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영 Apr 24. 2024

밥 벌이를 넘어서는 일

올해는 아내와 만난지 25년이 되는 해다.

1999년 같은 과 1학년인 아내와 만났고 함께 먹고 자고 사랑한지 25년이 되었다.

25년이 되어도 해마다 몇 번 씩 아내에 대해 모르고 있던 것들을 발견한다.

진짜 몰랐던 것들도 있겠으나 아내도 나도 습성이나 생각, 입맛, 취향들이 변하기 때문인 듯 하다.


몇 년 전 아내와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큰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과거와는 다르게 사람을 잘 만나지 않게 된다.

어린 막내 딸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 만나는 일의 부질 없음을 깨달아서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동년배의 평균 보다 일과 가정에 신경쓰는 비율이 5:5 쯤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일에 8 가정에 2인 가장이었다.

나와 아내의 계산식은 달랐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은 밥벌이의 시간이다. 퇴근 후나 휴일을 개인 시간으로 쓰지 않으니 내 계산식으로는 가정에 집중하는 비율이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의 계산식으로 나의 일하는 시간은 '인정 받는' ,'자아 실현'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억울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내의 말에 동의 되었다.

메슬로우는 인간의 욕구 중 인정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최상위 욕구로 정의했다.

나에게 일은 그 두 가지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수단이었다.


당시에는 스트레스 받아가며 월급 받아오는 '밥벌이'가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일 밖에 모르고 가정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서운함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의 눈에 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일을 밥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며 억지로 했다면 아내는 나에게 동정심에 기인한 후한 점수를 주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회사의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자아가 가정에 충실하고 좋은 아빠, 남편 구실을 해낼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 같다.


아내와의 대화 이후, 내가 얼마나 더 가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는지는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일에서의 인정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킨 건강한 남편과 아빠로 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인정받을 기회가 많은 조직생활에서 멀어진 작가로서의 아내, 주부로서의 아내가 인정과 자아실현이라는 최상위 욕구에 목말라 있다는 것을깨달았다.

후배들은 가끔 '내가 이 일과 맞는지', '앞으로도 내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지'의 불안함을 토로한다.

답은 단순하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인정 받는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내가 하는 일이 밥벌이의 수단 보다 조금은 고차원적인 욕망을 건드려주고 있는지'


흔치 않더라도 그런 순간이 있다면 조금 더 나아가볼만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