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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 Sep 27. 2024

3만 원으로, 풀코스 생일파티를?


금요일, 한 주간 객지 생활을 마치고, 집에 가는 날이다.

집으로 가는 KTX 안에서, 둘째 딸의 문자를 받았다.


"아빠, 오늘 집에 몇 시에 와? 저녁은?"

"지금 KTX 타고 집에 가는 중, 7시쯤 도착하는데, 저녁은 안 먹었어."


기차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어디까지 왔어?"

"응 거의 다와 가, 7시쯤 도착할 것 같아"


예정보다 조금 빨리 6시 50분에 집에 도착했다. 

주방에서 둘째 딸과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아니 7시에 도착한다더니, 왜 이리 빨리 왔어?"

"아~~~ 별로 빠른 것 아닌데, 10분 일찍 도착한 건데, 왜 그래?"

"아니, 평소에는 도착 예정시간보다 늦게 오더니, 오늘은 빨리 왔길래"

"많이 배고파? 조금 기다려줄 수 있지?"


평소와 달리, 뭔가 엄청 분주하다.

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큰딸, 둘째 딸, 집사람까지 3명이 모두 주방에 투입되었다. 세 명이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특별한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난주, 코스트코에 장 보러 갔을 때, 둘째 딸이 '닭다리살'을 사자고 했다. 

그걸로 특별요리를 만들어 준단다. 닭다리살에 양념을 입혀 프라이팬에 굽고, 양파와 감자구이를 곁들여냈다. 잠시 후 근사한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 


"닭다리살 스테이크"


둘째 딸이 요리한 '닭다리살 스테이크' 생일상




특별한 생일 상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나 했더니, 갑자기, 생일축하 노래를 부른다.

이틀 후가 내 생일인데, 지방에 내려가야 하니, 주말에 미리 축하를 해야 한단다.


신혼 시절, 아내가 미역국 생일상을 한두 번 차려준 적이 있었다. 이후에는 주로 외식을 했다. 내 생일을 핑계로, 집사람이나, 아이들이 평소 먹고 싶었던 스파게티나, 고깃집을 주로 방문했다. 


그런데, 오늘은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주다니, 놀라운 일이다.

둘째 딸이 메인 요리를 하고, 큰 딸과 집사람이 도왔다. '닭다리살 스테이크'라는 메뉴도 참신하다. 

보기도 좋고, 맛도 훌륭했다. 웬만한 레스토랑에서 파는 요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요즘. 대학교 2학년인 둘째가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

2-3년 전, 호두파이를 굽는다고, 며칠 동안 부엌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한두 번 하다 말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후 떡뽂이, 로제떡볶이 만들기에 도전하더니, 갈수록 실력이 늘었다. SNS에서 다양한 요리법을 보고, 이걸 따라 하는데, 제법 완성도가 높다.


'감바스, ' '뇨끼'같은 외국요리도 만들고, '매콤 단무지 무침, ' '새콤 오이무침' 같은 밥반찬도 척척 만든다.

'뇨끼'는 이탈리아 요리인데, 파스타의 일종이다. 감자를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 이걸 프라이팬에 구워, 파스타 대용으로 사용하는 요리란다. 딸 덕분에 생전 처음 생소한 요리도 종종 맛보곤 한다.



딸아이가 만든 '뇨끼, ' - 삶은 감자를 둥글게 반죽해 굽고, 새우, 베이컨, 마늘을 함께 볶는다.

  


 

생일축하 이벤트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녁을 먹으며, 둘째가 생일축하 계획을 발표했다.

오늘은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토요일엔 온 가족 영화를 보러 가잔다.


<아빠 생일축하 계획(딸들이 짠 스케줄)>
금요일 : 생일 축하 저녁(닭다리살 스테이크)
토요일 : 생일 기념 영화관람(무료 관람권 사용)
일요일 : 쇼핑(구두 선물)



요즘, 제일 인기 있는 영화가 '파일럿'이다. 

조정석 님이 주연인데, 여자로 분장하고, 비행기 조종사로 일하며, 일어나는 해프닝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비용을 '헌혈 감사 관람권'으로 사용했다. 두 딸이 헌혈을 하고 받은 영화티켓을 모아두었는데 이걸 사용한 것이다. 덕분에, 한 푼 안 내고,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온 후, 딸아이가 자랑을 한다.

"이번 아빠 생일행사 하는데, 비용이 3만 6천 원 밖에 안 들었어요."

"닭다리살을 3만 원에 사 와서 요리했고, 영화 보는데, 무료 관람권 쓰고, 팝콘구입에 6 천 원 썼어요."


알뜰한 두 딸 덕분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내였다. 

남편 생일을 축하하는데, 요리도 안 하고 돈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구두 선물은 엄마가 하라고 아이들이 교통정리를 해 주었다.


알뜰한 딸들, 덕분에 알차고 보람 있는 생일이벤트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받으면, 딸들 생일 때도 엄청 챙겨야 하는 것 아닌가?"

은근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때 일은 그때 가서 고민해야겠다. 



딸 들이 헌혈하고 받아 온 영화관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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