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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 Mar 14. 2024

태안에서 보내온 주꾸미

2007년 기름오염 사고, 현장에서의 60일


"택배 왔어요~~"

태안 기름사고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태안 기름오염 사고 때, 현장에서 폐기물 처리업무를 했던 태안군 담당자 ㅇㅇㅇ입니다."

"아~~~, ㅇㅇㅇ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그런데 어쩐 일로??"

"제가 이번에 태안 기름사고 때 고생한 일꾼을 뽑는 행사에서, 폐기물 처리 유공자로 선정되어 상금을 100만 원이나 받았어요. 그런데 수달님 고생하신 게 생각나 도저히 혼자 쓸 수가 없어서요. 태안 앞바다에서 잡은 주꾸미를 조금 택배로 보냈으니 맛있게 드세요"


감동이었다.

2007년 기름사고 후, 3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잊지 않고 상금을 나누어주겠다는 마음이 감동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생 주꾸미의 맛도 감동이었다. (보통 식당에서 판매하는 주꾸미는 외국산, 냉동이라 한다.) 

3년 전 기름 범벅이었던 태안 앞바다가 이제는 주꾸미를 잡아 판매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그 시절 고생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태안 앞바다, 크레인선이 유조선과 충돌했다."

2007년 12월 7일(금) 오전 7시,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 북서쪽으로 8km 떨어진 바다, 예인 중이던 크레인선 삼성 1호가 지나가던 유조선 허베이스리핏호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원유 12,547kl가 바다에 유출되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생한 3,900여 건 기름유출 사고에서 발생한 유출량 전체를 합한 것보다 많은 양이라고 한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당시 환경부에 근무하던 나는 다음날 휴일이었지만 일찍 출근을 했다.
그리고 해양수산부에 전화해, 요청만 하면 즉시 폐기물 처리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기름폐기물은 유독성이 커 지정폐기물로 지정되어 있고, 이 때문에 지정된 업체만 폐기물을 운송하고 처리할 수 있다. 이 지정업체들에 연락을 해, 일요일부터 100여 대의 운송차량과 처리인력을 비상대기하도록 했다.


그런데 주말이 다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기다리다 못해, 화요일에 전화를 걸었다. 해양환경공단에서 기름폐기물을 잘 처리하고 있어 지원이 필요 없고, 나중에 필요하면 연락을 주겠다 한다. 그래서, 현장에서 폐기물 처리가 잘 되고 있나 보다 생각했다. 이후 폐기물 처리업체에 걸어두었던 비상대기도 해제시켰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은 전혀 딴판이었다. 현장에서 엄청난 양의 폐기물이 발생하고 있는데,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기름폐기물 처리가 해수부 주관으로 되어 있어, 그쪽의 요청이 없는 상태에서 환경부가 일방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려웠다. 






"빨리 태안으로 내려오세요. 지금 당장요~~~." 

기름유출사고 후 5일째 되는, 7월 12일 수요일.

태안지역을 관할하는 지방환경청장이 내 상관인 국장께 전화를 걸어왔다. 


"국장님, 이곳 사정이 너무 안 좋습니다."

"수거된 기름폐기물이 넘쳐나는데, 해양공단에서 처리하기 역부족입니다. 즉시 지원을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폐기물처리 업체와 장비를 즉시 투입할 수 있도록 대기시켜 두었는데, 저쪽에서는 필요 없다 하니, 어찌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아닙니다.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일단은 내려오셔야겠습니다, 지금 당장요~~~."


이 통화를 마친 후, 국장님과 함께 바로 태안 기름사고 현장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차 안에서 직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오늘 오후 5시, 총리님 주재 긴급 대책회의가 열립니다."

"여기서 부처 간 역할분담이 논의되는데, 기름폐기물은 환경부가 주관하는 것으로 조정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는 데로 준비할게요"






"아~~~, 태안의 모래사장은 아비규환이었다."

태안에 도착하자마자, 기름수거 현장으로 갔다.

태안 일대의 바다가 모두 엉망이었다. 

만리포 해수욕장에서부터, 천리포, 백리포, 의항까지 해안 전체가 기름에 뒤덮여 있었다. 

바다에는 검은 기름이 덮고 있어 파도도 일어나지 못했다. 바다에서 떠내려온 기름이 해변가 모래사장과 갯바위에 검게 덮여 있었다. 기름에 덮여 죽어있는 물고기와 기러기도 보였다.


