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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Mar 22. 2024

FC바르셀로나 우승 축하 현장, 꿈이냐 생시냐

은퇴한 부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26화)


2023년 4월부터 42일 동안 스페인(바르셀로나, 산세바스티안, 빌바오, 마드리드, 세비야, 그라나다), 포르투갈(포르투, 리스본), 모로코(마라케시, 페스, 쉐프샤우엔, 탕헤르)의 12개 도시에서 숙박하며 여행했습니다. 단체관광 마다하고 은퇴한 부부 둘이 보고 듣고 느꼈던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  몬세라트산 꼭대기의 수도원에서 내려오는 노란 케이블카

ⓒ 김연순



목이 따끔거리고 코가 막혀 숨쉬기가 어렵다. 입도 바싹 타고 온몸이 쑤신다. 감기 몸살이다. 여행 기간이 길어지며 피로가 쌓여 그런지 며칠 전에도 몸살이 났었다. 가지고 간 약은 다 먹어 이젠 없다.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 약국을 찾아 감기약을 사 왔다. 우리 돈으로 무려 2만 원. 비싼 약 먹고 좀 쉬어서 괜찮아졌는데 다시 며칠 움직이니 감기가 도진 것 같다. 따끈한 수프를 먹고 오전 내내 누워 쉬었다. 내리 쉴까 하다가 그러기엔 아쉬워 점심 무렵 일어났다. 계획했던 몬세라트에 가기로 했다.



에스파냐 광장 근처 플라사 데 에스파냐역에서 몬세라트행 기차를 탔다. 약 한 시간 걸려 몬세라트 역에 내리니 저 멀리 어마어마한 바위산이 보인다. 기괴한 바위산의 모습은 가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바위산 끝자락에 손톱만큼 작게 수도원이 보인다. 저 수도원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케이블카도 있고 산악열차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하며 둘 다 타보기로 했다. 올라갈 땐 케이블카, 내려올 땐 산악열차를 타는 걸로 정하고 편도 티켓을 구매했다. 가격 차이는 별로 없다.



케이블카 역에서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부터 노란 케이블카가 점점 다가온다. 케이블카에 올라 산으로 올라가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저 위에 자그마하게 보이는 수도원이 점차 가까워 오는데, 설마 줄이 끊어지는 건 아니겠지 살짝 떨었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케이블카는 5분 만에 도착했다. 아래에서 본 손톱만 한 수도원은 막상 입구에 들어서니 어마어마한 규모다. 거대하고 기괴한 모양의 커다란 바위산을 배경으로 들어선 건물 하나하나는 세련되면서도 아름답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기암절벽의 바위산, 그 바위산을 배경으로 들어선 수도원은 지상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있어 그런지 마치 인간의 세상에 속한 곳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  몬세라트수도원 광장

ⓒ 김연순



몬세라트 수도원은 1236미터 높이의 몬세라트 산 중턱에 자리해 있다. '몬세라트'는 톱니 모양의 바위산을 뜻한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본래 십자군 전쟁 당시 무슬림 세력의 공격을 피해 은신해 있던 위프레도 백작의 은신처였다고 한다. 11세기 경 그의 증손자 리폴 신부가 수도원을 지었고 나폴레옹 전쟁 당시 파괴되었다가 19세기~20세기 무렵 재건을 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수도원 광장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수도원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정적이면서 차분하다. 성당에 들어가기 전, 광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각의 돌들로 쌓인 벽에 사람의 형상을 한 음각 형태의 조각상이 있다. 성 조르디 조각상이고 바로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의 작품이다.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는 가우디의 뒤를 이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파사드 중 수난의 파사드를 만든 작가이다. 수난의 파사드 조각품들이 그렇듯이 이 조각상도 단순하고 간결한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성 조르디의 눈길이 희한하다. 우리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오른쪽의 우리를 쳐다보고, 왼쪽으로 움직이면 또 왼쪽의 우리를 쳐다본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해봤는데 진짜 그렇다. 어느 각도에서 보건 성 조르디의 눈이 항상 따라다닌다.


