왕 들어온 거 마지막까지 조금이라도 더 둘러보자 하며 거의 마지막으로 나왔다. 유료로 여유 있게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메스키타 대성당 정원. 오렌지 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김연순
밖으로 나오니 온갖 나무가 아름답게 늘어선 정원이다. 정원에는 아름드리 오렌지 나무가 여를 맞춰 서 있고 중간중간 길쭉하고 높다랗게 큰 사이프러스 나무들도 있다. 사이프러스 나무, 고흐 같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에서만 보던 건데 내 눈앞에 늘어서 있으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이 오렌지 나무 정원은 예전 이슬람 시절엔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씻는 장소였다고 한다.
메스키타 대성당의 외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기다란 대성당 벽면의 끝에 위로 높이 솟은 종탑이 보인다. 원래는 이슬람의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탑 미나렛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바로크 양식의 가톨릭 종탑이 들어서 있다. 갑자기 댕댕 댕댕 종소리가 들린다. 소리 나는 곳으로 올려다보니 종탑의 종이 360도 회전을 하며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주변의 사람들도 놀라며 모두들 종탑을 쳐다본다.
종소리가 멈출 때까지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종소리가 온몸을 좋은 기운으로 감싸주는 것만 같다. 마지막까지 무사히 여행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했다.
▲ 메스키타 대성당 외관.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리며 360도 회전하는 종이 보인다.
ⓒ 김연순
수 없이 파괴되고 복구되고...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교각
정원과 성벽을 둘러보고 과달키비르 강으로 갔다. '코르도바의 로마교'가 길게 뻗어 있고 다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다리 입구에는 개선문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로마교는 처음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만들어졌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며 수도 없이 파괴되고 또 복구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다리는 코르도바를 차지한 이슬람 세력이 건설했지만 이후 가톨릭 세력이 들어서 복구했다. 중간중간 보수를 했지만 교각의 아름다움은 빛을 발한다.
어찌 되었건 다리의 시작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니 한발 한발 내딛는 것조차 감개무량했다. 천년의 시간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다리를 건넜다. 로마시대의 공기와 접촉한 듯 뭔가 뭉클함이 올라왔다. 다리를 건너다보니 중간에 석상이 세워져 있고 앞에는 꽃으로 장식된 제단이 놓여 있다. 지나는 사람들이 그 앞에 서서 기도를 하고 초를 봉헌한다. 석상의 주인공은 코르도바의 수호성인 대천사 라파엘이다. 17세기에 페스트가 창궐했는데 그 재앙에서 코르도바를 구한 대천사 라파엘을 기리는 것이다. 우리도 잠시 멈춰 서서 초를 봉헌하며 기도했다.
▲ 과달키비르 강을 가로지르는 코르도바 로마교.
ⓒ 김연순
로마교를 건너니 식당이 여러 개 보인다. 한참 걷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점심을 먹으려고 그중 한 카페테리아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주문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먼저 음료를 주문했다. 그리고 식사를 주문하려고 하니 식사 주문은 끝났다고 한다. 아니, 밥 먹으러 들어왔는데 밥은 못 먹고 이게 뭔 일이람 싶었지만 음료는 이미 주문이 되어 그냥 나갈 수도 없다.
빨리 계산하고 나가고자 했으나 도대체 직원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손을 들어 한참만에 간신히 한 직원과 눈을 맞춰 계산서를 갖다 달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한참만에 계산서가 왔고 그제야 비로소 결제를 하고 나올 수 있었다. 계산하고 나오는 것도 이리 힘들다니, 한국처럼 계산대에 가서 서면 직원이 와서 계산해 주는 문화가 몹시 그리웠다.
▲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코로도바 시내 골목길.
ⓒ 김연순
다시 로마교를 건너 메스키타 대성당 근처 골목을 다녔다. 식당을 찾을 생각으로 다니는데 식당 대신 아름다운 골목길이 눈에 들어온다. 온통 흰색의 벽에 파란 화분이 걸려 있고 화분에는 빨간 꽃, 분홍색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벽에 달린 꽃들만으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지, 연신 웃음이 피어난다.
상점들이 들어선 좁은 골목에는 관광객들이 가득하고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좁을 길에서는 먼저 지나가라고 비켜주며 길을 양보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얼굴을 자연스레 보게 되고 서로 눈인사를 하며 지나게 된다. 각기 출생지와 사는 곳은 달라도 우리 모두 자연과 문화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이라는 마음이 아닐까.
거울을 파는 한 상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메스키타 대성당에서 본 기둥 위의 아치를 본 딴 형상의 거울이 있다. 흰색과 붉은색이 교차된 아치와 무한과 영속을 상징하는 이슬람 문양이 코르도바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두고두고 코르도바를 기억하기엔 딱이라 생각하며 거울을 샀다. 여행에서 돌아와 지금은 방의 창문 옆에 두고 수시로 그 당시를 회상한다.
세비야로 돌아갈 기차 시간에 맞추려면 이제 식당에서 먹는 건 틀렸다. 택시 타고 기차역으로 가서 결국 기차역에서 샌드위치를 샀다. 기차를 타고 앉아 창 밖을 보며 샌드위치를 먹는데 왜 그렇게 맛있는지,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 메스키타 대성당 내부. 늘어진 등잔과 스테인드글라스ⓒ 김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