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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핀드로 Aug 03. 2022

고소득의 비밀

환원론자가 바라보는 소득의 의미

 어렸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나 변호사가 돼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로 40년이나 지났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시대다. 당연히 어머니는 손주들에게 다른 말씀을 하신다. 

“돈 많이 버는 의사나 변호사 돼라.”


***


 의사와 변호사는 고소득 직종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 그들은 ‘W= m x a x s’라는 식에서 정보의 양(m)이 크고, 스트레스(a)도 크다. 그래서 근무시간(s)이 다소 적더라도 수입(W)이 크다. 그런데 어느 분야이건 오랫동안 일하면 노하우가 쌓이면서 정보의 양(m)이 늘어난다. 따라서 한 분야의 전문가나 리더가 되면 정보의 양(m), 스트레스(a), 근무시간(s)이 커지면서 높은 연봉을 받게 마련이다. 


 평범한 직장인들도 회사에 취직하면 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쌓는다. 직장 내에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게 받고, 야근이나 주말근무도 심심치 않게 한다. 하지만 비슷한 경력기간을 지닌 의사보다는 수입이 높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가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길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 수가 적어서? 학비가 비싸서? 모두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른 관점에서 고소득의 이유를 설명해 보려 한다. 


 의사가 고소득인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일이 사람들의 생존에 큰 도움을 준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의사는 사람들의 질병과 부상을 치료한다. 생명 연장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있어 자신의 생명은 이 우주 전체만큼이나 귀중하다. 그래서 우리는 의사에게 기꺼이 지갑을 열어 많은 대가를 지불한다. (콩나물 값 아까워하는 사람은 봤어도 병원비 아까워하는 사람은 못 봤다).


 그런데 의사가 고소득 직종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과거 서양에서는 이발사가 곧 외과 의사였다. 그리고 주술사나 연금술사가 내과 의사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유명한 의원이라 할지라도 신분은 겨우 중인이었다. 물론 정 1품까지 오른 어의 허준도 있긴 하다. 하지만 얼마나 특이한 케이스면 TV 드라마로도 나오겠나? 


 과거에 의사가 각광받는 직종이 아니었던 이유는 딱 하나다. 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전에는 의학기술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의 의사들은 환자를 치유하는 능력이 형편없이 부족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의사에게 많은 대가를 지불할 의향이 없었다. 하지만 현대의 의학기술의 수준은 과거와 비교 불가할 정도로 높다. 시골의 평범한 의사라 할지라도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나 조선의 허준보다 훨씬 뛰어난 의술을 갖고 있다. 이들은 사람들의 질병을 치유하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진짜 실력’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생존, 그 자체다. 진시황은 영생불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재화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비록 황제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진시황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의학이 수명을 실제로 연장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의사의 소득이 늘어나게 되었고, 선망받는 직업이 되었다. (물론 공공의료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럼 의술과 거리가 먼 변호사는 어떻게 고소득 직종이 되었을까? 원시 시대, 생존에 필요한 식량 자원들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수렵, 채집, 경작과 같은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수고로움을 거치지 않고도 일시에 많은 생존 자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전쟁, 약탈, 절도다. 


 우리는 생존 자원을 많이 보유한 사람을 공격한다. 그리고 그의 것을 빼앗는다. 그럼 그 순간 바로 나의 것이 된다. 그래서 약탈을 주업으로 하는 집단, 민족, 국가, 개인은 항상 존재했다. 물론 지금도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하지만 현대의 인간 사회는 협업을 강조한다. 협업을 유지하기 위해 집단 내의 규율을 만들었다. 그래서 절도와 강탈은 중범죄로 취급되고, 범죄자는 집단의 규율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그럼에도 처벌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다른 사람의 생존 자원을 빼앗으려는 약탈자들이 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재화, 식량, 명예, 권력, 기술, 재능, 인기도 생존 자원이기에 약탈의 대상이 된다.


 분업화된 집단에는, 약탈자들로부터 나의 생존 자원을 지키고, 약탈자에게 빼앗긴 나의 생존 자원을 다시 찾아오고, 다른 사람의 생존 자원을 빼앗는 걸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변호사다. 그들은 생존 자원을 두고 다투는 집단 내 전투에서 대신 싸워주는 용병이다. 이들의 활약 여부에 따라 생존 자원을 빼앗고 뺏긴다. 그래서 우리는 변호사들에게 걸려 있는 생존 자원에 상응하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 이것이 변호사가 고소득 직종이 된 이유다. (판사와 검사는 생존 자원 소유권의 이동을 결정한다. 이들은 이 권한을 이용해 명예, 권력, 인맥이란 생존 자원을 축적한다. 언제든 돈으로 환전 가능한 것들이다). 


