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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I Aug 11. 2023

모든 것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그래도 금주만은 79일째

2월부터 주중에는 하루 8시간, 주말에는 하루 11시간 근무, 주중에도 일이 끝나면 주 5일 매일 운동을 하다 보니 매주 단 하루도 제대로 쉴 시간이 충분히 없었고 스트레스가 점점 쌓이고 있었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 6개월쯤 되자 난 결국 폭발했다. 요즘 말로는 번아웃. (뭘 얼마나 열심히 살았기에 번아웃 타령을 하나 스스로도 쪽팔리지만)


처음에 투잡, 쓰리잡, 한동안은 포잡까지 점점 알바를 늘리게 된 것은 순전히 폭음 때문이었다. 나의 폭음이 스스로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지긋지긋했다. 강제로라도 술을 마실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영화 '미스 슬로운'의 제시카 차스테인이 약을 끊기 위해 스스로를 감옥이 처넣은 것처럼.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일에 대해서 만큼은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다고 자신하기에 술 대신 일로 공허한 시간을 우려 했다. 처음엔 주말에만 일을 했다. 그러니 주 5일 이상은 내내 술. 그래서 주중으로 일을 변경했더니 주말 아침부터 밤까지 술을 끼고 살았다. 그래서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고자 주말 아침 7시 30분에 시작하는 알바를 구했으나 일이 끝난 낮 1시부터 또 하루 종일 술. 그래서 주말 저녁 알바도 구했다. 그나마 주말 내내 술 마시는 짓은 못하게 됐지만 주중 저녁은 또 술. 그래서 주중 밤에도 카페 알바를 구했다. 하지만 일이 새벽 2시에 끝나도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는 일이 벌어졌다. 컨디션은 최악이었지만 원래 일을 하나 시작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최소 6개월은 유지하는 나이기에 버티려 했다. 그러나 급여에 관해서 만은 기준이 철저한 나이기에 1시간 미만으로 초과한 업무 시간에 대해서는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시스템에 놀라 일주일 만에 그만뒀다. 그래서 저녁에 알바 대신 헬스를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절주가 아닌 제대로 된 금주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주만 한다고 내 삶이 180도 변할 리는 만무했다.


보고서와 내역서를 작성하고 수식이 맞는지 꼼꼼히 뜯어보고 수십 번 수정하고 오타를 검열하는 일이기에 일에 대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심했고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나는 의미 없이 찍힌 마침표, 쉼표 하나에도 힘들어했다. 혼자 파고들어 고쳐나가는 과정은 즐길 수 있으나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기에) 체력적인 힘듦, 금주와 다이어트, 운동에 대한 스트레스, 한동안 모든 연을 끊고 너무 평온했었는데 점점 새로 생긴 관계들로부터 오는 스트레스 등등... 그리고 가장 큰 스트레스는 정리가 안 되는 나의 집 상태.


결국 난 운동, 일 모두 그만두는 것을 선언했다. 울면서 왜 그만두고 싶은지 절절하게 토로해도 끝까지 붙잡는 회사 때문에 또 한 달은 지옥이었다. 결국 한 달 이상 쉬고 다시 얘기해 보는 것으로 오늘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또 그토록 원하던 일을 그만두었는데도 뒤숭숭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는다.


내 나이 마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우선은 대청소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히키코모리 때도 하루에 두 번 이상 청소기를 돌리고 매일 쓸고 닦던 내가 그동안 쓰리잡을 핑계로 모든 삶이 무너져 있었다. 수건을 빨고 말릴 시간이 없어서 깨끗이 빨아둔 면 티로 머리를 말린 적도 있으니...


그래. 또 쉬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지금에도 금주만은 79일째.

그나마 위안이 된다.


누군가의 삶에 크게 위안이 됐다는 책도 주문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방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리하고, 그동안 여유가 없어서 반 년을 묵혀놨던 드리퍼를 꺼내 따뜻한 커피 한 잔 준비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이 책을 읽으려 한다.


다음 글에는 이 책의 좋은 글귀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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