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핀드로 Aug 03. 2022

단결과 다양성

식당에서 메뉴를 하나로 통일하기 어려운 이유

아직 KTX가 없던 20여년 전, 팀원 전체가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출장 갈 일이 있었다. 그런데 팀장님이 팀원들에게 같은 비행기를 타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팀원을 두 조로 나누어 한 조는 대한 항공, 다 른 조는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갔다. 나중에 왜 그렇게 지시하셨냐고 여쭤보니, 만약에 비행기 사고가 나도 누군가는 살아남아 영업을 계속해야 하지 않냐고 했다. 그렇다. 세상이 무너져도 영업은 계속되어야 했다. 


***


우리는 단결의 힘을 강조한다. 민족의 단결, 국민의 단결, 임직원의 단결, 교인의 단결, 가족의 단결, … 이처럼 인간 집단의 구성원들이 단결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도한 단결은 오히려 장기적인 생존 유지에 있어 치명적일 단점이 된다. 지나친 단결은 다양성을 희생시키고 집단 구성원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원시 시대, 어느 부족이 이웃 부족과 전쟁을 시작한다. 부족원 모두가 함께 싸우러 나가야 한다. 그래도 몇몇은 전장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 남은 사람은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에 대비한 협상 전략과 전후 복구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전쟁에서 이기건 지건, 자신과 집단이 생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전투에서 이기려면 단결을 해야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다양성을 가져야 한다.


단결력이 너무 강한 민족과 국가는 오래 살아남지 못하거나 번성하지 못한다. 그런데 역사책을 보면 오히려 국론이 분열되어 망했다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례를 보며 우리는 때론 전체주의를 동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주의에 대한 향수는 역사책을 편찬한 독재자와 정권이 의도하는 바일 뿐이다. 


오히려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적인 선택이 강요될 때, 즉 하나의 의견 외에 다른 의견의 표출이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그 집단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다양성이 사라지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 환경에는 자신의 집단과 동급의 지능과 경쟁력을 갖춘 다른 집단들도 포함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획일성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스타 크래프트 게임을 할 때 프로토스의 캐리어가 가장 막강하다고 매번 빠른 캐리어 전략을 쓴다면 무조건 지게 된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갈림길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느 길로 가야 살아 남을지 모른다면 사람들을 나누어 모든 갈림길로 다 보내 봐야 한다. 심지어 낭떠러지로 가는 길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한두 명 정도는 보내 봐야 한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며 가장 안전해 보이는 한쪽 길로 몰려 가면 언젠가 호랑이 소굴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과 집단을 위해 때때로 남들과 다른 길로도 가봐야 한다.


운전을 해서 낯선 도시를 갈 때,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최단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길이 많이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모두 최단 경로를 검색하고 그대로 따라 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몇 번 겪어본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다른 경로를 찾아간다. 이런 사람들 덕분에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길이 덜 막히게 된다. 


학교에서 학생 모두가 우측통행을 철저히 준수하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더 빨리 다닐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통계물리학자의 시뮬레이션 결과 우측통행을 100% 준수하면 오히려 곳곳에서 병목현상이 생기게 된다. 즉 우측통행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이 몇 명 있는 것이 오히려 원활한 통행에 도움이 된다. 회식 때 사장님 왼쪽 자리에 앉힐 왼손잡이 직원이 한 명쯤 있으면 좋은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회사에서 세일즈를 할 때 단 한 곳의 거래선만 갖고 있으면, 그 거래선이 아무리 고가에 많은 양을 구매하는 우량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오래 버티질 못한다. 대량과 소량, 수출과 내수, 직판과 유통, 온라인과 오프라인, 장기 계약 거래선과 단기 계약 거래선이 혼재되어 있어야 시장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도 회사는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일상에서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난다.


이처럼 집단주의나 전체주의는 개인의 인권이 무시된다는 문제도 있지만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더 심각한 문제를 품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앞두고 단 하나의 선택만 강요받으면 적응력이 부족해지고 집단의 지속 가능성도 떨어진다. 이는 곧 모든 구성원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인간뿐 아니라 다른 생물 집단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초원에 수백 마리로 구성된 소떼가 있다. 이들은 빈번한 사자 무리의 출몰에 단호하게 단결하여 대응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사자가 다가오면 모든 소떼가 한 마리도 빠짐없이 강력한 밀집 대형을 짜고 뿔과 발길질로 위협을 가하기로 한다. 이런 단호한 단결은 분명히 유효하다. 아마 몇몇 사자들은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호되게 당하고 쫓겨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다. 사자 무리는 며칠이면 이들의 단결된 행동을 보고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다. 그래서 사자들은 순번을 정해 24시간 내내 돌아가면서 공격하는 척만 할 것이다. 그때마다 소떼들은 먹는 걸 멈추고 약속했던 밀집 대형을 짜야 한다. 며칠 뒤 체력이 소진된 소떼들은 사자 무리가 뛰어들어도 도망갈 힘조차 잃게 된다. 