 특수한 상황이 되면 평범한 직종이 고소득 직종으로 바뀌기도 한다. 한 예로, 전쟁이 나면 군인은 고소득 직종이 된다. 일단, 전시에는 군비가 증가되기 때문에 수입이 늘어난다. 그리고 승전 시에는 적국으로부터 고가의 전리품을 취할 수 있다. 전후에도 구국의 영웅으로 인정받아 대중적 명예와 인기를 누릴 수도 있다. 


 2,000년 전 한때, 로마에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만 군단병이 될 수 있었다. 심지어 값비싼 투구, 갑옷, 창, 칼 모두 자비로 구입해야 했다. 그래도 로마인들은 서로 군대에 가길 원했다. 승전하면 많은 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지 않기를, 전쟁이 새로 벌어지기를 고대하는 직업 군인들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존재한다. (물론 강제 징병되는 사병들과는 별 상관없는 얘기다).


 우리는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할 때, 그것이 ‘나의 생존에 기여하는 정도’를 철저히 따진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정확히 계산해서 지불한다. 만약 ‘나의 생존에 기여하는 정도’가 그 가격보다 못하다면 우리는 절대 그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는다. 


 ‘충동구매’를 할 때도 있지 않냐고? 하지만 인간 신경계의 계산에는 충동구매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수백만 년 전의 원시인들이 목숨 걸고 구한 먹이를 하찮은 다른 먹이와 ‘충동적으로’ 바꾸었다면 그들은 이미 멸종했다. 우리가 말하는 충동구매란, 보유한 정보의 부족이나 왜곡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 나중에 판명되는 것‘을 말할 뿐이다. 


 다시 말해,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의 시세가 비싸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자신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된다고 계산했다는 뜻이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가격표를 보고 너무 비싸다며 발길을 돌린다는 것은, 생존에의 기여도가 그 돈만 못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변호사들의 비싼 법무 수수료는, 그들의 서비스가 우리의 생존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뜻한다.


 의사와 변호사는 대표적인 고소득 직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와 변호사가 되길 원한다. 그래서 의사와 변호사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 영향으로 때론 평범한 직장인보다 수입이 낮은 의사나 변호사도 생겨난다고 한다. 하지만 설령 의사와 변호사 수가 지금보다 몇 배로 늘어난다 할지라도, 정말 실력 있는 의사와 변호사의 수입은 줄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들로부터 더 오랜 생존과 더 많은 생존 자원을 기대할 수만 있다면...


 수십 년 전에는 농업, 제조업, 광업 등의 전통 산업을 영위하는 회사의 주식 투자가 인기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바이오 기업의 주식 투자가 유행한다. 바이오 기업들은 당장의 매출 실적이나 재무 상태가 좋지 않아도, 유망한 신약을 개발한다는 뉴스만으로 주가가 치솟곤 한다. 


 요즘의 바이오 기업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각광받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생명을 연장시켜 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친환경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기업들의 주식도 인기가 많다. 환경 파괴가 인간의 생명을 줄어들게 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이오 기술과 의학이 더욱 발달하여 무병장수가 손에 잡힐 듯 보이면, 우리는 생존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쓰게 될 것이다. 


 2,200년 전, 진시황은 나이가 들자 불로초를 찾기 시작했다. 그 임무를 ‘서복(徐福)’이란 사람에게 맡겼다. 그는 1차 탐사를 마친 후 진시황에게 보고를 했다. “신선을 만나 불로초를 보긴 했으나, 예물이 적어서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진시황의 눈에 불로초가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진시황은 기쁘고 초초한 마음에 동남동녀 3천 명과 갖은 예물을 갖춰줬다. 그리고 불로초를 반드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당연히 서복은 두 번 다시 장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

 

내가 투자하고 있는 주식 종목 중에는 바이오 기업들도 많다. 다들 획기적인 신약을 임상시험 중이라고 한다. 그들이 서복은 아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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