            

▲  성 조르디 상으로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의 작품

ⓒ 김연순



광장 한쪽으로 길게 벽이 둘러쳐 있다. 거대한 외벽은 여러 개의 아치가 있고 아치와 아치 사이에는 하나씩 흰 조각상이 있다. 크게 뚫려 있는 아치를 통해 하나 가득 보이는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파랗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흘러간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계단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화가 일렁인다. 머릿속에 저장한 장면이 사진보다 오래간다고 했던가, 파란 하늘을 품고 연이어 늘어선 커다란 아치들은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그 어느 장면보다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수도원에서 몬세라트 산 정상까지는 푸니쿨라(산악 전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초록색 작은 푸니쿨라를 타고 꼭대기에 도달했다. 거기서부터는 트래킹 코스고 실제 트래킹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푸니쿨라에서 내려 우리는 전망대로 갔다. 수도원은 다시 저 멀리 자그마하게 보인다. 전망대에는 머무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참을 마치 우리만의 공간인 양 자유롭게 보냈다. 간식으로 가져간 과자도 꺼내 먹고 커피도 마셨다.


            

▲  몬세라트 수도원의 아치 벽

ⓒ 김연순



넋 놓고 경치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 젊은 두 명의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 달란다.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두어 컷 찍어주고 내가 보기에 더 좋은 곳을 배경으로 또 두어 컷 찍어 주었다. 확인하더니 매우 흡족해한다. 그러더니 이번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내민다. 그것으로도 찍어 주었다. 갑자기 폴라로이드로 우리 부부를 찍어 주겠단다. 몇 번 사양하다가 응했다. 몬세라트 산 꼭대기에서 폴라로이드 필름 사진이 생기다니, 고맙고도 신기했다. 여행 잘하라고 서로 인사 나누고 헤어졌다.



다시 푸니쿨라 타고 내려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푸니쿨라 창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이 그 공간을 한층 더 운치 있게 만든다. 수도원에 도착하니 하늘은 먹구름이고 비 젖은 광장은 썰렁하다. 으슬으슬 추워져 카페로 들어갔다. 꼬르따도 한잔 마시니 그윽한 커피 향과 함께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상 정상까지 운행되는 푸니쿨라

ⓒ 김연순



입장권을 구매하고 이제 바실리카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정문의 정교한 조각상이 눈에 띈다. 예수와 열 두 제자다. 마치 성당에 들어서는 모든 이들을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입구 바닥엔 커다란 원형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람들이 원 앞에 줄을 서 있다. 이 원 안에 서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단다. 우리는 일단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내부는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중앙의 제단 위로는 금빛 장식의 높고 둥근 돔 구조다. 긴 의자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데 제단 위로 뭔가 움직임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검은 성모상'이다. 사람들이 한 명씩 차례로 지나가다 성모상 앞에 멈추어 기도한다.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중에 안내 책자를 확인하니 성모상 한 손에는 예수가 안겨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구슬이 있다. 사람들은 그 구슬을 만지며 기도한다.



광장에서 느껴지는 흥분감, 알고보니 


            

▲  몬세라트 산 배경의 수도원 전경

ⓒ 김연순




 ▲  몬세라트 수도원 성당 안에 있는 검은 성모상

ⓒ 김연순



검은 성모상은 880년 무렵 몬세라트 산 동굴 안에서 발견되었다.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교황 레오 13세는 이 성모상을 카탈루냐의 수호성물로 지정했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뭔가 꼭 바라는 게 있으면 몬세라트 수도원을 찾아 검은 성모상 앞에서 기도한단다.



성당에서 나오며 다른 사람들처럼 입구 바닥의 원 안에 들어가 섰다. 그리고 기도했다. 남편도 그리 한다. "뭐 빌었어?" 물었더니 안 알려준단다. 나도 안 알려줬다. 뒤편으로 돌아 나오니 동굴 아래로 초를 봉헌하는 곳이 있다. 수많은 초들이 있다. 우리도 초를 사 불을 켰다. 지금은 다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과 남편의 부모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양가 부모님들이 우리를 보고 기특하다고 하실 것 같다. "그 나이에 영어도 잘 못하면서 긴 시간 동안 둘이 잘 다니고 있네" 하실 것 같다.


