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곳들을 가보고 싶은 두 명(나 포함)과 늦잠을 자고 하루종일 호텔에서 쉬고 싶은 두 명의 갈등으로 여행 내내 편이 갈라져 귀국까지 따로 했던 경험, 망고를 자른다더니 자기 손바닥을 자른 동기 때문에 대만 병원 응급실에 가본 경험(정말 망고 자르듯이 쭈~욱 그어댄 손바닥을 보고 기절할 뻔), 셋이 갔는데 둘이 싸워서 중간에서 나 혼자 난감 그 자체였던 경험 등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사건사고들이 많았다.
게다가 대만뿐만 아니라 중화권 여행을 하려면일행에게 거의 동시통역사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과 모든 일정을 짜고 개개인의 입맛까지 맞춰줘야 하는 것, 길을 살짝 헤맨다든가 하는 실수라도 하면 괜히 미안해져야 하는 사소한 것까지, 함께여서 좋은 점만큼 함께여서 어려운 점도 당연히 있었다.
MBTI가 파워 P라서 평소에는 무계획에 급발진이지만그때만큼은 잠시 J로 변신하는 척도 하고, 일행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최대한 양보와 배려를하고, 혹시라도 중국 여행이 처음인 사람에게는 중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남겨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편인데 다행히도 그 부분은 늘 성공적이었다.
그런 나에게 지금까지의 대만 여행 중 해보지 못해 아쉬웠던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샹산(象山)에 올라가 타이베이의 야경을 보는 것이다.야경을 보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2019년에도 한 번 시도해 보았지만 이미 어두워진 시간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험한 코스로 들어선 탓에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더 이상은 못 가겠다는 일행들의 반대로 중도에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큰맘 먹고 여행 첫날 첫 코스로 샹산을 가기로 한 것이다. 오후5시쯤 도착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단으로만 되어있는 산을 올라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맡았다.
말 한마디 필요 없이 멍 때리듯 해가 지기 전부터 해가 완전히 지고 깜깜해질 때까지의 광경을지켜보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였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한 곳에 서서 마음껏 감상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관람 시간제한이 생기기 전 에버랜드에 푸바오를 보러 가서 같이 간 친구에게 푸바오 실컷 보게 해 주면 밥도 사고 술도 사고 오늘 네가 하자는 거 다해주겠다고 하면서도 미안해서 눈치를 살짝 봐야 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샹산에서 보는 101 빌딩과 타이베이 시내
혼밥, 혼술, 혼카페, 혼영화 등 평소에도 혼자 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이날은 정말 최고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내 두 눈과 사진에 이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음에 가슴이 두근거려 자리를 뜨기 힘들 정도였다.
솔직히 인천공항에서부터 다른 사람들을 보며 '뭐야, 나만 혼자야?' 이런 생각으로 왔었는데 혼자 보기 아까우면서도 혼자라는 것이 너무나도 큰 행복인 순간이 되었고, 첫날부터 실수하거나 잘못되는 일은 없을까하루종일긴장했던 나의 마음은 어느새 사르르 녹아버렸다.
그토록 기대했던 너무 멋진 야경을 보고 흥분한 탓인지 머릿속이 생각들로 가득 차 산에서 내려와 샹산역을 지나쳐버렸지만 서둘러 경로를 다시 검색할 필요 없이 느긋하게 타이베이의 화려한 밤거리를 자유롭게 거닐다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가기로 한 낯선 목적지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나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샹산(象山)은 산의 형세가 코끼리를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주변에 호랑이, 표범, 사자 산과 함께 사수산(四獸山) 중의 하나이다.
MRT(지하철) 오렌지 라인을 타고 샹산(XIANGSHAN) 역에서 내려2번 출구로 나와표지판을 따라약 10~15분 정도걷다 보면 도착한다. 중간에 오르막길이 나오고 뜬금없는 포인트에서 계단이 나타나는데 그때부터 무조건 열심히 올라가면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