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水의 공간
Keywords 점, 원, 정지, 어두움, 응집력, 응축력, 하강, 정화, 재생, 자기 성찰(명상), 호르몬, 뼈, 수생목일 때 혈관, 방위는 북, 색상은 검은색
오행의 하나인 수는 나머지 오행들과는 다른 특징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수는 유동성, 적응력, 감정적인 면 등을 상징한다. 또한, 지혜와 직관력, 지속성과 잠재력을 나타낸다.
수는 안으로 더 응집하고 응축되어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전환한다. 수는 모여서 아래로 내려가는 성질이 있다. 다 모이면 하나로 응집된다. 비가시적인 것, 분화되기 이전, 태고의 상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생명의 시작도 오행에서는 수의 영역으로 본다. 수는 보이지 않는 영역이며 목, 화, 토, 금 작용의 보이지 않는 기반이 되는 것을 ‘수’라고 보면 된다.
금의 공간과 수의 공간은 서로 연결 고리가 강하다. 오행의 생극제화에서 썼듯이 금은 수를 생한다. 수는 금을 통해 맑아지고 더 깨끗해지며 모이고 흐른다.
수의 공간은 명리공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적절히 활용될 경우 흐름, 적응력, 안정성, 잠재력 등을 유도하고 길운을 창출할 수 있다.
수의 공간을 사유의 공간으로 보려고 한다. 사유란 단순히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내면 깊이, 명상하는 것도 포함된다. 왜 수의 공간을 사유, 명상의 공간으로 보는가는 수의 특징을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정화되고 새롭게 하는 힘이 수에게 있다. 우리가 예로부터 종교적으로 세례를 받거나 씻김을 받기 위해 해 왔던 의식을 생각해 보면 항상 물이 있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깨끗해짐을 얻기 위해 물속에서 세례를 받았고 의식을 행할 때 손을 닦는 행위라 던가, 몸을 정갈하게 씻는다 던가 하는 행위는 우리 문화에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수는 그러한 힘이 있다. 인간의 내면에 생각을 모아주고 명상을 도와주며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힘이 있는 것으로 수의 공간을 사유의 공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 건축가 중의 스티븐 홀은 수의 반사 성질을 이용하여 주변의 상황을 공간 속에 담아 물의 움직임, 자연채광이 물에 반사되는 색채, 물에 비친 주변 상황을 새로운 색채의 요소로 지각하게 한다.
그가 주로 쓰는 '현상학적 건축'이라는 용어에서 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쓰인다. 수의 요소를 현상학적 렌즈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반사, 공간의 역전, 굴절, 광선의 변화 등 물이 갖는 현상학적 성격을 중시하는 방법이다.
스티븐 홀의 “현상의 경험, 즉 물체의 지각과는 구별되는 공간과 시간에서의 감각은 건축을 위해 전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 지각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현상학은 우리로 하여금 건축을 걷고, 만지고, 들음을 통해서 경험하게 한다.”이라고 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그의 건축관은 그가 공간에서 지각과 감각을 현상의 경험을 통하여 느끼게 하는 것을 의도하는 것과 지각의 활성화를 통하여 현상학적 공간을 체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지각적이고 감각적인 경험과의 상호 얽힘의 관계를 통해 현상학적 건축 공간을 스티븐 홀은 강조하고 정신과 신체, 신체와 세계의 상호 얽힘(Interwining)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각의 탐구(Question of Perception, 1994))’와 ‘상호 얽힘(Interwining, 1996)’이라는 저서에서 그는 건축을 통해서 공간과 감각적이고 살아있는 상호 얽힘을 만들 수 있음을 강조한다.
빛, 색채, 물, 소리 등의 현상적 영역(phenomenon zone)은 지각적 현상-시각은 물론 촉각, 청각, 후각, 미각 등-의 상호 얽힘의 결과이다. 그것은 하나의 감각적 영역의 이미지가 다른 감각적 영역의 이미지가 다른 감각적 영역의 이미지와 상호작용 하여 통합된다. 이렇게 드러난 현상적 영역은 빛과 재료의 물성, 그리고 신체의 움직임과 결합되어 현상적 공간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상호 얽혀 짜인 지각적 중첩 현상을 통해서 교직 된 공간(Interwined space)을 만들어 낸다. 이 때문에 그는 공간, 빛, 색채, 기하학, 디테일, 재료 등을 상호 얽혀 짜인 연속체로 보았다.
성 이냐시오 채플을 설계할 때 그는 수의 공간을 역시 하나의 요소로 사용하였는데, 남측 주 진입로에서 채플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잔디밭과 반사못, 즉 수의 공간을 지나서 입구에 도달하게 의도적으로 배치한다. 이러한 잔디밭을 지나 수의 공간을 거쳐 입구로 향하는 진행과정은 순례의 미묘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세속과 성스러움, 있음과 없음간의 인공적 경계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작품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넬슨-엣킨스 미술관 증축공사를 위한 현상설계에서 당선되고 지어진 것을 보면 역시 물을 이용하여 현상학적 효과를 유도한다.