            

▲  몬세라트 수도원 성당 밖 초를 봉헌할 수 있는 동굴

ⓒ 김연순



내려올 때는 산악열차를 탔다. 산악열차는 높고 장대한 산을 S자 형태로 돌면서 내려온다. 산악열차를 타고 내려오다 보니 이 길을 내기 위해 수많은 나무들과 뭇 생명들이 훼손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사람들이 편하게 오가는 대신 상처 입고 훼손되어 복구되지 못하는 생명체들도 있다는 게 마음 한쪽을 무겁게 한다.



기차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카탈루냐 광장 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광장으로 올라오는 계단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인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을뿐더러 분위기가 뭔가 들썩들썩한 게 심상치 않다. 뭔 일이지, 하며 광장으로 나온 순간 깜짝 놀랐다. 그 넓은 광장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유니폼을 걸치고 손에는 깃발을 들고 있다. 눈에 익은 유니폼이다. 바로 FC 바르셀로나다.


            

▲  카탈루냐 광장에서 라리가 우승팀인 FC 바르셀로나를 기다리는 시민들

ⓒ 김연순



불현듯 떠올랐다. 바로 어제가 FC 바르셀로나(라리가)가 우승을 거머쥔 날임을. 오늘 이 광장에서 축제가 열리는구나 싶었다. 카탈루냐 광장은 이미 흥분의 도가니다. 뭔가를 보려는 듯 사람들은 가로등과 길가의 동상, 가판대를 타고 올라가 있다. 주변 건물의 몇몇 창문들은 활짝 열린 채 사람들이 나와 서 있다. 흥분은 전염성이 강하다. 분위기에 빠르게 젖어든 나의 흥분도는 급상승했다. 어제 에스파뇰 홈구장에서 축구 보느라 맘 놓고 응원도 못했는데, 이 자리는 완전 반전의 분위기다.



뒤에서 갑자기 한국말이 들린다. 돌아보니 FC 바르셀로나 깃발을 가진 한국 청년들이다. 절로 말이 나왔다. "나도 갖고 싶다, 깃발" 깃발을 구하진 못해도 잠깐 빌려서 인증샷은 남겼다. 이 청년들, FC 바르셀로나 팬이란다. 어제 TV로 봤는데 바셀팀이 우승해서 너무나 기쁘단다. 그래서 슬쩍 흘렸다. 우린 어제 RCDE 축구장에서 직접 봤다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는 다시 되묻는다. 천천히 정확히 말해줬다. 어제의 라리가 우승 현장, 직관했다고. 이 청년들 놀라서 입을 못 다문다. "아니 어떻게(그럴 수가)"를 연발한다. 대놓고 뻐기는 게 이렇게 신나는 일인 줄 몰랐다.


            

▲  라리가 우승팀 FC 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 광장을 지나며 축하 세리머니 하는 모습1

ⓒ 김연순



시간이 갈수록 함성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모두가 한쪽으로 시선을 두고 기다리는 건 바로 FC 바르셀로나의 축하 세리머니 버스 행진이다. 잠시 후 귀청을 찢을 듯한 함성과 함께 선수단이 탑승한 긴 오픈버스가 나타났다. 감격에 찬 선수들이 손을 크게 휘저으며 기뻐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는 시민들은 그야말로 감격에 겨워 소리치고 있다. 나도 심장이 쿵쾅쿵쾅거린다.



이게 뭔 일이람. 꿈에도 생각 못한 FC 바르셀로나 선수단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머릿속에 '꿈이냐 생시냐'가 뱅뱅 돌고 있다. 몬세라트 수도원 갔다가 숙소로 돌아가려고 그저 카탈루냐 광장에 내렸을 뿐인데 이 광경을 맞이한다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는 그저 운수대통했을 뿐이다.



▲  카탈루냐 광장에서 라리가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FC 바르셀로나와 환호하는 시민들 ⓒ 김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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