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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AO May 05. 2024

두릅

아버지를 기억하는 방법

엄마는 입맛이 까다로운 아버지를 위해 제철에 나는 재료들과 아버지가 그때그때 드시고 싶어 하시는 음식들로 아버지만의 저녁밥상을 차려드리곤 했다.

어린 나는 늦은 시간에 퇴근하고 들어오신 아버지가 따로 식사하실 때마다 옆에 앉아있었는데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어도 항상 소식하시는 입 짧은 아버지가 나의 입에 맛있는 반찬들을 넣어주셨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음식 중에는 육회, 명란젓, 오징어 숙회 등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이걸 무슨 맛으로 드시지?' 했던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두릅'.

기름을 사용해 볶거나 튀긴 음식을 싫어하셨던 아버지는 두릅도 데쳐서 초고추장을 찍어 드시는 걸 좋아하셨는데 생긴 것도 이상하고 맛도 미묘한 그 두릅만은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마트에 나와있는 두릅이 갑자기 눈에 띄었고 나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그것을 담게 되었다.

처음 사 본 두릅을 손질하고 데쳐서 아버지가 드셨던 것처럼  초고추장을 찍어 입안에 넣고 씹는 순간 어릴 때 느끼지 못했던 향기가 입안에 퍼지며 아버지가 왜 두릅을 그렇게도 좋아하셨는지 알 것만 같았다. 어른이 되어 바뀐 나의 입맛에 대한 신기함과 함께 아버지와의 추억이 몰아쳐왔다.


그때부터 해마다 두릅을 사서 두릅전, 두릅튀김, 두릅무침 등을 만들어 먹으며 두릅은 어느새 나의 봄철 최애음식이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두릅을 샀다.

이번에는 된장양념과 들기름을 듬뿍 넣어 무친 두릅으로 비빔국수를 만들어봤는데 곱게 다진 아몬드 가루까지 뿌렸더니 그 고소함이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다.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꼭 만들어드리고 싶은, 분명히 아버지가 좋아하실 맛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늘 노래를 가르쳐주시고, 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사주시고, 손을 잡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시며 말씀은 없으셨지만 엄마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까지 듬뿍 느끼게 해 주셨던 아버지.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버지의 mbti는 완벽한 INFP였던 것이 확실한데 좋아하는 음악도 영화도 시도 여행도 마음껏 즐기지 못하시고 그 섬세한 감성을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누르고 감추고 결국 지병으로 고생만 하다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생각하 울컥 터져 나오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다.

한 남자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의 외롭고 고달팠을 인생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다니...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서 만약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마음만 품고 있지 말고 말 한마디라도 사랑과 감사를 표현해보셨으면 한다.


빛나는 5월에 태어나신 아버지.

오래운 겨울, 중국 유학 중인 막내딸과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는 5월의 봄처럼 늘 따뜻하고 행복하시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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