군인, 해양경찰, 자원봉사자들이 기름 제거작업에 대거 투입되었다. 

군인과 해경은 주로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름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고, 자원봉사자들은 갯바위나 모래에 묻은 기름을 흡착포로 닦아내는 작업을 했다. 수거한 기름은 수거통에 모아두었는데, 수거통이 모자라, 해변가 모래밭에 비닐을 깔고, 이 위에 수거한 기름을 찰랑찰랑하게 채워두고 있었다. 그러다, 만조가 되어 바닷물이 해변으로 밀려오면 애써 모아둔 기름이 다시 바다로 쓸려가는 일도 종종 발생하고 있었다.


기름을 닦아낸 종이와 폐기물도 해변가에 쌓아 두었는데, 바람이 불면 주변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해양환경공단에서 기름폐기물을 수거해 잘 처리하고 있다고 했는데, 현장에서는 제때 수거가 되지 않고 폐기물이 계속 늘어만 가고 있었다. 



수거된 폐기름과 기름 폐기물이 제때 처리되지 못해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상황이 지경인데, 왜 지원요청을 안 했을까?"

"이렇게 기름폐기물이 계속 쌓이는데, 왜 해양환경공단은 문제없다, 잘 처리된다고 했을까?"

폐기물 처리를 위해 긴급 투입된 폐기물 처리업체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해양환경공단이 3~4개 폐기물 처리업체와 계약을 맺어 일을 하고 있어요. 업체는 나중에 해사보험사로부터 처리한 실적만큼 처리비를 받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본인들이 최대한 많이 처리해, 돈을 더 많이 받으려고, 다른 업체들이 추가 투입되는 것을 계속 반대해 왔어요."


화가 났다. 어이가 없었다.

'이 긴박한 시국에, 기름오염이 이렇게 심한데, 내 돈 벌 궁리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전국에 있는 폐기물 업체를 총 동원해도 모자랄 판인데,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다른 업체를 못 들어오게 하다니, 현장에 폐기물 처리가 엉망이 되고 있는 것도 모른 척 해 가면서....



"환경부는 뭘 하고 있다, 이제야 나타나는 겁니까?"

해변의 기름수거 현장을 점검하던 중, 총리 주재 회의결과를 통보받았다. 

당장 오늘부터 기름폐기물 처리는 환경부가 책임지고 수행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고 한다. 

국장님과 상의해 우선 기자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태안 해양경찰서 상황실에 마련된 기자실에 도착하니, 30여 명의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있었다.


"해변가에 수거한 기름쓰레기가 넘쳐나는데, 환경부는 뭘 하고 있다, 이제야 나타나는 겁니까?"

"빨리 수거를 안 하면, 2차, 3차 오염에 더 큰 재앙이 될 텐데 어떻게 할 겁니까?"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쏟아졌다. 국장님과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기름폐기물 처리는 그동안 해수부가 총괄하던 것을 오늘부터 환경부가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으로 역할이 조정되었습니다."

"현재 현장에 처리되지 못하고 쌓여 있는 기름 폐기물은 앞으로 3일 안에 모두 처리하겠습니다."
"전국에 있는 산업폐기물 운송업체와 처리 장비, 인력을 총 동원하겠습니다."

"매일 폐기물 처리현황을 보도자료를 내고, 여러분께 설명드리겠습니다."






2주 동안 집에 못 가고 현장에 머물렀다.

기자회견 후, 태안군청에 마련된 상황실로 이동해 바로 업무에 들어갔다. 

전국에 있는 20여 개 지정폐기물 처리업체에 연락해 수거 장비, 운반차량, 소각 처리장을 섭외했다.

기름사고 장소로 진입하는 주변에 계근장도 지정했다. 계근장은 운반차량의 무게를 측정해, 반출되는 폐기물 량을 측정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자료로, 나중에 해사보험사에 폐기물 처리비용을 청구하게 된다. 1995년 여수 씨프린스호 사고 때, 기름폐기물을 처리했던 경험들을 참고해 대응 시스템을 만들어갔다. 