박물관의 북측에 반사 연못의 형태로 물을 사용했다. 박물관의 북측에 반사연못이 북측 정면에 위치한 니콜라스 광장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연못 하부에 위치한 주차장에 자연광을 제공하기 위해서 34개의 눈 모양의 천창을 가지고 있다. 지하 주차장 상부에 만들어진 이 연못은 물에 의한 반사, 물의 움직임 등 현상학적 효과를 제공한다.
또한 기존 건축물과 증축 건물 간의 연계를 이 연못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석재와 유리의 상반된 재료를 물이라는 재질로 매개하여 이는 서로의 재질과 형태를 연못에 투영시켜 이루어진다. 그 결과 두 건물의 앞마당을 이룬 연못은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융합된 예술 작품이 된다.
건축가 페터 줌토는 스위스의 발스(Vals)에 위치하는 온천장으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건축가로 유명해졌는데, 그는 발스의 온천장 설계를 통해 재료의 세심한 조율과 빛의 선택적 유입을 성공적으로 구현하였다. 편마암으로 마감된 이 건물은 석재의 쌓인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단면을 노출하고 있다. 쌓인 돌들은 마치 가벼운 목재처럼 여러 가지 크기로 절단되어 적층 한 것이다. 이것은 표면을 장식하는 일반적인 석재 마감과 달리 벽과 바닥을 더욱 견고하게 강화하는 구축적 특징을 지닌다.
디테일에 세심한 배려를 한 정확한 석재의 작업은 돌이라는 본래 재료의 느낌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해 준다. 목욕장의 물과 대비되어 어두운 편마암의 벽은 더욱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건물은 기능적 특성상 인간의 신체와 직접적으로 맞닿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 상황이 주어진다. 사람들은 마치 목재처럼 예리하게 잘리고 다듬어진 돌의 표면과 이음새를 직접 몸으로 만지고 밟을 수 있다. 물과 석재가 조화를 이루며 각각의 존재감을 형성하도록 하고 있는 이 공간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안으로 걸어 들어가 접촉하고 싶도록 만든다.
사람들은 몸의 감각을 통해 바닥과 벽의 질감을 느끼고 빛을 받아들이며, 이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감으로 차오르는 물에 잠기는 느낌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가촉적이면서 현상적인 공간은 돌이나 목조 같은 건축이 발생한 최초의 시점부터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같이 했던 재료의 느낌을 이끌어 냄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물질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느낌을 되찾으려는 노력과 재료의 본성을 드러내고 재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이 건축물의 용도가 수의 공간인 온천장이라 맞아 떨어져 사례로 설명을 하기는 하지만 그가 설계하고 연출하는 공간은 매우 신비롭고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수의 오행적 특성을 공간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이러한 수의 공간은 동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다도를 매우 중시 여긴다. 거의 수양의 단계로, 다실은 일반의 공간과 다르고 건축의 형식과 미학은 매우 수려하다.
오카쿠라 텐신의 저서 ‘차의 책’에서 일본의 이러한 차에 대한 정신, 다도의 문화, 역사적 배경을 주욱 읽어볼 수 있는데 다실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보면 아주 특별하다. 일본에서 독립된 다실을 만들기 시작한 건 일본 다도를 대표하는 위대한 다인, 센노 리큐에 의해서 인데 그가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후원 아래 차노유의 형식을 가장 완성된 형태로 끌어올렸다 한다.
그 당시 막부의 시대, 무사의 시대였던 때에 다실을 가장 중용의 공간이요,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칼과 권력으로 시대를 다스리던 때에 다실에서는 오롯이 인간의 본연의 모습으로 위계도 없이 엄격한 다도의 형식 안에 놓였던 것이다. 다실은 그야말로 예술정신이 자유롭게 소통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센노 리큐가 중요하게 여겼던 또 다른 요소는 ‘노지’이다. 노지란 다실의 본체와 마치아이를 이어주는 정원인데, 이는 명상의 첫 단계이며 ‘자신을 비추는 길’의 의미이다.
고요함과 마음의 정화의 단계로 노지를 통해 다실로 들어가 진정한 우주 속의 나를 조우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실의 모습을 수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고, 우리는 현대에서 무의식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질수록 미니멀을 추구하고 명상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서 어떠한 공간을 수의 공간으로 보면 될까 생각해 보면, 내가 명상하는 공간 또는 잠자는 공간을 수의 공간으로 보면 되고 이외에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다.
수의 특성은 어두움이요, 죽음이라는 뜻도 내포한다. 이는 다른 말로 수면과도 통한다. 우리는 잠을 자야 그 다음 하루를 살 수 있고 하루 동안 쌓여있던 노폐물과 나쁜 기억들, 좋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잠 자는 행위를 죽음의 상태에 있다가 다시 살아나는 거라고도 한다.
수의 공간은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일본의 디자이너 하라켄야가 최근의 쓴 저서 ‘저공비행’에서 보면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심리적인 스위치가 중요하다고 하고 현관과 바닥의 단차, 세심하게 마련된 난간, 신발을 벗고 신을 때 앉는 의자, 발판 등이 질서 정연하게 배치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썼다.
이러한 행위도 수의 행위이다. 일상에서도 하나하나 수의 공간을 찾아 또는 만들어 놓는 것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그리고 여유롭게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