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략도 크리에이티브다

by 김대영

전략은 크리에이티브해야 한다.

광고대행사에 근무하시는 동료들 중 이 생각에 동의하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보통의 광고대행사에서는 전략을 짜는 곳과 크리에이티브를 만드는 곳이 조직적으로 분리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전략은 논리적, 이성적이라는 선입견이 있고 크리에이티브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보통 전략이 크리에이티브하다는 말은 잘 쓰지 않는 문장이다.

하지만 광고주 시절부터 나는 전략은 아이디어의 범주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전략이란 "전쟁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이나 책략", 또는 "정치, 경제 따위의 사회적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책략"을 뜻한다. 아주 기본적으로, 싸울 상대가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전략이다.


실제 유명한 전투에서의 전략이나 전술은 상대가 생각지 못한 허를 찌르는 창의적 방법들에 의해 대승을 이끌어 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산도 대첩의 학익진이나 명량 대첩의 울돌목 전투는 적들이 생각하지 못한 기발하고 창의적인 전략이었다.

학익진의 경우 조총을 활용해 백병전에 능한 일본군을 넓은 바다로 유인해 학의 날개와 같은 함대 진용을 만들고 함포 공격을 이용해 왜군을 무찔렀다. 일본군이 예상하지 못한 창의적 전략이었다.

13척 밖에 없는 배로 10배가 넘는 왜군을 이긴 명량 대첩에서도 울돌목이라는 거센 물살의 좁은 지역으로 왜적을 유인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전략의 핵심이었다.


광고도 같은 맥락에서 전쟁과 같다. 경쟁비딩을 준비하거나, 실행을 위한 제안에서 모두 적을 상대해야 해야 하며, 적을 상대할 때 생각지 못한 허를 찌르는 창의적 전략이 필요하다.

여기서 적을 규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쟁비딩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 째 적은 경쟁 비딩에 참여한 대행사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적은 광고주의 고정 인식이다. 광고주의 고정 인식에 허를 찌르는 창의적 전략을 만들어내는 것이 경쟁 대행사와 차별화된 전략을 짜는 것보다 중요하다.


올 초 펜타클은 카드사의 비딩에 참여했다. 카드사의 1차 비딩 과제는 크리에이티브를 제외한 전략 부분만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과제는 체크카드의 광고 전략이었다. 체크카드의 RTB 핵심은 당연히 혜택이다. 거의 모든 카드는 해당 카드만의 차별적 혜택을 이용해 광고를 만든다.

펜타클은 이 지점에 고정인식이라는 적을 무찌를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정관념이나 정해진 문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생각해 보자는 지점에서 생각지 못한 창의적 전략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카드사들이 카드의 혜택을 말하는 광고 전략을 사용한다면 커뮤니케이션의 차별성은 만들어지기 힘들다. 또한 혜택을 좇는 타겟들은 광고를 보지 않아도 알아서 혜택이 좋은 카드를 선택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광고는 무용지물일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혜택을 원하는 타겟들에게 혜택을 강조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버리기로 했다. 오히려 혜택에 둔감한 타겟을 해당 카드의 타겟으로 재정의했다. 이런 결론을 얻은 것에는 조사 데이터의 도움이 있었다. 상식적인 생각은 혜택이 많은 카드를 사용처의 혜택에 맞게 잘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사를 통해 알아낸 것은 타겟들 중 많은 비중의 사람들이 일일이 혜택을 챙겨가며 쓰는 일을 귀찮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혜택을 잘 찾아쓰는 혜택추구형 보다 혜택을 챙기는 일이 귀찮거나 여러운, 혜택 둔감형이 많았다.


혜택 추구형 타겟에게 카드의 혜택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는 카드 마케팅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혜택을 강조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아닌 오히려 혜택에 둔감한 사람을 끌어오는 것으로 전략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전략 방향은 클라이언트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고정관념이나 상식이라는 인식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생각지 못한 창의적인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결국 이러한 전략은 전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의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고 또 다른 창의적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내는데 좋은 나침반 역할을 해준다.

결국 좋은 전략은 어떻게 적이 전혀 생각지 못한 허를 찌를 수 있는가를 찾는 크리에이티브한 과정이 되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옷을 잘 갈아입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