매일 아침 7시에는 해양경찰청장이 주재하는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했다.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협조할 사항을 수시로 요청했다. 자원봉사자들이 기름제거 작업을 하고 나면, 장비로 이송하기 쉬운 장소로 옮겨두도록 해경과의 협조체계도 마련했다. 


처음 2주 동안은 정신없이 일을 했다. 하루하루가 전쟁터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다. 아침 상황점검회의를 시작으로, 기름수거 현장 점검, 지역별 폐기물 적체량과 신규 발생량 확인, 계근장 지정 운영, 수거 폐기물 처리량 확인, 언론 보도자료 작성, 기자브리핑 등등....


5일 만에 기름수거 작업과 폐기물 처리가 조금씩 안정화되어 갔다.



약속보다 조금 늦었지만, 5일 만에 쌓여있던 폐기물을 모두 치웠다.


태안에 온 다음날부터, 현장 지휘팀을 즉시 보강했다.

환경부 직원, 태안군청 파견, 폐기물협회 직원 등 총 7명이 한 팀이 되어 일을 했다.

현장에 내려온 지 2주째 되는 날, 그동안 전화로만 상황을 보고받던 국장님이 현장에 다시 오셨다. 

직원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컵라면과 빵 등 간식을 챙겨 오셨고, 남자용 속옷까지 챙겨 와 주셨다. 급하게 현장에 오며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아, 2주 동안 속옷을 갈아입지 못한 나를 배려하신 것이었다.


기름사고 현장의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왔다.

태안을 찾아오는 자원봉사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기름제거 작업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자원봉사자는 하루 수백 명, 수천 명으로 늘어나다가, 사고 발생 열흘 만인 12월 16일에는 하루 10만 명을 돌파했다. (나중에 언론보도를 보니, 전체 자원봉사자가 123만 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현장에 쌓여있던 기름폐기물이 많은 데다, 자원봉사자들이 수거하는 폐기물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처음 기자들과 약속했던 3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5일째 되는 날 현장에 쌓여있던 쓰레기를 모두 치웠다. 


처음 일주일은 현장에 쌓인 폐기물을 신속히 수거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후에는 수거뿐 아니라 여러 가지 업무체계를 정비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수거해 간 폐기물이 적정하게 처리되는지를 확인했다. 자격이 안 되는 처리시설로 이송된 경우, 용량을 초과하여 주변에 환경오염을 가중시키는 경우, 다른 시설로 이송하도록 조정했다. 계근장을 처음에 2개소 운영하다, 처리속도를 높이기 위해 5개소로 확대 지정했다. 야간작업의 편의를 위해 계근소 운영시간도 저녁 6시에서 밤 12시까지로 연장했다.


매일 엄청난 양이 쏟아져 나오던 폐기물이 10개월이 지난 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후부터 태안군청에 현장 지휘를 맡기고, 환경부는 철수했다. 그리고 폐기물 처리업체들이 해사보험사에 처리비용을 청구하는 절차를 도와주었다. 이후 10개월 만에 청구 금액의 약 80%를 보험사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통상 보험사에 청구하는 피해복구비용의 60% 내외를 인정받은 것에 비하면 높은 비율이라고 한다. 전반적인 폐기물 통계, 특히 계근소 운영에 꼼꼼하게 신경을 쓴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태안 만리포 해수욕장, 기름 오염이 완전히 치유된 최근 모습



태안에서 보내온, 주꾸미 택배

기름오염 현장에서 2달, 이후 8개월 업무지원까지 끝낸 후,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간혹 뉴스에서 들려오는 태안 소식에 귀를 기울이기는 했다. 기름오염으로 주민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이야기, 해사보험사로부터 피해비용 지원이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 수입 입증이 어려운 맨손어업 주민들이 보상이 지연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기름사고 2년이 지나면서, 환경이 개선되고 수산물도 늘고 있는데, 오염지역에서 나온 것이라 하여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태안의 일들이 잊혀 가고 있던 어느 날, '주꾸미 택배'를 받았다. 

부서 직원들과 인근 식당에서 '주꾸미 샤브'를 요리해 먹으면서, 당시 고생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안에서 보내온 주꾸미,

기름오염을 이겨내고, 회복한 자연의 치유력,

태안을 사랑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따듯한 마음, 

태안의 상큼한 바다냄새와 풍미, 

이 모든 것들을 주꾸미 한 마리를 통해 모두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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