 TV 다큐멘터리를 보면 소떼들이 뭉쳐서 사자 몇 마리를 물리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사자 무리에게 공격당하는 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 편에서는 태연히 풀을 뜯어먹는 소들이 보인다. 같은 집단의 구성원임에도 무정한 행태를 보이는 현상은 현존하는 모든 동물 집단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위험에 처한 동료를 구해주는 동물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토픽감이 될 만큼 드문 일이다. 자연계에서 수천만 년 동안 성공적으로 생존해온 동물 집단이 때론 이렇게 단결과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이는 것은 다양성이 생존을 위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특히 노인들은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성에 대해 때론 불편함을 표출하기도 한다. 그들에겐 가치관의 다양성이 국론의 분열이나 지나친 개인주의의 만연으로 보일런지 모른다. 그 이유는 1980년대 후반까지 군사 독재 체제하에서 살면서 단결의 미덕을 교육과 매스컴을 통해 반복적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산업화를 위해, 수출 확대를 위해, 공산화를 막기 위해, GNP를 높이기 위해,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단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단결을 위해 개인은 때론 희생되어도 참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그 희생 덕분에 한강의 기적이란 산업화를 이루었고 지금의 부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런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원자 속 전자의 위치를 확률적으로만 예측 가능하기에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모든 일은 어차피 확률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핍과 공포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즉 생존 자원이 부족해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은 여러 차례 반복되어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는다. 우리에겐 한국 전쟁과 일제 강점기로 인한 결핍과 공포가 잠재되어 있었기에 힘든 일도 해낼 수 있었다. 


노인들은 흔히 옛것이 더 아름답고 옛날이 더 좋았다고 말한다. 이는 기억을 저장하는 신경계를 가진 생물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물리 현상이다. 신경계 속 기존 정보를 부정하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미 구성되어 있는 신경 네트워크 대신 새로운 연결을 강화시켜야 한다. 한마디로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 대공사인 셈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이미 방대해진 자신의 신경 네트워크를 새로 재구성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사회가 자신의 신경 네트워크에 맞춰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고집이자 옛것에 대한 향수다. 


만약 한 명의 신경 네트워크를 재구성한다면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할까? (언젠가는 분명히 열량이나 돈으로 환산이 가능할 것이다.) 한 명이라면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가 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자가 수백만 명이라면 그 에너지는 무지막지한 규모가 된다. 아마 사안에 따라서는 지구가 1년 동안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만큼 필요할지 모른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갈 때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옛것에 대한 고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때론 분열된 모습으로 보이더라도 에너지 절약 측면에서 효율적이다. 또한 그들에게 신경 네트워크 재구성에 필요한 에너지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신념을 바꾸라고 강요하면 안된다. 이는 강도, 절도와 전혀 다를 바 없기에…


이런 이유들로 인해 신경 네트워크가 어느 정도 구성되기 전, 즉 ‘결정적 시기’인 10살 이전의 아이들에 대한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결정적 시기’의 존재로 인해 10년 간격의 계단식 세대 구분이 이루어진다. ‘쥬글라 파동’과 같은 주기적 국면 전환도 ‘결정적 시기’에 기인한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전체주의 국가의 독재 정권은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체주의가 효율적이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주입식 교육을 실시한다. 


이런 교육을 받고 성장한 사람이 나중에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만큼의 에너지를 얻지 못하거나, 새로운 사상의 가치를 따져봤을 때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그냥 살던 대로 살게 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빈곤 국가에 독재자가 많은 것은 독재로부터 벗어날 만큼의 많은 에너지를 국민들의 신경 네트워크에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중독성 있는 전체주의에 대해 향수와 미련이 남아있는 우리에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자신과 집단의 생존을 위해서다. 물론 집단의 생존을 위해서는 단결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단결은 집단 구성원들이 생존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생존을 위한 수단의 획일화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단결은 협업과 경쟁 중 협업만을 강조하고 경쟁을 불필요하다고 보는 생각이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협업은 태생적으로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고, 경쟁도 역시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협업과 경쟁 중 어느 하나만 강조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결국 다른 개인이나 집단보다 경쟁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즉 생존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인터넷 웹사이트에 로그인할 때 필요한 비밀번호는 외우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자신이 가입한 모든 웹사이트의 비밀번호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한 사이트가 해킹을 당해 비밀번호가 유출되면 은행 계좌 속 돈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모든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다 다르게 설정하면 안전하긴 하겠지만 일일이 기억한다는 것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은행, 증권사처럼 중요한 사이트는 비밀번호를 각각 따로 만들고 수시로 변경한다. 그리고 돈과 관련이 없어 중요하지 않은 사이트는 그냥 하나의 비밀번호를 오랫동안 사용한다. 그런데 말은 다들 이렇게 하지만 결국 누구나 비밀번호는 하나로 수렴되고 잘 바꾸지도 않는다.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다. 


***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자 회사에서는 각 팀 인원의 1/2씩은 재택 근무를 하라고 했다. 

그렇다. 세상이 무너져도 영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포퓰리즘 네버다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