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영 Apr 19. 2024

일상의 경험과 일의 연결

'만약 가능하다면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

누구와의 대화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종종 이런 질문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음...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지금의 재력과 경험을 그대로 갖고 간다면 가볼 만할 거 같아요'

나뿐만 아니라 동년배의 여러 사람들과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면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젊은 친구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40대를 넘어선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마뜩지 않아했다.


늙어가는 것이 서러울 때가 있지만,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에 반대한다.

그건 아마 지금껏 살아온 시간의 축적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소중한 경험들이 쌓여 만든 '나'가 지금의 늙어 있는 진짜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음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시절의 내가 부럽지가 않다. 


광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생각이 더 확고해질 때가 있다. 

어린 나이의 동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나만의 경험들이 광고 아이디어가 될 때다. 

나의 경우, 특히 아이들을 소비자로 하는 브랜드를 맡을 때, 아이를 키우는 과정의 경험이 큰 역할을 한다.


대행사 경험이 미천함에도 어쩔 수 없이 CD라는 직함을 달고 찍었던 나의 첫 광고가 그랬다. 



큰 아들은 늘 '엄마'를 달고 살았다.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불러댔다.

엄마를 부르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학교에 들어갈 즈음이 되자 엄마의 인정을 받고 싶어, 엄마를 찾는 비중이 높았다. 그런 경험이 나의 첫 광고가 되었다. 

첫 째가 여섯 살이던가? 엄마를 위해 정성스레 컵에 우유를 따르고, 어디서 본 것은 있어 코스터에 잔을 올려 엄마에게 건네주었던 일도 그대로 광고 영상이 되었다. 


정관장 홍이장군 광고를 찍을 땐 손톱을 물어뜯는 아들의 버릇이 광고가 되었고, 학습지 광고를 맡았을 때 역시 아이가 공부에 힘겨워하는 상황이나, 아내가 갖고 있는 스마트 학습의 고민들이 많은 인사이트를 주었다.

비단 아이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의 경험만이 광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년 일본 여행에서 택시 운전석 쪽 문으로 타려했던 실수도 광고로 만들어져 온에어를 기다리고 있다. 

돌아보면 많은 아이디어들이 전략적 인사이트가 되었고 광고 크리에이티브가 되었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겪는 모든 것들이 사실 내 업의 보물 같은 원천이 된다. 


일상의 경험과 일이 연결되는 직업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이 워라밸이라는 이름으로 일과 삶을 분리하고자 한다. 

하지만 광고라는 업은 일상의 경험이 일과 자주 연결된다. 

내가 겪은 직접적 경험들, 누구에게 들었던 이야기, 보았던 책과 드라마, 취미로 즐기는 것들.

모두 내가 만드는 광고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다양한 경험과 기억들이 나에겐 모두 일의 원천이 된다. 

광고는 오히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많은 경험이 도움을 주는 직업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치는 순간이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점점 더 좋아지나 보다. 


반대로 젊고 어린 동료들이 광고 아이디어를 내는 데 힘들어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 일이 내 일이 아닌가?라는 낙담도 미뤄두면 좋겠다. 

한 해 한 해,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나의 광고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놀고, 보고, 경험하는 것도 다 나의 일에 도움을 줄테니 더 많이 즐겨도 된다. 

하지만 반대로는 그 경험들을 성취의 도구로 만들기 위해, 때로는 워크와 라이프 구분 없이 더 일에 몰입할 때도 필요하다. 어쨌거나 당신이 젊다면 워크와 라이프를 굳이 구분하지 말고, 놀고, 경험하고 고민하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병정을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