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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Mar 23. 2023

나를 사랑하는 기술

사랑의 기술(에리히 프롬)으로부터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는 사랑을 하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모성애, 형제애, 자기애 같은 것이라든지 사랑을 하는 방식에 대한 차이, 의견들을 설명하고 올바르게 사랑을 하는 방법에 대해 적혀있다.

    사랑이라는 넓고 포괄적인 의미의 단어를 책을 통해서 어떻게 말하려고 하려는 것인지 계속 관찰하면서 나름의 정의를 내리려고 시도했다. 책은 결국 사랑을 하는 기술에서 나를 사랑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마음, 올바른 자기애가 기초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책에서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만큼은 내가 정의 지어야 하고, 내가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책에서 정답을 정의해 주었다면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같은 꼴이 아니었을까?


    쉽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미의 기준이 타국에 비해 높은 편이고 그 기준에 맞춰서 봤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나는 못생김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못생긴 것들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고양이를 사랑한다. 고양이도 종마다 생김새가 전혀 다르고 못생겼다고 생각되는 고양이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생긴 종의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종이 없어도 고양이는 사랑한다. 모든 고양이는 사랑이다. 나는 내가 고양이를 사랑하듯,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못생긴 나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주름진 눈가, 튀어나온 살들, 휘어진 다리.. 뿐만 아니다. 고르지 못한 치아, 건조한 피부, 곱슬끼가 있는 머리카락, 바르지 못한 자세, 근육 없는 몸, 앞쪽으로 기울어진 귀, 까만 팔꿈치.. 다른 이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나는 나에게 엄격한 편이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기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들은 못생김에 가까워진다.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내가 이뻐 보이지는 않았다.(ㅋㅋ)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기술은 못생김을 판별하는 것과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 기술에 속하는 부분인 것 같다. 인정하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주문처럼 외워보면 어떨까 싶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사랑한다는 말이 어렵다면 좋아한다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나는 내가 창작한 것들을 사랑한다.', '나는 내가 하는 행동들, 나의 말투를 사랑한다.' 등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만든 요리는 맛이 없다고 느꼈다. 주변 사람들은 맛있게 먹어도 나한테는 맛이 없었다. 글을 쓰고서도 지우거나 비공개로 설정해 둔 글들이 많았고, 그림도 그려놓고 혼자서만 본 적도 많았다. 부끄럼이 많다는 좋은 말로 포장이 가능할 것 같지만 그냥 내 창작물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선가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했던 글을 본 것 같다. 나는 직접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매우 인색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잘하고 있다고는 자주 이야기 한다. 수고했다고도 자주 이야기 해준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도 좋지만 다른 단어로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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